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이 불공정하다. 그러면 이 과정은 어떻게 고쳐야 하는가. 교정의 과정 자체는 그렇다면 천천히, 조심스럽게, 가역적으로 진행이 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결과의 평등이란 급진적인 방식으로 최대한 빨리, 비효율을 감수하고 비가역적으로 진행이 되어야 하는가.
결정적으로, "누가" 해야 하는가?
(2) 정부에 대한 불신
1부에선 미국의 빈부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필자가 미국에서 경험한 바를 토대로 증언했다. 그 중엔 리먼 사태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금융권이 사기를 치고, 정부가 커버하고, 여기에서 이미 정부에 대한 불신은 더해졌다. 물론 그 뿌리는 월남전이나 그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겠지만, 일단 우리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이어진다.
양적완화와 인플레에 대한 이야기가 요즘은 화두가 되고 있다. 물류 체인의 병목 현상과 시중에 풀린 많은 돈은 원자재 가격 상승을 견인한다. 그리고 코로나 이후 노동자들의 현장 복귀가 늦어지며 부족한 공급과 넘치는 수요가 힘을 합쳐 인건비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원가와 인건비 상승이 합작한 소비자 물가지수는, 오늘 발표되기로는 예상을 상회했다.
연준은 앞으로도 이와 같은 인플레가 꽤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지만, 어디까지나 일시적일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목재와 같은 원자재 가격들은 일시적으로 크게 올랐다가 떨어지고 있다. 누구보다 많은 경제 데이터를 들고 있는 연준에서 하는 말을, 보통이라면 믿어야 하겠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그들은 연준이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들이 체감하고 있는 인플레가 진실이며 계속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시각은 소시민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금리가 올라갈 것이라 전망하는 "리틀 버핏" 빌 애크먼이나, 연초부터 인플레가 올 수 밖에 없다고 외치고 다닌 "스팩의 왕" 차마스 팔리하피티야,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온다고 공언한 트위터와 스퀘어의 ceo 잭 도시, 그리고 데이터 기업 팔란티어의 수장인 피터 틸까지, 정말 많은 사업가들과 투자자들이 인플레의 지속을 점치고 있다.
사실 미국이 그토록 기다리던 인플레니 보통 때라면 연준 입장에선 눈물이 나게 반가울 일이지만, 지금은 돈을 어마어마하게 푼 뒤라 반가울 수도 없는 노릇이 됐다. 혹자는 심지어 이렇게도 말한다. 작년에 비해 올해 칠면조 값이 2배로 뛰었는데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음), 작년 이맘 때에 비해 비트코인이 5배로 올랐기 때문에 비트코인으로 산다면 칠면조 값이 60프로 할인 중인 거라고. 당연히 인플레를 비꼬는 말이지만, 소비자 물가지수가 급등한 데 비해 (기저효과는 있지만) 제아무리 인건비가 올랐다곤 해도 그건 일손이 달리는 "리오프닝" 현장 얘기지, 작년부터 그와 상관 없이 일을 해왔던 대다수 노동자들의 임금이 그만치 상승한 게 아니기 때문에, 인플레로 인해 실질적인 "세금"을 더 내고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이 때문에 연준이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며 자산시장의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온건하게 나오면, 인플레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도리어 "이것은 드러나지 않는 과세"라며 반발하는 것이다. 이미 트위터에는 파월 의장이 돈을 기관총으로 찍어내거나 하는 밈이 성행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연준은 금리를 올릴 수 없는 곤경에 빠져 있음을 찝어내는 사람들도 있다.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양적 완화는 언젠가 값을 치뤄야 할 것이고, 그 청구서는 금리 인상 시에 날아온다며. 실제로 미국은 얼마 전 디폴트 소동을 겪은 바 있다. 이에 대해 페이팔 마피아 출신의 투자자 데이빗 삭스는 현대화폐이론에 빗대어 미국의 과도한 부채를 비판하며 헤밍웨이의 말을 빌려온다:
"How did you go bankrupt?"
"Two ways. Gradually, then suddenly."
- 헤밍웨이, "The Sun Also Rises" 중.
그리고 실제로 이러한 모럴 해저드에 의해, 인플레든 부채든 자산시장 버블로 인해서든 붕괴가 오게 되면, 정작 그 판단과는 상관 없었던 사람들이 그 값을 대신 치르게 될 것이라는 게 골자다. 마치 리먼 때처럼.
과정이 불공정하다. 그 과정을 고쳐야 한다. 그런데 그 과정을 고쳐야 하는 정부를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 연준은 그 한 가지 예일 뿐이다. 미실현 소득에 대해 과세를 해서 그 돈을 어디에 쓰려고 하는가? 예컨대 오리지널 민주당 버전의 "인프라" 법안에는 인프라와 상관 없는 복지 예산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공화당에선 크게 반발했고, 미국의 디폴트를 인질로 잡는 간땡이가 부은 1년에 걸친 줄다리기 끝에 결국엔 민주당이 주지사 선거 몇 개를 지고 나서야 백기투항을 해서 인프라 빌은 그 규모가 크게 줄어든 채로 통과될 수 있었다. 법안은 전체적으로 절반 이상이 삭감됐지만, 통과된 인프라 빌의 내역을 보면 교량, 항만, 공항, 대중교통, 브로드밴드, 친환경 인프라 등등 "인프라" 예산들은 털끝 하나 삭감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자기 지지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인들로선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곤 하지만, 실물경제가 정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행정부가 소매를 걷어부치고 나서서 연준의 부담을 줄여줘야 하는 이 중요한 시기에 자신들의 이익집단을 우선해서 움직이며 시간을 질질 끌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게다가 세간의 이목이 몰리면서 각종 모럴 해저드까지 수면 위로 드러났는데, 예컨대 요즘 민주당 하원의장인 낸시 펠로시의 개인 포트폴리오를 따라하는 사람이 하나 생겼다. 그는 낸시 펠로시야말로 워렌 버핏 따위는 발끝에도 쫓아올 수 없는 이 시대 최고의 투자자라고 말하며, 그녀가 산 주식이나 옵션들이 "공교롭게도" 항상 오르며 압도적인 수익율을 보이는 것을 비꼰다. 게다가 얼마 전엔 연준 의원들이 테이퍼링 발표에 앞서 개인이 보유한 금융 자산들을 처분했을 뿐 아니라, 그 사실을 친지에게까지 알려 한밤 중에 그들 가족이 급히 브로커에게 전화해 금융 자산들을 처분했던 것까지 드러났다.
물론 어느 나라에나 부정부패나 모럴 해저드는 있게 마련이고, 불평등은 결국 그것을 극복하고 해결을 해야 하는 것이니 일단 면죄부를 줘 보자. 그렇다면 과연 부패한 정부는 우리가 원하는 변혁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인가? 시야를 넓혀보면 이야기는 조금 더 실망스러워진다. 첫째로, 시간축을 따라 지지난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당시 공화당에선 프레임질에 도가 튼 도널드 트럼프가 당내 경선 후보들을 전부 다 겁쟁이 내지는 부패한 기성세력으로 몰아붙인 끝에 당선이 됐다. 반면, 민주당 경선에선 당내 진보인 버니 샌더스를, 당내 중도인 "고인물" 힐러리 클린턴이 꺾고 올라왔다. 그리곤 충격적인(?) 패배를 도널드 트럼프에게 당했다. 그 과정에서 드러난 민주당과 언론의 유착은 하나의 촌극일 뿐이었고, 이제는 많이들 아는 이야기가 된 미국의 도시 (클린턴) vs. 시골 (샌더스, 트럼프) 구도야말로 지지난 대선의 숨은 화두였다. 시간을 다시 돌려 작년 대선으로 돌아오자. 바이든은 샌더스나 워렌을 꺾고 올라온 중도 진영의 후보였지만, 트럼프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당했던 민주당은 확실히 복습을 잘 해왔고 지지난 대선보단 좀 더 시골에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트럼프는 (그간의 막말 스택은 제외하고) 재임기간 막바지에 터진 코로나로 인한 경제나 민생의 위기를 결국 극복하지 못하고 패배했다. 대선이 끝난 뒤, 재무부 장관에는 워렌의 이름이 거론됐지만, 거대 월가 은행 블랙록의 사활을 건 로비 끝에 (워렌은 월가 대형 은행들을 조지려고 맘을 단단히 먹은 사람이므로) 바이든은 옐런을 선택했다. 샌더스는 이에 대해 "선거 끝났다고 진보 세력은 단물만 빨아먹고 버리는 거냐"며 길길이 뛰었지만, 이미 일은 결정이 난 후였다. 어떤가? 변혁을 원하는 진보 지지자들이 보기엔, 선거 기간에 변하려는 "척"을 했던 "고인물"들이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꾸어 변화를 거부한 것처럼 보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의지의 결여가 의심될 수 밖에 없다.
반대로 공간축을 따라, 정부와 비견이 될 만한 민간 부문들을 살펴보자. 닷컴 버블 이후, 실리콘 밸리는 무섭게 성장하여 이제 미국 경제를 월가, 메인스트릿과 함께 삼분하고 있다. 빅텍들이 너무나 커진 나머지 악의 축 취급을 받고 있긴 하지만, 그들이 산업 전반의 근무 환경에 미친 영향은 (아주 느린 변화지만) 놀라운 수준이다. 돈 잘 버는 실리콘 밸리에서 우수 인력들을 좋은 조건으로 쓸어가기 때문에, 실리콘 밸리 외 기업도 고급 인력 확보를 위해선 변화해야만 하게 된 것이다. 이미 "텍 기업처럼 캐쥬얼한 분위기와 유연한 근무 여건"이라는 말은 하나의 홍보문구로 자리를 잡았다. 게다가 하나의 국가라고 해도 좋을 규모를 운영하고 있는 빅텍들이 극한의 경쟁 속에서 빠르고 창의적인 의사결정으로 20년이 넘도록 어마어마한 성장을 이어나가고 있다. 최근엔 머스크나 잭 도시 같이 미디어 친화적인 ceo들이 등장해, 젊고, 캐쥬얼하고, 주주친화적이며, 스마트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제, 눈을 돌려 미국의 의회 정치를 보자. 나이 많고, 딱딱하고, 거만하고, 고루하며, 비효율적인 "레거시" 시스템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미국의 정치란 게 애초에 비효율을 감수하고 최악은 막는 방향으로 설계가 됐으니 어쩔 수 없지만).
이미지 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0년-2018년의 기간 동안, 미국 연방 정부의 R&D 지출은 고작 20% 정도 밖엔 늘지 않았다. GDP 대비 R&D 정부 지출이 역대 최저라는 얘기도 있다. 때문에 현재 미국의 이공학부에는 점점 박사 후 연구원이 늘어가는 분위기이며, 학계 전반에서 첨단 산업으로의 브레인 아웃플로우가 두드러진다. 물론 과학기술이 보다 실용과 가까워지는 것은 매우 좋은 현상이지만, 그것이 등 떠밀려 일어나는 일이고, 지난 십여 년 간의 경제 호황에 기대고 있는 것이라면 언젠가 문제가 되지 않을까?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냉전 이후 펀딩이 짤려서 취소되고 밀리기가 일쑤였던 항공우주 프로젝트들은 이제 SpaceX에서 멱살 잡고 끌고 간다. 필자가 어렸을 때엔 로켓이나 탐사선을 쏘아올리는 것은 몇 년에 한 번 있는 큰 이벤트였다. 그러던 것이, 요즘은 SpaceX에서 수시로 로켓을 쏘아올린다. 물론 그간의 수많은 기술 발전들이 경제성과 수익성으로의 길을 비춰주는 것이겠지만, 그 동안 정부가 펀딩 짤라서 발전이 늦어지고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고, 결국 정부가 손 놓고 있던 일을 민간에서 하고 있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인터넷과 빅텍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정부는 단순 걸림돌이 아닌가? (실제로 페이스북이 하려고 했던 수많은 사업들에 이리 태클 걸고 저리 태클 걸어서 몇 년째 현금만 무한정 쌓게 한 것이 미국 정부이기도 하다.) 여기까지 가게 되면 이런 말이 나오게 된다: "그 사람들에게 돈을 주느니, 머스크 당신이 굴려주시오."
이상으로 "누가" 해야 하는가에 대해, "정부"라는 답을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 그리고 만성적으로 시스템을 거악으로 바라보는 미국 사람들의 시선에 대해, 필자가 간접적으로 경험한 그 단편들을 살펴봤다. 필자의 짧은 식견으로는, 이런 연유로 과정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비가역적 변화가 정부 주도로 일어나기는 꽤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앞서 밝혔듯, 비가역적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 자체는 사실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일례로 Equal Opportunity 나 Affirmative Action 등은 논란은 있긴 해도 이미 미국 사회의 주요한 흐름이 되었다. 뭐만 하면 "systemic"이라고 도매금으로 넘겨버리는 세태도 이미 하나의 운동이 되고 있다. 하지만 옐런 재무부 장관의 발언에서 보이듯, 혹은 워렌을 팽한 재무부 장관 임명에서도 보이듯, 애석하게도 그런 목소리들은 정치적으로 이용만 당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미국의 정치 제도는, "떼법"에 대한 "편리한 안전장치"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연방 제도인 미국에서 정부 주도의 변혁이 각 주에서 받아들여질지도 의문이다.
그럼 도대체 "누가" 해야 하냐고? 필자는 잘 모르겠다. 막연하고 두루뭉실하게, "인터넷"이라고 어디서 줏어들은 남의 생각을 떠올려 보자니, 1부에서 말했던 머스크의 트위터 투표를 두고 차마스 팔리하피티야의 아버지가 올린 다음의 트윗이 생각났다:
"Can't believe everyone is so surprised about Elon making a multi-billion dollar decision using a poll we literally do this every four years."
- Dr. Parik Patel, BA, CFA, ACCA Esq.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에 대한 "인터넷"의 대답이 아닐까. 물론 머스크는 내년 8월 만기인 스톡 옵션을 왕창, 지난 9월에 미리 스케쥴 잡아놓은 대로 행사하면서 테슬라 주식의 10%를 팔겠다는 공약을 지키고 있다. 투표 자체가 쑈인 그런 것마저 똑같지만, Yes든 No든 자기가 무조건 이득인 투표를 사전에 깔아놓는 머스크의 정치가, 디폴트를 인질로 잡고 인프라 빌 줄다리기를 하다 주지사 선거 두 판을 내리 지고 복지예산 다 털리는 쪽보다는 "고도의 사기술"로써 훨씬 웃길이라는 씁쓸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글을 마치며, 비가역적 변화라는 것도 그 알맹이는 사실 몇몇 특출난 리더들에게 알면서도 속아주는 것이려나 하는 염세적인 생각을 애써 지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