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변과 주

가을의 해석학

by 김간목

언덕과 언덕이 겹치고

언덕 위 언덕이 자라는

늦가을,

아스팔트 언덕배기서

나는 아무것도 관통하지 않는다


여름날이 썰물처럼 자리

들이치는 어는 점에 나무들

밸브 빨갛게 잠그고,

그러면 언덕 위의 나뭇잎들도

그 위 언덕의 남은 잎들도

그리고 나라는 이 허수까지도

마르고 가물

또 가을에 불타다


비탈에서 한날 한시에 우리는 태어났다

타고 남은 잎들로 우린 태어났다

아스팔트 위 투둑 투둑

떨어지고 벗겨지고 부스러져 들고 나고 쓸려다니

잠시 잠깐, 한 찰나에

안장점에 얹힌 우리,

아래로, 아래로 불어가는 바람

스스로의 돛이 하나, 둘, 셋, 넷...


이제 앙상한 나뭇가지 너,

움츠려 떠는 지류야

모로 선 1차선 다리야

언덕배기서 너는 쩐지

밀린 벌을 서고 있구나

머리 위로 손을 천 개 다 들고

면벽도 없이 밸브를 잠가서인가

아니면 뻣뻣 껍데기 안에선

여즉 물관이 흐르는 탓인가


보라, 파도는 좀처럼 죽지 않는다

우리가 움츠려 몸을 떠는 동안엔

걷어찬 신발이 구르는 동안엔

부스러져 들고 나고 쓸려다니는 동안엔

언덕과 언덕이 겹치고 언덕 위 언덕이 자라고 아스팔트 언덕이 습격처럼 닥치는 이 계절엔

찬 바람이 칼춤을 추는 이 잔인한 연속이 그저

언덕배기 찰나인 동안엔

파도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맨발로, 이 차건 계절에 우리는 온다

언덕배기서 나는

풍덩

하고 신발을 걷어찬 사람

굴러라 신발,

가서 얹혀라 스스로의 돛,

정 들면 다 모래톱이지

그러 나는 늦가을 언덕배기서

발가락을 셀 뿐

언덕길 비탈에 서서 나는

끝을 탐색하는 사람, 혹은

여느 사람, 혹은

맨발 두 짝

그런 대단하신 자격으로 나는 이제

파도를 탄다


연신을 끊고서야 나는 비로소 왔다

조금 늦었고,

더는 아무것도 관통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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