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막내딸(15)

엄마와 동거

by 옥이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떨어져 지냈던 세월을 당연하게 여겨왔었다.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늘 그리웠고 보고 싶어도 참아왔던 날들이었다. 그런데 이제 엄마와 같이 있으니 너무 좋았다. 몸은 아프지만 정말 행복했다. 내가 아프니까 그제서 엄마가 내 차지가 되었다. 하루 세끼 밥은 항상 새로 해주셨다. 아침에 한 밥을 점심에 먹으면 밥이 끈기도 없고 배도 쉬 고프다고 끼니때마다 정성을 들여서 해주셨다. 큰 오빠가 올케 모르게 쌀을 갖다 준 적도 있었지만 쌀이 부족할 때는 무를 채 썰어서 밥을 하기도 하고 고마구를 넣어서 밥을 지을 때는 주걱으로 고구마를 으깨어 밥과 함께 섞어서 먹을 때도 있었다. 그러면 무보다는 고구마 밥을 먹었을 때가 단맛이 나서 더 좋았다.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기억 속에 자주 해 먹었던 것이 있었다. 새로 지은 하얀 밥에 계란을 넣고 참기름 한 방울과 진간장 조금 넣어서 비비면 어느새 날 계란은 없어지고 노란 계란비빔밥이 되어서 볶은 김치와 함께 맛있게 먹었던 엄마의 밥이 생각난다.


봄에는 농사철이라 틈틈이 품삯을 받고 일을 하시면서 생계를 이어 나갔다. 가을에는 겨울 땔감을 미리 준비해 놓기 위해 산에 가서 소나무 솔걸 등을 모으기 위해서 큰 보자기를 깔아 놓고 여기저기 다니며 갈퀴로 긁어모은 것을 평평한 곳에 자리를 잡고 보자기에 있는 것을 갖다 쌓아 놓는다. 그렇게 여러 번 반복해서 많이 모아지면 미리 준비해 간 새끼줄을 간격에 맞추어서 바닥에 세 개를 놓고 그 위에 솔걸 등을 갈퀴로 착착 다듬듯이 차곡차곡 쌓아서 다발을 만들어 놓고 새끼줄로 세 번을 꽁꽁 눌러서 묶어 놓으면 빠지지 않고 큰 솔걸 다발이 된다. 머리에 닿는 부분은 수건으로 새끼줄에 끼워 놓고 머리에 대고 이을 때는 약간 언덕에 세로로 세워놓고 머리에 이어야지 힘이 덜 든다.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하나 있었다. 엄마는 나무하러 갈 때 힘들다고 따라가지 못하게 하셨지만 엄마 혼자 가시는 것보다 내가 있으면 심심하지 않고 좋지 않냐고 하면서 따라갔다. 또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도와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찾아낸 일은 엄마가 솔걸 다발을 머리에 이을 때 들어 올리는 것이었다. 그러면 엄마는 솔걸 다발을 이고 일어서는데 한결 수월 하게 일어서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한마디 한다. '엄마 내가 따라오길 잘했지!라고 말이다. 또 한 번은 누가 해가지 않은 곳을 찾아서 솔걸을 많이 긁어모았다. 내가 보기에도 많아서 나도 다발을 하나 만들어서 달라고 했다. 엄마는 안된다고 하시는걸 이고 가다가 힘들면 말하겠다고 하면서 꼭 한 번 해보고 싶다고 우겼더니 엄마보다도 훨씬 작은 다발 하나를 만들어 주셨다. 이 때는 작은 다발 위에 큰 다발을 올려놓고 엄마가 먼저 머리에 이을 때는 내가 들어 드리고 난 다음에 내가 머리에 이을 때는 엄마가 다발을 들어 올려주셨다. 솔걸 나무 다발은 작았지만 무거웠다. 산을 빠져나와서 집으로 가려면 산을 빠져나온 거리보다도 몇 곱은 더 가야 하는데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발의 무게에 눌려서 걸음이 잘 걸어지지가 않았다. 내가 앞장을 서고 엄마는 뒤에 따라오셨다. 내가 잘 못 가니 뒤에서 오시는 엄마도 나 때문에 빨리 가고 싶어도 못 가시는 것이었다. 괜찮냐고 엄마가 물으실 때마다 괜찮다고 갈 수 있다고 했지만 내 목소리는 점점 기어들어 갔다. 걸음도 못 걷고 끙끙 거리는 것이 눈에 띄게 보였는지 엄마는 저만큼 작은 언덕이 보이자 거기서 그만 쉬었다 가시자고 했다. 나도 더는 참지 못하고 그곳에 솔걸 나무다발을 내려놓고 말았다. 잠시 숨을 고르고 내가 이지 못하는 나무다발까지 다시 합쳐 더 큰 다발을 만들어 머리에 이고 나는 뒤를 따라가면서 공연히 나 때문에 엄마가 더 힘드신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나는 작은 다발도 무거워서 쩔쩔매는데 엄마는 어떻게 저렇게 큰 다발을 이고 다니시는지 엄마가 힘드시다고 도와드린 것이 아니라 일을 더 만들어 드린 것 같아 죄송했다. 그렇게 땀을 뻘뻘 흘리면서 무거운 나무 다발을 이고 흙벽돌집 한쪽 담벼락에 갖다 쌓아 놓았다. 솔걸은 긴 겨울 그 어느 땔감보다도 마디고 화력이 좋아서 오래 지속되어 나무를 하러 다녔다.

어머니는 웬만한 짐은 다 머리에 이셨다. 무거운 것은 손으로 들고 다니시지 못하고 이동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힘이 드셔도 머리에 이고 다니셨다. 그래서인지 엄마의 키는 너무 작아졌다.


여름 장마철이나 겨울에 눈이 오는 날에는 신발을 방에다 들여놓고 지냈다. 비가 오면 신발을 벗어 놓는 자리에 처마 밑이 얕아서 비가 들이쳐 비를 맞았고 눈이 오면 신발에 눈이 쌓여서 신을 싣을 수가 없었다. 그럴 때는 엄마가 해온 솔 걸로 아궁이에 군불을 때서 운동화를 말려 줄 때는 운동화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기도 하고 밤새 부뚜막에 놓아두면 아침에는 말라서 싣고 다닐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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