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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간목 Feb 15. 2023

천천히 나는 법

그러면 잠들지 못하는 밤은 가고 없는 줄 알았지


오래 달리는 법은 왼 무릎을 다쳐가며

공을 차는 법도 오른 무릎을 다쳐가며

다리가 두짝인 것은 다른 한 짝이 받쳐가며

절어라, 그러면 걸을 것이라며 나는

이것 내주고 저것 배우면서 하루씩 삶에 굳은살이 온통 배기고 나면 그러고 나면

나만은 구태여 찾아 아프지 않을 줄 알았지


울며 오래 달려본 날, 힘에 부쳐 하는 얼굴에도 공감이라는 이름으로 얹어지는 근심 아닌 격려하는 몸짓이 돌아올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날,

그 날은 울며 일해본 날이었다

울며 공부했던, 울며 밥을 먹고, 침대에 자존심과 함께 누워 울던 무수한 그 말 없는 날들 뒤에 더는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없을 줄 알았는데


수영장에서도 나는 끝에서 끝으로 곧 죽을 사람처럼

그러나 방금 물에 빠진 사람처럼 잡을 곳만을 찾았다

수영장 벽을 붙들고 헐떡거리면서, 쉬지 않고 나는 것처럼 헤엄을 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수십 초 정도 물에 빠지지 않는 법만을 수영장 벽을 꼭 붙잡은 손에 들고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얻어가겠다며 수영장 벽을 발로 차곤 했었다


오래 달리다 보면 나는 것 같지, 수영도 마찬가지인 것 같네, 하지만

천천히 달리는 법, 천천히 물을 헤치는 법을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하고 헐떡거리며 불면의 숲을 매일 밤 지나가지


그리곤 그게 다 부질 없는 발차기였던 것처럼

꿈 속에서 나는 종종 느려진다


이제 일어나지 못하는 아침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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