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엔 서부에 사는 후배가 새벽 3시 넘어 깨어있는 나를 보고 형 그렇게 살다간 몸 삭는다고 했던 일이 있었다. 맞는 말이다. 그럼 오늘은 내 편두통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첫만남은 즐겁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입시 공부를 하다 찬 바닥에 누워 잠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오른쪽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재밌었던 건, 편두통 때문에 아무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던 것이었다. 말을 하려면 어쨌거나 단어를 최소 하나는 생각해야 하는데, 그에 해당하는 한국어, 영어, 불어 단어들이 동시에 생각나고, 그걸 입 밖에 내려면 하나의 언어로 필터링을 해야 되는데, 그 필터링을 하려는 순간 다음 언어가 생각나면서, n시간에 3^n만큼의 정보를 처리해야 하게 되어 에러가 뜬 것이었다. 덜컥 겁이 나서, 고대로 응급실에 실려가는 주접을 다 떨었었다. 응급실서 약을 먹었는지 어땠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데, 뇌파 검사를 해보니 대충 혈관이 부풀어 머리 여기저기를 압박하는 통에 뇌파가 불규칙해졌다고 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일시적인 것 같고, 크게 위험하진 않을 것 같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이 참 용해서 차츰 컨디션이 나아진 뒤 집으로 돌아오는데, 천재들은 혹시 평소에도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해서 사고의 속도가 그렇게 빠른가 싶어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었다. 그러게, 그대로 안 고쳐지고 익숙해진 채로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꼬.
그 뒤로 편두통은 내가 외로울 때면 불쑥불쑥 위문을 왔다. 확실히 내 편이거나, 혹은 숙주인 나와 적어도 이해관계는 일치하는 것 같은 게, 일을 하면 낫는다. 그러고 좀 쉴라치면 한가해진 내가 호오오옥시나 외로울까봐 불쑥불쑥 나타난다. 한 번은 대학교 때 만 100여 시간 동안 다섯 시간 겨우 자며 과제를 했는데, 뇌내 클럭 스피드는 올라갔지만 멀쩡하길래 완전히 방심하고 있다가, 과제를 다 해치우고 모처럼 쉬려는 그 주말에 방심한 나를 엇박으로 털어먹었다. 그런 식이었다. 이제 생각나기를, 다니던 학교는 얄궂은 곳이라, 주중엔 영화 속 캘리포니아 마냥 화창하다가도 비가 오면 꼭 주말이곤 했는데, 편두통도 비처럼 딱 그랬다. 물론 화창한 주말이라고 오지 않은 건 아니었고.
그래서 편두통 짬이 좀 차고 난 다음 내 집이나 오피스엔 늘 애드빌(이부프로펜)이 있었다. 편두통이 올 것 같으면 잽싸게 한 알 먹지만, 좀처럼 약효를 본 적은 없다. 베개가 문제인가 싶어 베개도 낮은 거나 높은 걸로 바꿔보기도 했고, 혹시 환기가 문제인가 싶어 싸늘하다면 싸늘한 영상 5도 캘리포니아의 겨울밤에도 창문을 다 열어놓고 잔 적도 많았다. 사실, 많이들 수면 사이클이 주 원인이라고 말하니 아마도 그 말이 맞을 텐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규칙적으로 수면을 취하며 대조군을 형성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딱히 도움이 되는 해법은 아니다. 왜냐면 내 수면 사이클은 약 20년째 불규칙하기 때문이다. 세계 각지에 퍼져 있는 동업자들도 이제 내가 하루 중 그 어느 때라도 1/3의 확률로 자고 있고 2/3의 확률로 깨어있을 거란 걸 알기 때문에, 엄한 시간에 답장이 오더라도 크게 놀라지 않는다. 요즘은 매일 12시간 간격으로 2번씩 미팅을 하는데, 동업자 한 명이 당연하다는 듯 지난 새벽 2시 미팅에서 언급하고 넘어간 내용을 한 번 들여다 봤냐고 아침 10시 미팅에서 물어봤고, 나도 물 흐르듯 들여다 본 내용을 설명하고 나서야 뭔가 이상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식이다. 이러니 수면사이클이 규칙적이라고 해봤자 장기간의 대조군을 형성할 수가 없고, 그래서 심증은 너무 가지만 명확한 원인은 모르고만 산다.
고해를 하나 하자면 건강을 딱히 돌보지 않은지도 꽤 오래 됐다. 그럼 혹자는 건강이 나빠져서 편두통이 점점 심해지는 게 아니냐고 물을 수 있는데, 삼시 세끼 영양까지 신경 다 쓰면서 몸 만들 때에도 편두통은 있었기 때문에 큰 의미 없다. 그 때엔 도리어 재밌었던 게, 체지방률이 한자리였기 때문에 힘을 쓰든 신경줄을 갖다 쓰든 아무튼 뭐만 썼다 하면 머리 양옆으로 핏줄이 툭 튀어나오곤 했다. 그럼 편두통이 왔을 땐 어떻게 되냐면, 걔들이 심장처럼 벌떡벌떡 뛰는 게 보인다. 명확하게 보이는 편두통의 원인들에게 '오늘은 너희들 컨디션이 좋아보이는군'이라고 뇌까리며 거울 속을 들여다 본 기억이 있다.
만성이 되면 질환이라도 이처럼 유쾌하게 받을 수 있게 된다. 한 때는 이것이 성장통이라고 자랑스레 여기며 산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성장통이란 놈이 그렇게 성장할 때마다 알림처럼 째깍째깍 와주는 게 아님을 안다. 반면에 전혀 성장하지 못하고 있을 때에도 고통은 잘만 오니 진실로 고통은 영원하다. 어렸을 땐 사시사철 감기를 달고 살았는데, 감기가 없어지고 나니 이제는 편두통을 달고 산다. 오기도 점점 아무 때나 오는 것 같다. 수면이 불규칙할 때, 멀리 여행을 다녀왔을 때, 그냥 컨디션이 안 좋을 때, 그래서 나는 이제 모르겠다.
요즈음은 그런 생각을 종종 한다. 결국 이대로 편두통이 커져서, 심장이 점점 올라붙어 벌떡벌떡 뛰는 머리 양옆의 혈관으로 이동해서 마침내는 나를 잡아먹는 게 아닐까, 언젠가 내가 쓰러진다면 편두통 때문이 아닐까 하고. 말을 그로테스크하게 해서 그렇지, 딱히 걱정스럽진 않다. 왜냐하면 이런 공상은 근본적으로 주접이기 때문이다. 나보다 더 아픈 사람도 많은데, 뭘. 사는 건 원래 아픈 일이다. 몸이 좀 삭으면 어때? 몸은 본디 쓰라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든 쓰러지는 것이고, 쓰러지는 데엔 제각기 나름의 이유가 있다. 따라서 먼 훗날에 편두통이 정말로 나를 쓰러트릴지는 두고 볼 일이라도, 나를 서서히 좀먹는 것들을 미리 알 수 있는 나는 정말로 운이 좋은 사람이다.
한 번은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내 이 편두통처럼 달고 사는 고달픔이 당신들에게도 있느냐 물었더니, 몇몇이 째까닥 자기들도 두통이 있다고 답해온 적이 있었다. 찝찝하게시리 두통 외의 고달픔들에 대핸 별 말들 없었는데, 두통 외에 달고 살 만한 고달픔이란 잘 없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에게 없는 고달픔엔 관심들이 없게 마련인지. 어쨌든 저마다들 약을 먹거나, 잠을 규칙적으로 자거나 하는 식으로, 두통을 물리치는 나름의 대처법들이 있는 것이 재밌었다.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내 친구들이라고, 즐거운 마음으로 편두통 안에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