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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간목 Nov 27. 2022

속단에 대하여

속단이란 좋은 것이다. 아마도 진화의 산물이다. 애당초 우선은 대칭을 깨야 하기에, 속단은 반드시 필요하다.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는 것은 배려가 아니다. 겁을 집어먹고 오늘의 속단을 내일로 미루는 것이다. 덧붙이고 깎아내기를 거듭하고, 부딪혀 사과하며 피차 뒤엉켜 가는 것이 도리어 자연스럽다. 아마 나 자신과의 관계도 그럴 것이다.


나는 알기 힘든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은 내가 당신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며,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나는 당신의 속단을 용인한다. 아니, 속단하기를 추천한다. 어제와 오늘의 차이를 목도하고, 내일에는 끊임없이 속단하기를 원한다. 그런 피드백 루프, 그 일방통행의 과정에 우리의 관계가 안착하기를 바란다.


정보가 많아지면 자유도도 높아진다. 아마도, 안정은 변하지 않는 상태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불안정은 적은 데이터를 많은 변수로 설명하는 데서 온다. 우리의 맞고 맞지 않음이, 대체로 잡음인 것을 나는 우리가 공감했으면 한다. 그렇다면 인연이라는 것은 그 묵직한 어감에 비해 사소한 일일 것이다.


세상에 내던져진 개인이, 애당초 울력질로 이겨낼 수 있는 난관이라는 게 대저 얼마나 있겠는가. 가까운 미래에, 스스로의 반질반질하게 닦인 단면에 괴물이 비칠 수도 있음을 나는 예시로부터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얼마나 큰 일인가? 본질이라는 오만한 단어는 제껴두자. 눈이 여섯 개든 두 개든, 결국 위상학적으로는 같지 않은가?


우리가 어쩌면

사랑을 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마는 아마도 제 탓이고,

또한 모조리 당신 탓입니다.


그리고 오늘 밤, 이처럼 탓을 하는 것이

나만이 아니길 바랍니다. 그것은 원망하는 바이기 보담은 도리어,

우리가 조금은 닮기를 바라는 탓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저는 약간의 사랑이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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