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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간목 Feb 26. 2023

어떤 믿음

너무너무 불안하고 스스로 응어리에게 몹시도 미안한 내가,

지지난 주엔 10km를 뛰었다

8km쯤 넘어가면 흐르기 시작하는 콧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녹인다

영하의 날씨에 녹는 몸이란-


날숨이 뜨거워서 그렇다

오래 천천히 달리는 건 오랫동안 몸을 서서히 망가뜨리는 기분이다 차라리 단거리 스프린트를 뛰고 인터벌을 가져가는 게 내 몸에는 더 맞는데 한 주 지나가면 나는 몇km 더 달리게 된다 사람들은 내가 오래 달리는 걸 좋아하는 줄 알지만 나는 참을 뿐이다 하기 싫고 또 억울하고 힘겨운 일들과 마찬가지로 나의 불안감이 나를 앉아있지도 누워있지도 걷지도 못하게 하므로 뭐라도 하는 편이 불안함을 잠시간 녹여볼 수 있으므로 달리기 시작할 때엔 콧물이 흐르지 않았으므로 그리고 스프린트는 반드시 휴식을 동반하므로


나는 휴식을 거부한다

무릎과 함께 응어리가 부어오르는 때에

자라는 주행거리와

불안한 내가 응어리에게 점점 더 미안해지는 때에

일그러진 얼굴이 8km를 달려온 탓인지

아니면 가슴 속 응어리가 다 드러나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응어리 따위, 다 드러내려 달리는 것인지

세상 모든 욕을 다 끌어안고 헐떡이는 못난 얼굴에

지나가며 화이팅, 화이팅, 외쳐주는 고마운 이들은 모르겠지 아무래도 그런 게 아닐까


오늘은 13km를 뛰었다

영하의 날씨에도 몸이 무슨 뜨겁고, 차갑고,

날숨이 뜨거워서 그럴 것이다 나는 믿는다

행인들의 마스크 속에서도 그럴 것이다 나는 믿는다

번데기의 고치 속이나, 그리고 강변 벤치에서 포장 비닐을 둘둘 만 채로 겨울을 견디는 사람의 입 주변 역시도 그럴 것이라고, 너무너무 불안하고 누구에게 반드시 무언가 미안할 것이라고,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사실 모든 흐느끼는 얼굴들은 알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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