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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간목 May 06. 2023

우리를 주워담을 시간이 온다고

알맹이는 없는 갈색

종이봉투, 봄날에 꽃잎인 양

지하철 플랫폼에 흐드러져 있다

누구의 빈 속이었는지

어지럽기도 하지


그러고 보니 올해는 꽃놀이를 가지 않았네

매년 가던 것도 아닌걸


어쩔 수 없지 지하철이 들어오는걸

다들 그렇게 떠났다 플랫폼을

종이봉투를

긍휼이라는 말과

먹고 없는 알맹이들을

지고 없는 꽃자리들을


사실은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다

짧은 한숨이 하나, 언젠가 주워담고 나면

널브러진 엔트로피라도 다시

알맹이가 되는 날이 온다고


사뿐히

키 190cm 정도의 한 남자가 밟았다

부서지는 소리,

승강장 거센 바람,

흩날리는 종이봉투들과 날리지 않는 하나

떠나는 우리와

떠난 채 붙박힌 사람


사실은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다

언젠가 영화에서 본 사람은 제 숨을

빈 종이봉투에 다 맡기고 있었노라고


그 전에 우리는 떠나지만 곧

지하철이 토해내든 싸지르든 할 것

알맹이를 여기서 저기로 옮기는 모양은

똑같지 어디든, 그러니 괜찮다


나는 아침을 먹진 않았지만, 이 지하철은

그러고 보니 꽃 피는 섬으로 가네

내야 늘 그 전에 내린다만

사실은 말하고 싶었다


괜찮다는 말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고

짧은 한숨에 선행한다고

알맹이를 여기서 저기로 옮기는 모양은 늘

무참했지만, 매년 괜찮았다고


부서지고

흐드러지고

숨이 조금 들락거리고


그리고 우리를 주워담을 시간이 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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