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막내딸(13)

서울살이(2)

by 옥이

항상 정직하게 바르게 부모님 욕 안 먹이고 또 소개해주신 분을 생각해서 잘하려고 했다. 그런데 처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그 과정들은 너무 힘이 들어 다른 데로 가고 싶었다. 갈 때도 없었지만 그만두고 싶었다. 일도 많고 아이들하고 씨름하는 것도 힘들고 남자아이들한테 놀림을 당하고 내게 골탕을 먹이는 것도 싫었다. 어쩌면 이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통과 의례로 겪게 되는 일들 인지도 몰랐다. 또 무엇보다도 더 싫은 것은 아주머니한테 의심받는 것이었다. 열심히 잘하려고 하는데 일보다도 사람들이 힘들게 했다. 내가 참고 잘하면 나중에는 나아지겠지 생각을 하며 참았다. 그래서 아무리 힘이 들어도 참고 견뎌냈다. 한두 달 살다가 그만두어도 보기에 좋지 않았고 다른 데 가서도 힘들고 불편한 것은 다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이겨내지 못하면 다른 데 가서도 있지 못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할 수만 있으면 한 우물을 파고 싶었던 것이다. 다시 사람을 사귀는 것 또한 나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명랑한 성격이 아니다 보니 스스로 어려운 점이 많았다.


일이라는 것은 항상 잊을만하면 생기고 또 잊을만하면 한 가지씩 생기는 것 같았다. 하루는 아이들도 학교 가고 난 오후 시간이었다. 거실마룻바닥이 나무로 되어 있어서 바닥을 광내기 위해 기름걸레를 따로 대여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청소할 때마다 물걸레로만 사용을 하고 나니 기름걸레를 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언제 써야 되는지 제대로 사용방법도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기름걸레를 교체하러 아저씨가 온 것이었다. 걸레를 교체하려고 하니 걸레가 좀 깨끗한 것이었다. 가지러 온 아저씨는 이 정도면 많이 쓴 거라고 두 달 정도 되면 너무 더러워서 안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름걸레를 현관거실입구와 바닥을 닦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사용해도 된다고 하면서 보여주는데 걸레는 금세 더 더러워졌고 그렇게 교체를 하려고 하니 아주머니가 이런 소리를 듣고 나와서 야단을 치는 것이었다. '비싼 기름걸레를 사용도 안 하고 교체하냐고 여태 청소도 안 하고 뭐 했냐고'하면서 소리를 치고 잔소리를 하니 나는 아주머니가 야단치는 것보다 그 아저씨가 있는데서 야단치는 것이 더 싫었다. 아저씨도 내가 야단맞는 것을 보고 있으니 안 좋았는지 '아니에요 사모님! 이 것 보세요 걸레를 많이 사용해서 바꾸어야 해요. 다른 집 것보다도 많이 사용을 했어요'. 하면서 다른 집 걸레를 내보여 주었다. 그때서야 아주머니는 알았다고 하면서 방으로 들어가시고 아저씨는 무언의 눈빛으로 괜찮다는 듯 나를 쳐다보면서 나갔다. 그렇게 굳어 있던 나는 주방으로 돌아와 서럽고 속이상해서 울었다.


며칠 뒤 시장 보고 들어 오는데 경비실 아저씨와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나를 부르셨다. 힘들지 않냐며 다른데 소개를 시켜준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들어오는 입구마다 경비실이 있었다. 그래서 아저씨는 이런저런 소리를 다 듣고 집집마다 식구가 몇 명인지 일하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다 알게 되었다. 일도 많지 않고 지금보다도 좀 더 편한 데로 소개를 시켜 준다고 했다. 월급도 많이 주고 그때 한 달 월급이 몇 만 원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솔깃해서 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의심이 많았다. 그래서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행여나 아저씨가 돈 받고 나를 팔아먹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오고 가며 안면은 알고 있지만 아저씨를 어떻게 믿고 따라 간단말인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을 했다. 물론 경비아저씨와 청소하는 아주머니는 착하신 분들이었다. 자식 같은 마음으로 해주신 말씀이지만 따를 수는 없었다. 항상 짐도 들어주고 나에게 말씀도 따뜻하게 해 주시고 객지에서 힘들지 않게 좋은 말씀으로 격려도 해주시지만 의심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행착오와 오해로 시작되었지만 하루하루 가족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수선한 79년 가을 해도 지나고 새해 봄 윤중로의 벚꽃들이 날리고 여름휴가엔 함께 기차 타고 배 타고 멀리 해금강까지 따라갔다 오고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일은 항상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생겨났다. 처음에는 감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밤에는 식은땀에 기침에 기운도 없고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아주머니가 나를 데리고 병원엘 갔다. 그것도 한강성모병원 그때서야 정신이 들었다. 전에 왔던 기록이 나올까 봐 걱정이 되었다. 의사 선생님이 몇 가지 묻고 엑스레이 먼저 찍고 나서 결과를 보자고 했다. 나는 다시 마음이 조려 왔다. 도둑질도 안 했는데 가슴이 마구 뛰었다. 먼저 앓았던 흔적이 나올까 봐 뛰었고 또다시 결핵이면 어떻게 할까 걱정이 되어서 마음이 불안하여 뛰었다. 의사 선생님이 다시 불러서 들었갔다. 결과는 후자였다. 의사 선생님이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어야 한다고 했다. 잘 먹고 쉬고 무리하면 다시 찾아올 수도 있다고 했다. 내 몸이 완전히 낳아진 것이 아니었다. 약한 몸으로 많은 일에 시달려서 견디지 못하고 다시 재발을 한 것이었다. 한 번 앓고 나니 놀라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내 병보다도 어디로 가야 할지가 문제였다.


아주머니와 병원을 나와서 집으로 왔다. 어디로 갈 거냐고 아주머니가 물었다. 시골 큰 오빠네로 간다고 했더니 조카들도 있는데 빈 손으로 가면 안 된다고 조카들이 남자아이인지 여자 아이인지 물었다. 그리고 아주머니는 시장에 가서 조카들 옷을 사 오고 나는 짐을 챙겼다. 가기 전 집안 구석구석 정리를 했다. 간다고 생각하니 잠도 오지 않았다. 아침을 챙겨 먹고 치우고 바퀴 없는 큰 가방을 챙겨 들고 나오려는데 마음이 울컥해졌다. 처음보다 짐은 조금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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