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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간목 Nov 24. 2022

사탕수수와 루트비어, 코딱지와 손가락

그러고 보니 마지막으로 코피를 흘린 게 언제였더라. 학부 땐 대략 이틀에 한 번 정도 코피가 나서, 언제나 휴지를 가지고 다녔다. 물론 잠도 늘 부족했지만, 코 안의 이물감을 견딜 수 없어서, 강박적으로 코를 팠던 탓이 아마도 더 클 것이다.


대학원 때엔 조금 다른 형태였다. 몸을 만든다고, 한 번 요리를 해서 3x7 = 21끼를 먹었다. 탄:단:지를 2:1:1로 맞추고, 하루 2500kcal 섭취에 섬유질은 20g. 라면과 빵을 내 돈 주고 먹은지 2년이 넘어갈 때쯤, 나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가 하면, 한 때는 매일 커다란 과자 한 봉지를 배가 찢어져라 비우던 때도 있었고, 그런가 하면, 또 다른 때에는 하루에 샌드위치 하나 먹고 곧 죽을 사람처럼 12시간 넘도록 잠만 잤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스포티파이에 올라오는 그 주의 신곡들을 샅샅이 다 찾아 들어보던 때도 있었지.


지금은 덜한가? 모르겠다. 


하지만 스물 여덟쯤의 일이었다. 대학교 때 친구가 어디 출장을 다녀와선 아락(Batavia Arrack)이라는 술을 사다줬다. 물 반 알콜 반인 그 독한 술을, 스트레이트로 두 잔씩 괴롭게 비우고 헤어졌다.


17-19세기에 펀치를 만들 때는 필수였다는 술이었지만, 자취생 집에선 딱히 쓸 일이 없었다. 사탕수수로 만들었다니 맛술로 섞어 요리에 넣어본 적도 있었는데, 특유의 스파이스 향이 거슬렸다. 


그렇게 2년이 지났던 어느 새벽, 2시를 넘어, 일 마치고 기분 내고 싶은데 집에 맥주가 없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사러 갈 수도 없었다. 풀 죽어 공연하게 냉장고를 열어봤는데, 루트비어가 눈에 띄었다. 


아락을 유리컵에 쪼르륵 따르고, 루트비어를 들이부었다. 그 때부터 사탕수수 리큐어와 루트비어의 조합은 내 자신작이 되었다.


그리고 2022년이다. 나는 다음 주에 이사를 한다. 집에 바카디가 남아서, 마트에 탄산음료를 사러 갔다가 루트비어가 눈에 띄었다. 제로 슈가로 샀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바카디에 루트비어를 섞어 마신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여전히 손가락을 물어뜯는다. 열 손가락 여기저기에 핏자국과 굳은살이 못처럼 박혀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학부 때나 대학원 때나 그리고 지금이나, 내가 삼키는 것들은 그닥 달라지지 않았다. 


생각해보라, 스포티파이 "New Release"에 그 주의 신곡들이 모두 올라오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나는 내가 삼킬 수 있는 것만을 삼킬 뿐이다. 


누구나 그렇지 않은가?


나이를 먹으면 양은 줄어든다. 한 때의 강박도 그럴 것이다. 다만 여전히 향신료에 대한 역치가 높은 것이 다행이라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니 글을 자꾸만 발라내기도, 먼 훗날엔 한 때의 치기로 추억을 하게 될까? 아니면, 여기서 더? 글쎄, 어쩌면? 잘 모르겠다. 


늘 그렇듯, 별 일 아니다. 


그 이야기를 이렇게나 길게 했습니다. 읽어주셔서 제가 죄송합니다. 이 마지막 줄은 구태여 쓰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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