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 재무부 장관의 입에서 "미실현 소득이 3년 동안 연 1000억 원을 넘기거나, 해당 연도에 연 1조 원을 번 갑부들의 미실현 소득에 대해 과세하겠다"는 말이 나왔다. 부자들이 자산을 들고 있는 채로 수익을 미실현하면서 세금을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 논의는 점점 판이 커져서, 의회에 안건이 들락거리기에 이르렀다. 물론 들어가자마자 순식간에 짤렸지만...
며칠 후,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에 "나는 테슬라 주식 외엔 소득이 없어서 저거 못 낸다. 그럼 내가 지분의 10%를 팔아야 하냐?"라고 올리곤, Yes/No 투표를 당겼다. 일론 머스크는 결과에 승복하겠다고 미리 밝혔고, 결과는 Yes 였다. 이 경우, 일론 머스크는 약 20조원에 이르는 테슬라 주식을 팔게 된다.
그 동안 해당 트윗의 댓글에선 정치, 사회 그리고 테슬라 주주와 안티들의 난장판이 벌어졌다. 기억나는 것들 몇 개를 꼽아보자면:
- 모종의 이유로 일론은 지금 테슬라 주식을 팔고 싶지만, 지금 "좋은 사람"이 될 기회를 잡은 것이다.
- 당연히 팔아야 한다. 우리는 그 돈을 더 나은 인프라를 짓는데 쓸 수 있다.
- 팔면 안 된다. 이건 테슬라 주주들에 대한 배신이다.
-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는데 미리 팔 필요가 있나?
- 팔면 안 된다. 정부에게 그 돈을 주라고? 차라리 당신이 굴리는 게 낫다.
하지만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오레곤 주지사가 머스크의 해당 트윗에 대고, 부자들은 미실현 자산을 팔아서 세금을 내야 한다고, 머스크는 테슬라 주식을 팔아서 미국의 인프라 빌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 뒤였다. 머스크는 잠시 정신이 나갔는지, 오레곤 주지사의 프로필 사진에 대해 모욕적인 19금 댓글을 달았다(...)
재밌는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이제 재미 없는 이야기를 해보자. 그나마 더 재미 없을, 옐런 재무부 장관의 저 발언이 도대체 말이 되는지는 건너뛰고, 이 촌극에서 드러난 미국의 시대정신 정도만 살펴보자: (1) 빈부격차, 그리고 (2) 정부에 대한 불신. 그 중, 오늘은 (1)만 살펴보기로. 사실 (2)는 경험하거나 줏어들은 것도 부족하고 잘 모르기도 해서, (1)만 길게 쓰고 (2)에선 맥없이 마무리만 할 수도 있다.
(1) 빈부격차에 대해:
이 스노우볼은 사실 리먼 때부터 굴러왔다. 한국인들이 노후 준비를 부동산으로 한다면, 미국인들은 노후 준비를 주식으로 한다. 때문에 한국에서 부동산 정책에 공을 들이는 것 만큼이나 미국 정치에서는 주가에 공을 들인다. 그러던 것이, 리먼 때 실물경제와는 아무런 상관 없이 금융권의 탐욕으로 주식시장이 무너져버린 것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노후 자금이 박살이 났고, 피해자들은 분노했지만, 일반 시민들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반면, 금융권은 미국 정부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았다. 금융권이 흔들리면 미국 경제 전체가 흔들려 버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정의 없는 이 결과는 시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그리고 이런 "시스템"에 대한 불신은 십수 년을 건너 비트코인 추종자들의 "인터넷이야말로 시스템에 대한 헷지"라는 논지로 이어졌다.
거기다 최근 코로나 판데믹을 전후해, 미국엔 대선이 끼어버렸다. 따라서 행정부는 Stimulus Check 외에는 인프라건 뭐건 일을 벌려볼 여건이 되지 않았고, 결국 그 부담은 고스란히 연준의 몫이 되었다. 선택의 여지 없이, 연준은 실물 경제에 대해 구제금융을 무한정 주입했고, 결과는 어마어마한 양적 완화였다. 세계 1위 경제 대국의 사활을 건 양적 완화는 고스란히 자산의 버블로 이어졌다. 최신형 아이폰이나 테슬라 자동차, 펠로톤 자전거 같은 고가품들은 물건이 없어서 못 파는 지경에 이르렀다. 부동산, 주식, 채권이 모두 오르는 기현상이 벌어졌고, 안전자산에 너무 돈이 꽉꽉 들어찬 나머지, 흘러 넘치는 돈이 갈 곳을 찾다가 미국의 빅텍이나 "언택" 주식들로까지 흘러 들어갔다. 그렇다고 위험자산군이 오르지 않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예컨대 비트코인이 올랐다. 금이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동안, 디지털 금의 자리마저 꿰차게 된 것이다.
거기다 올해 들어 특정 자산으로 10억 이상을 벌어들인, 소위 "비트코이네어" 혹은 "테슬라네어"들이 속속 출몰했는데, 그 중엔 물론 비트코인이나 테슬라 초기 투자자인 소시민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부자들이 더 부자가 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애시당초 비트코인이나 테슬라에 대해 일찌감치 들어볼 기회는 부자들에게 더 많았던 것이다. 그리고 작년-올해에 걸친 자산 버블 기간 동안, 기술 투자자 내지는 사업가들 중에선 "빌리어네어"들이 속속 출몰하면서 담론은 이제 과정의 평등을 넘어서 결과의 평등을 향해 가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사실 예전부터 있었다. 미국은 과정 자체가 공정하지 않은 나라이기 때문에 결과의 평등이 필요하다는 분위기. 결론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전제 자체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가령 학군을 놓고 보면, 한국에선 상상할 수도 없는 격차가 벌어진다. 점심 시간에 누구는 핫도그나 피자에 콜라를 급식으로 먹는데, 누구는 탄단지에 섬유질까지 밸런스를 잘 갖춘 급식을 먹게 된다. 교육과정이나 교사의 질, 그리고 학생들의 레벨과 배경, 과외활동의 기회 등등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고 1년에 학비를 몇 만불씩 받아먹는 사립학교를 보낼 돈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기 때문에, 교육에 관심 있을 정도로 어느 정도 사는 가정집이라도 자택은 학군 좋은 곳에 얻어놓고 출퇴근을 편도 90분씩 하는 학부모들이 적지 않다.
과정의 불평등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해보자. 한 번은 콜로라도에서 우버를 타고 가는데, 중년의 기사 아저씨가 자기도 뉴욕 출신이라고, 그런데 자기는 Upper State에서 왔다고 했다. 지금은 이 근방에 텍 회사들이 들어오고 있어서 작은 부동산 사업을 하며 틈틈이 우버를 하고 있지만, 어렸을 땐 주변에 대학을 가는 친구들도 없었고, 가족들도 자신에게 당연히 농장 일을 물려받기를 기대했다고 했다. 그게 싫어서 자기는 대학에 갔고, 졸업 후 부동산 일을 하게 됐고, 어느덧 여기까지 흘러들어왔다고 말했다. 반면, 같은 뉴욕 주의 브롱크스엔 미국 최고의 과학고가 있고, 맨해튼 내에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책임지는 명문 사립학교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그곳 비싼 학비를 감당할 수 있는 학부모들도 때때로 "빈곤은 상대적인 것"이라고 느끼게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부자들이 널려있다는 학교들이다.
필자가 미군 부대에서 군 복무를 했을 때에도 직업군인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군대에 뼈를 묻을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과, 의료보험이나 학비지원 요건만 맞추면 바로 전역할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 미국은 대학교 학비도 비싸고, 의료보험도 (개선이 되고 있지만)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저 두 조건은 대단히 매력적으로 다가오게 된다. 만약 군대를 가지 않는다면? 첫 번째로, 학자금 대출로 몇 억의 빚을 지고 사회에 나가게 된다. 거기다 두 번째로, 의료보험이 좀 받쳐주는 좋은 직장을 얻지 못한다면 물가나 임금보다 그 상승률이 훨씬 가파른 의료보험을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괜히 미국에서 이런 군 복무 환경을 두고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을 위해 피를 판다"고 비난하는 게 아니다.
과정이 이렇게나 불공정하기 때문에, 평등에 대한 이야기가 쉽사리 결과의 평등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지난 대선 때, 민주당 경선 후보였던 블룸버그에게 기자가 "당신이 그렇게 부자인 것은 정당한가요?"라고 물어왔다. 블룸버그는 잠시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 같았지만, "네, 제가 번 돈이니까요" 라고 대답했다. 필자는 이것이 대단히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의 재산권에 대해 병적으로 집착하는 미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이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블룸버그는 리먼 때 양아치 짓을 했던 금융권과는 달리 (물론 일은 긴밀하게 같이 하니 아예 무관하다곤 못하지만) 미디어 재벌로 당대에 자수성가해서 기부 활동도 활발하게 하는, 전형적인 "프로테스탄트 미국"의 "선한 부자"다 (물론 본인은 유태인이고 유대교 신자지만).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도 결과의 평등에 대해 물어야만 하도록 사회 분위기의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머스크가 테슬라 지분 10%를 내놓는 데에 갑론을박이 있지만, 불변의 사실은 그가 보유 주식의 10%를 팔면서, 자신의 "경영권" 10%를 내놓기도 한다는 것이다. 머스크는 한 때 테슬라 상장을 후회한다고 할 정도로, 본인의 경영권에 대해 집착하는 인물이다. 그 속내야 어쨌든, 그리고 미실현 수익 과세가 얼마나 Corporate America에 대해 "trimming the winner"로써 불리하게 작용하는지도 제쳐놓고, 그런 머스크조차 이제는 결과의 평등에 대한 담론을 아주 외면하지는 못하는 (혹은 이용하고 싶은) 것이다.
미국은 이제 지역적으로도 (도심 vs. 교외) 그리고 직업적으로도 빈부격차가 벌어지는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혹자는 코로나 이후 정착되는 재택근무와, 거기에 더해 너무나 높아진 실리콘 밸리 집값에 대항해 텍 회사들이 캘리포니아를 나오고 있는 것과, 더 많은 기술자들을 요하는 4차 산업 혁명이 미국의 중산층을 어느 정도 되돌려 줄 거라는 기대도 하는 것 같다. 그에 대해선 필자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요소들을 들어내고 나면, 여태까지의 미국은 그 시스템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빈부격차를 벌리는 쪽으로 굴러왔다. 따라서, 이대로 기울기를 따라 계속 흘러가도록 (gradient flow) 계속 내버려 둘 순 없고, 비가역적인 변화(non-adiabatic change)를 통해 더 나은 최선(optimum)을 향해 가야 한다는 논지엔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우리는 그걸 누구 손에 맡겨야 하지? 이제 우리는 다음 시대정신으로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