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개의 미국

by 김간목

미 합중국 50개 주는 그 이상으로 다종다양하다. 그러나 오늘 얘기할, "일하지 않는" 미국은 거칠게 나눈 2가지다.


한 가지 유념할 것은, 우리가 보는 고용/실업 통계엔 요즘 노이즈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따로 놀기도 한다). 예컨대 지난 10월 8일날 발표된, 9월의 비농업 고용지수는 예상치를 크게 밑돌았는데, 나름 설득력 있는 이유라면 교육 및 공공 부문에서 백신 미접종이나 시기 상(ex. 개학 이전)의 이유로 일터 복귀가 늦어지는 바람에 빵꾸가 심하게 났다는 것이었다. 그걸 제외하고 나면, 타 섹터들은 다른 달에 비해 에러바가 그렇게 크진 않다는 해석이 있었다. 안도할 만한 일이다.


하여간 이런 세세한 통계들이야 경제학자 여러분께서 관심 있게 보고 있으실 테고, 배움이 부족한 필자는 그저 줏어들은 얘기들이나 전하려 한다. 이런 사례들도 있구나 하는 정도로 들어주시면 감사하겠다.


첫째로, 5년에서 10년 정도 일찌감치 은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단 얘기를 들었다. 코로나 전후로, 어떤 이들의 자산은 크게 늘었다. 사실 사고 팔고 헛짓거리만 안 했다면 보통은 자산이 크게 늘었을 것이다. 이제, 은퇴를 5년이나 10년 앞둔 사람들의 자산이 2~30% 정도 급격하게 불어났다면, 그들이 은퇴 전 목표했던 금액에 도달했을 가능성이 꽤 크지 않을까? 그렇다면 은퇴 시기를 앞당겨서 당신들 제 2의 삶을 찾아가려는 것은 십분 이해할 수 있다. 근면, 성실, 정직을 덕목으로 삼는 당신들은 미국의 모범이고, 5~10년을 앞당긴 은퇴는 마땅히 축하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그와는 정반대로 패스트푸드점이나 택시 기사 등, 로우 레벨 직종에서 인력난이 벌어지고 있다는 뜨악한 말이 들린다. 심지어 화이트칼라들이 감자 튀기러 현장으로 파견 나온다는 뉴스도 있었는데 사실인진 모르겠다. 애초에 필자는 택시도 타질 않고 끼니도 보통 해먹는 데다가, 주변 동네엔 가족 단위 스몰 비지니스들이 많아서 그런 작다면 작은 변화들은 체감하기 힘들었다 (가족 단위 자영업의 경우, 아예 공실이 나거나 아니면 다시 문을 열거나 둘 중 하나니까). 하지만 차를 몰고 조금 나가서 타겟이나 트레이더 조'스 등을 들러보면, 개학 시즌, 분명히 손님들이 밀려들 시기인데도, 카운터나 매대 진열을 하는 직원들 수가 예전보다 줄어든 느낌이 있었다.


그들도 일찍 은퇴한 것일까. 나는 모르겠다. 하지만 카운터를 보는 사람의 수는 줄어들고, 카운터에 줄은 길어진 것을 보며, 인력난이라는 말은 머릿속을 맴돌고, 그러면 통계 상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다소 무례한 생각은 기어이 들고야 만다. 장바구니 들고 줄이나 서는 나 같은 사람이야 그런 생각쯤 휘휘 저어버리고 다시 좋은 사람이 되면 되지만, 높으신 분들께서는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시는지 인력난에 대해 우려하는 뉴스가 계속 나온다. 그러면 나는 다시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구태여 미국의 미진한 헬스케어를 끌어다가 아프면 죽어야 하는 나라에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의 일터 복귀가 쉽진 않을 수 있겠단 생각도 해본다. 그런 일이 요즘 점점 잦아진다.


얼마 전에 한 가지 재밌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학비나 의료보험 혹은 월세 등은 지난 십수 년 많으면 2배도 넘게 올랐는데, 그 외 자동차 값이나 생필품 가격은 오히려 내려갔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인플레이션 지표(CPI)에 대해 정확히는 모르지만, 전자 중 몇몇, 예컨대 의료보험은 지표에 잡히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병원 문턱이 낮아졌다곤 해도 약값이나 진료비가 복불복이라 여전히 아프면 그냥 앓고 마는 나라, 멀쩡하게 일하다가 이런 저런 이유로 월세를 낼 수 없게 된 사람들이 셀 수 없이 길바닥에 나앉는 나라, 학비를 낼 수 없는 젊은이들이 스무 살 젊은 나이에 빚쟁이가 되거나 군에 입대해 아프간 같은 곳에서 "조국을 위해" 피와 살을 팔아야 하는 나라, 그 나라에선 요즘 이런 말이 나온다: 지난 수 년간 인플레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물가 상승은 바라던 바라고.


그리고 그 사람들, 근면, 성실, 정직을 덕목으로 삼는 사람들, 미국의 모범인 당신들 높으신 분들은 일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한다. 어떤 말로 비난하는지는 도저히 역겨워 가져다 쓸 수가 없었다. 이렇게 보면 일하지 않는 미국은 서로 다른 2개의 나라인 것 같다. 라틴어를 배운 사람들, 토가만 입지 않은 사람들, "공공을 위해" 명예로운 공헌을 한 사람들, 주식이나 채권 혹은 부동산에 투자하다가 이제 은퇴하는 사람들. 그리고, 모국어도 제대로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들, 짧은 튜니카 대신 그 어떤 유니폼을 입는 사람들, 공공 그 자체인 사람들, 고된 일과 끝에 동네 델리에 들러 복권에 "투자"를 하곤 했던, 언젠간 일터로 돌아가야 할 사람들.


아는 것 없이 쓰다 보니 쉽게 감상적이 되었다. 슬프기까지 한 내 시선이 틀렸기를 바라며, 나는 다시금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한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한 곳, 미국은 아무튼 그런 곳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Bear Mount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