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동거
그렇게 쫓겨나듯 나는 시골로 내려왔다. 또다시 아파서 내려온 나를 반갑게 맞아 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짐은 오빠네로 갖다 놓고 엄마가 계신 산집으로 갔다. 동네에서 떨어진 산 밑에 과수원에서 관리를 하고 계신 곳이었다. 나를 보신 엄마는 깜짝 놀라서 나를 보고만 계셨다. 갑자기 얘가 웬일인가 싶어서 말문이 막히셨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엄마는 가슴이 털컥 내려앉았다고 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그랬으니 얼마나 더 놀라고 당황하셨는지 보고 있는 내가 더 죄송했다. 말씀은 하지 않으셔도 얼마나 속이상하신지 엄마의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때서야 참았던 눈물이 통곡하 듯 쏟아져 나왔고 그런 나를 달래주며 엄마와 나는 같이 끌어안고 울었다. 엄마를 보니 반갑기도 하고 안심도 되고 걱정이 되어서 눈물이 나왔다. 다시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린 것이 속이 상해서 나도 모르게 '엄마 내가 또 아파서 미안해!' 하면서 울었다. 엄마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아픈 네가 힘들지 뭐가 미안하냐고 하셨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엄마가 옆에서 간호해 주고 다 할 테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우는 나를 달래주면서 몇 번씩 말씀하셨다. 다시는 아프지 않게 옆에서 돌봐 주어서 병을 낫게 하고 싶으신 굳은 마음이셨다. 처음부터 그리했더라면 이렇게 또 아파서 내려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후회도 섞여 있었다. 그렇게 엄마가 해주시는 늦은 저녁을 먹고 밤새 밀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렇게 엄마와 같이 누워서 자는 것이 얼마만인지 기억이 까마득했다. 조용한 산집 창호지 방문으로 비춰 들어오는 달빛이 얼마나 포근하고 이쁜지 엄마와 같이 있어서 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아침 일찍 어머니는 분주하게 움직이셨다. 마을로 내려가서 나와 같이 살집과 또 많은 살림살이는 아니어도 밥그릇과 냄비 이브자리 등 소소한 것들을 마련하기 위해서 알아보러 다니셨다. 산집에서 살기에는 여러 가지로 불편한 것이 많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어머니가 일하시면서 나를 돌볼 수는 없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큰오빠가 한 동네에 살고 있지만 큰 오빠한테는 말하지 않고 엄마와 단둘이 결정을 하고 나서 집을 알아보러 다녔었다.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또 제대로 된 빈집이 있지도 않겠지만 설령 있다 해도 그걸 살 형편은 되지 않아서 그저 방한칸과 부엌만 있으면 되었다. 그렇게 며칠 산집에서 동네를 오고 가며 적당한 빈 집 하나를 알게 되었다.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에 흙벽돌로 지은 추녀도 없는 집이었다. 덩그러니 방 하나와 부엌만 있고 다른 것은 없었다. 마당도 없고 수돗물도 나오지 않는 보잘것없는 집이었다. 셋방을 살려고 해도 엄마 혼자는 괜찮은데 내가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엄마와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해도 딸의 병 때문에 다들 꺼려했다.
그렇게 내가 번 돈으로 집을 사고 엄마는 손수 도베를 하고 부엌은 황토 흙으로 집을 썰어 넣어서 반죽하듯 개어서 벽을 바르고 온몸에 흙투성이가 되어도 엄마와 같이 산다고 생각하니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엄마는 힘들다고 못하게 했지만 나 역시 엄마 혼자서 동동거리고 다니시는 것이 다 나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서 조금이라도 거들고 싶었다. 이곳은 부모님이 오랫동안 사셨던 아버지 어머니의 제2고향이고 오빠 언니들이 또 내가 태어난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동네 분들이 주방용품을 많이 도와주셨다. 엄마가 잠시 동네를 떠나 있었어도 예전부터 동네인심을 잃지 않고 사신 덕분에 웬만한 것은 다 얻어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식량과 생활용품도 급한 것만 사고 차츰 하나씩 준비하기로 했다. 전기제품은 하나도 없었고 배터리를 넣어서 사용할 수 있는 조그마한 라디오가 전부였다. 그래도 전기불을 사용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겼다. 그렇게 이사하기까지 한 달이 넘게 걸렸다.
큰 오빠는 집을 사고 나서 알려주기도 전에 소식을 듣고 와서 미리 안 알려 주었다고 서운해했다. 미리 말해 주었으면 좀 더 나은 집을 알아봐 주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덧 붙여서 집을 사지 말고 오빠네서 있고 그 돈으로 송아지 한 마리 사서 키워서 못돈을 마련하지 그랬냐고 했다. 오빠는 모른다. 한 집에서 살았을 때 올케의 시집살이를 한 그 고통을 말이다. 그리고 송아지 한 마리는 오빠가 받고 싶었던 것 일 수도 있었다. 직접 말은 안 했어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