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손 거들기
사계절 중 제일 힘들었던 것은 겨울이었다. 몸이 약해진 탓인지 추위를 많이 타서 항상 내 발은 냉골처럼 차가웠다. 그래서 어머니는 내 발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입으로 호호 불면서 그 차가운 발을 엄마의 가랑이 사이에 넣어서 녹여주셨다. 그러면 내 발은 차츰 따뜻해져서 발이 녹는 것이었다. 그런데 엄마의 몸이 차가워져서 진저리가 쳐질 것이라는 걸 이 때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도 저녁마다 그리 해 주셨다.
그리고 나는 긴 머리를 좋아해서 항상 머리가 허리까지 길어 있었다. 드라이기가 없었던 우리 집은 머리를 감고 방바닥에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려 방바닥의 온기로 말리기도 했다.
어머니께서 지극 정성으로 보살펴 주신 덕분에 나는 점점 건강을 되찾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또 여기저기서 도움의 손들이 뻗쳐 왔다. 돈 많이 준다고 하니 가정집으로 보내라 식구가 단출하니 그리로 가라 큰 회사에 가면 몸이 안 좋으니 작은 회사가 났다는 등 마을사람들의 권유와 위로는 심심치 않게 이어져 갔다.
이럴 때 친척할머님이 오셨다. 할머니가 아닌데 머리가 하얗게 희어서 그리 부르고 있었다. 농촌에서 일손이 부족하다고 아이들하고 너무 바쁘니 잠시 아이들만 돌봐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잠시 갔다 오는 것도 바쁘지 않을 것 같았다. 엄마 곁을 떠나 있는 것은 싫었지만 바람도 쐴 겸 따라나섰다. 또 남의 집도 아니고 일손이 모자란다고 하니 고추 딸 때까지만 봐달라고 사정을 하시니 안 갈 수도 없었다.
그곳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충북 음성군으로 고추가 많이 나는 고장이었다. 할머니 따님도 고추농사를 많이 짓고 있었다. 내가 촌수가 높아서 할머님 따님을 조카라고 불러야 하지만 나보다 한 두 살 어린 조카 한 명만 빼고는 나이가 다들 많기 때문에 '님'자를 붙여서 조카님이라고 불렀고 조카님들은 나한테 아줌마라고 불렀다. 그러고 보니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때는 할머님동생분 오빠댁에를 갔었다. 다들 분주하게 일들을 하고 있었고 나는 손님으로 나이가 어리니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대청마루 끝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청소를 한다고 젊은 아주머니가 내게 말을 했다. "얘 저리 비켜 마루청소해야 하니 나가서 놀아라'라고 했다. 이 소리를 어디서 들으셨는지 오빠의 부인이 쫓아와서 '얘가 아니야 아무리 어려도 아줌마니까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고 이르셨다. 아마 그때부터 나는 오빠 언니도 아니고 조카도 아닌 조카님이라고 부르게 된 것 같았다.
조카님네는 아이들이 셋이나 있었다. 첫째는 여자아이 8살 둘째 남자아이 5살 셋째도 남자아이 2살 하루 종일 아이들을 봐주면서 집안일을 했다. 다른 건 하지 말고 아이들이나 돌봐 달라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일하고 저녁에 와서 밥 해 먹고 아이들 씻기고 자려면 조카님이 힘들 것 같아서 조금씩 조금씩 하다 보니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웬만한 일은 다 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것도 아니어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거들어 주었다. 밥만 해 놓아도 들에서 와서 반찬 한두 가지 해서 먹기는 편하니 그리 한 것이었다.
어느 날은 버섯을 따와서 찌개를 해 주었고 어느 땐 참외와 수박을 따와서 노각처럼 채를 썰어서 고추장 양념을 해서 먹기도 했다. 처음에는 먹어보지 않던 것이라서 안 먹었는데 괜찮다고 권해서 먹어보니 맛이 좋았다.
밭에 가서 고추도 따오고 따온 고추가 마당 가득히 산더미처럼 쌓인 것은 처음 보았다. 건조장에 넣기 전에 썩은 것 벌레 먹은 것 골라서 수돗물에 씻어서 건조장 선반에 날라다 너는 것이었다. 건조장에는 미리 연탄불을 피워 놓고 작업을 하는데 덥고 연탄가스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렇게 연탄불을 피우고 고추가 마를 때까지 연탄불이 꺼지지 않게 갈아주면서 살아 있는지 잘 마르는지 수시로 들어가 확인하면서 건조를 시키는 것이었다. 이런 것을 처음 본 나는 신기해 연탄불을 내가 간다고 했다. 건조장에 들어가서 연탄불을 가는데 숨이 막혀서 죽는 줄 알았다. 그 안에는 덥고 연탄가스 냄새 때문에 코를 막고 숨을 죽이고 간신히 연탄불 두세 군데 가는데 연탄구멍이 안 맞을 때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려서 밖으로 뛰어나오면 숨을 마구 몰아 내 쉬는 것이었다. 그렇게 건조해서 다 마른 고추는 다시 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탄 것이 있는지 안 마른 것이 있는지 골라내는 작업을 하고 그렇게 손질한 고추는 포대에 담아서 진천시장에 경운기로 실어다 팔았다. 그 고추 판 돈으로 내 시계도 사주고 옷도 사고 점심을 먹고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는 다른 길로 와서 얼마나 털털거리고 왔는지 온몸이 덜덜 떨렸다.
그래도 처음으로 갖게 되는 시계가 좋아서 아프다는 말도 못 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조카님이 약 한 알을 주면서 이거 먹으면 덜 아플 거라고 먹고 자라고 했다.
한 번은 고추를 따서 마당에 말렸는데 밤에 비가 오는 것이었다. 밖에 나오니 조카님이 고단한지 일어나지 않아서 내가 가서 깨웠었다. 잘 못했으면 고추를 다 썩혀 버릴 뻔한 일이었는데 내가 깨워서 다행이라고 했다. 피곤해서 비 오는 줄도 몰랐다고 고맙다고 하셨다. 고추는 고추나무에 매달려 있을 때는 괜찮고 바로 딴 고추도 한 이틀은 괜찮지만 장마철에는 마른 것도 잘 썩고 물에 닿으면 오래가지 못하고 썩어서 햇빛이나 건조를 시키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 뒤 시계는 나의 보물 1호가 되어 애지중지하면서 지니고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