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다녀왔다. 내려와 국밥집에서 동행과 수육 놓고 돼지국밥을 먹는데, 옆 테이블엔 어르신들 두 분께서 곧이어 들어와 앉으셨다. 비닐봉지에 든 소주를 내려놓고 순댓국을 시키셨다.
순댓국이 나오자, 이건 순댓국이 아니라며 당황하던 어르신들은, 이 집은 언제나 맛있고 저기 어디 다른 집들은 다 자격 미달이라며 주방까지 들리게 말씀하셨다.
옆자리에서 동행과 나는 국밥 맛에 연신 감탄하며, 요즘 제각기 공부하던 것들을, 그리고 앞으로 공부할 것들을 이리저리 되짚고 또 살펴가며 얘기했다.
먼저 온 우리가 식사를 마치고, 더치페이를 했다. 옆자리 어르신들 중 한 분께서 요즘 사람들은 반반 나눠 낸다고 놀라워하셨다. 그래서 약간 머쓱해진 나는, 산에서 동행과 내가 이것저것 번갈아 냈더니, 이거는 반반을 내야 오늘 계산이 맞겠노라고 밝혔다.
다른 한 분께서, 저게 최신식이라고, 우리도 반반 내자 하니, 아까 놀라워하셨던 어르신께선 오늘 자네가 살 차례인데 허튼 수작하지 말라했다. 우리 넷은 밥 잘 먹고, 잘 웃었다.
최신식 어르신께선 우리가 다녀온 산이 어딘지 대번에 알아맞추셨다. 그 산이 좋다고, 자긴 2주에 한 번은 꼭 간다고. 동행과 나는 아침나절에 그 산에서 애를 꽤 먹은 참이었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요즘 뉴저지가 단풍 철이라길래 다녀온 길이었는데, 어르신 중 한 분께서 아직 멀었다고, 날이 좀 더 추워져야 단풍이 제대로 든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 대로, 오늘은 단풍이 반 정도만 들어있었다.
어르신들께선 한국 사람들이 산을 잘 탄다고, 우린 한국 들어간지도 벌써 십수 년이 됐지만, 미국 오기 전부터 산을 탔었고 여기서도 탄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도, 저는 산을 잘 못 타는데, 어르신들 산 잘 타시는 걸 보면 그렇게 신기하다고 맞장구를 쳤다.
계산서가 나오고, 팁을 적어내고, 영수증 2개 나왔다고 신기해하는 어르신들께 맛있게 드시라고 인사하고, 주방엔 잘 먹었다고 인사하고 동행과 나는 나왔다.
뉴저지 팰리세이즈 파크에 가면 부산국밥이라는 집이 있다. 그 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온 것이다. 호보켄으로 차를 몰고 가, 맨하탄 사는 동행을 내려주었다. 동행은 트렁크에서 자기 닭도리탕을 꺼내갔고, 그러면 트렁크엔 내 모듬순대가 남았다.
가는 그 길에는 꽤나 본격적인 할로윈 장식들이 몇 블록이나 걸쳐, 주거지를 뒤덮고 있었다. 고즈넉한 동네에, 토요일을 맞아 거기 사람들이 소박한(unassuming) 걸음걸이로 오가고 있었다.
어르신들과 나눈 얘기와 호보켄의 그 광경이 어지간히도 내 마음에 들어와 꼭 맞았는데, 뉴저지 깊숙한 곳 모처 어쩐지 잠이 오질 않는 내 방 침대 위에 이렇게 일어나 앉아서 나는, 그건 대체 왜일까를 곰곰 헤아려 보고 있다.
모르고 하는 소리일지 몰라도, 계산서를 어디까지 잘라서 내고 받고 하지 않는 그 애매함이 여유나 유머, 뭐 대충 그런 걸로 얼렁뚱땅 받아들여진 건 아닐까. 할로윈 장식도 누구의 것이고, 어르신들 순대국밥도 당신들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서로 모르는 사이에 나눈 것들이 무어라도 남지 않았나 싶다.
낮에 먹은 돼지국밥이 아직도 든든하게 뱃속을 채우고 있고, 모듬순대는 냉장고를, 그리고 뭉뚱그려진 하루도 마음 속을 든든하게 채우고 있다. 그래선지, 꽤나 이것저것 사고 판다는 세상 갖은 풍문들을 슬퍼할 겨를도 생긴 것 같다. 사실 나는 아주 조금 옛날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