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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간목 Nov 12. 2022

스도쿠, 잠수, 이사

나는 숨을 오래 참지 못한다. 어렸을 때에도 최대가 1분 남짓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인지 수영이나 오래 달리기는 늘 힘들다.


어제는 이삿짐을 싸던 중, 먼지 묻은 창고에서 어디 학회서 받은 책자가 하나 나왔다. 그리운 마음에 먼지를 툭툭 털고 파라락 넘겨보는데, 4x4 스도쿠 퍼즐이 2개 있었다. 


나는 스도쿠를 좋아한다. 경우의 수 따지는 것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히는 "적당히 쉬운" 스도쿠를 좋아한다. 적당히 쉬운 스도쿠는 풀다 보면 가끔 2~3단계 앞에서 논리를 땡겨와야 할 때가 있는데, 그 정도가 나는 딱 좋게 느껴진다. 딴엔 깊이 잠수하는 느낌이다.


지난 한 달 동안은 이사할 집을 부지런히 알아봤다. 그것은 시냇물에 고개를 처박고는 강바닥 모든 자갈돌의 뒷면을 들춰보는 것 같은 작업이었다. 그러다 보면 예산이 사부작 사부작 올라가고, 나는 물 밖으로 나온다. 강가를 둘러보고, 예산을 제자리로 되돌려놓고, 심호흡을 하고, 다시 고개를 처박는다. 


뿌연 물 속에선 숨이 더 필요하다. 머릿속도 그렇다. 논리의 단계가 늘어가면 뇌는 우선 사람 사는 일을 머릿속에서 없어버린다. 그리고 소리를 없앤다. 이윽고 시간이 없어진다. 어제, 책자 속 스도쿠 퍼즐 하나를 다 풀고 났을 땐 해가 떨어진 뒤였다.


사람이 사는 덴 숨이 많이 필요하다. 그리고 계속 필요하다. 책자 속에는 내가 아는 얼굴들이 많이 있었다. 그 때 우리는 강가에 모여있었다. 시냇물 속에 고개를 처박은 채로, 이 돌 저 돌을 들춰보고 있던 우리들.


그들 중 몇몇은 폐활량이 많이 늘어났다. 진리의 바다를 들락거리다, 이제는 아예 물 밖으로도 자주 나오지 않는 것 같다. 최근에 만났던 형은 사람 사는 일(밥 하는 법이나 빨래 하는 법)을 모조리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는 나이도 먹지 않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몇몇은 이제 강가에서 산소통을 팔고 있다. 나는 그들이 얼마나 숨을 많이 참았었는지, 또 얼마나 많은 자갈돌들을 들춰봤었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그걸 모두 내다버리고 강가에 상점을 차리는 용기라니! 


그런 생각을 이삿짐을 싸며 한다. 그렇담 나는 또 어디로 흘러가지. 나는 숨이 늘었을까. 혹시 나만 여전히 야트막한 시냇물에서 자갈돌들을 들춰보고 있나. 잠시 숨을 참고 시간을 재어볼까 하다가, 1분도 참지 못할 것이 분명하고 또 두려워 관두었다.


문득 자갈돌이 모조리 내 얼굴들인 상상을 한다. 어제 풀었던 스도쿠 퍼즐은 4x4짜리였다. 사실 4x4짜리를 풀어본 것은 어제가 처음이었다. 3x3보다 4x4에서는 들춰볼 돌이 늘어난다. 그러니 어제는 조금 더 넓은 시냇가에서 놀았던 셈이다.  


그러고보니 재밌었지. 그런 삶도 있는 게 아닐까. 심호흡을 하고, 숨을 참아본다. 그러면 다시 뿌연 물 속이다. 글을 쓸 때에나, 스도쿠를 풀 때에나, 집을 찾을 때에나, 이삿짐을 쌀 때에나, 공부를 할 때에나, 문제를 풀 때에, 언제나 나는 뿌연 물 속이었던 상상을 한다.


하지만 딱 1분이 한계구나. 늘지도 줄지도 않았어. 다행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야트막한 가슴에 내려앉은 먼지를 툭툭 털어내기엔, 어쩜 그 정도로도 넘치는 것인지? 쓴웃음을 웃는다.


글을 다 쓰고, 고개를 들어보면 해가 떨어진 뒤였다. 오늘은 비가 왔구나. 심호흡을 한다. 


이삿짐을 싸야 한다. 마침 이사를 강가로 가기로 했는데... 오늘 거기는 물이 좀 불었을까. 심호흡을 한다. 


이 먼지 묻은 책자는 버리자. 창가에서 물이 찰랑거리는 상상을 한다. 심호흡을 한다.


강바닥 내 얼굴들이 보인다. 어쩐지 조금 불어난 것 같다. 산다는 건 숨이 계속, 많이 필요한 일이다. 징글징글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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