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일까?
이곳에 와서 재미있게 아이들과 놀면서 하루하루 바쁘게 지냈다. 집에서 혼자 있는 것보다 무엇인가 활력이 생기는 것 같아 좋았다. 조카님 가족들이 아이들과 열심히 땀 흘리면서 일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고 또 내가 아이들을 보살펴 주어서 좋았다. 차츰 이곳 생활이 익숙해지니 아이들도 잘 따르고 친척이라 생각해서 그런지 말도 잘 들었다. 동네 이웃들과 인사도 나누고 막내를 업고 마실도 다녔다. 바로 옆집에는 가족들이 많지 않아 아주머니와 언니 둘만 살아서 자주 놀러 다녔다. 가까이 제일 큰 집은 가족들도 많고 농사도 많아서 일꾼을 두고 지낸다고 했다. 그래서 옆 동네에서 일하러 온 아저씨들도 있었다. 낮에는 아이들과 지내고 가끔 저녁에 옆집언니네로 마실도 다녔다. 안 체에는 방이 없어 나는 사랑방을 사용하고 있었고 드나드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너무 늦게 다니면 조카님이 찾으러 와서 늦게까지 있지 못했다. 그리고 시골에는 다들 일찍 잠을 자기 때문에 돌아다닐 수도 없었다.
하루는 이런 날도 있었다. 강아지가 없어서 찾으러 다녔더니 멀리서 짖는 소리만 나고 강아지는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강아지를 부르면서 소리 나는 데로 가 보았더니 수로에 빠져서 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것이었다. 다행히 물이 흐르지 않게 막아놓았는데 깊어서 나도 간신히 들어갔다. 강아지를 수로 밖으로 보내는데 잘 되지 않았다. 몇 번시도 끝에 강아지는 내보냈는데 내가 나오기가 힘이 들었다. 강아지보다도 더 몇 번을 허우적거리다가 간신히 나왔다. 그때는 몰랐는데 막아 놓은 수로 뚝이 무너지면 큰일이 날 수 있었다. 생각하면 사람들도 다니지 않는 곳이어서 내가 위험할 수도 있었던 일이었다.
아저씨들 속에는 옆집언니와 더 친한 태영아재가 있었다. 자주 놀러 와서 나도 자연히 알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시골에는 청년들이 많이 살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몇몇 사람들이 나를 눈여겨보기도 했었다. 그리고 옆집언니한테 나를 소개해 달라고 했지만 잘 알지 못해 싫다고 했다. 동네 사람들 하고 말도 잘 안 하고 지나다니면서 얼굴만 겨우 알고 지냈는데 언니는 나보다 나이도 많고 결혼도 안 했으니 아저씨를 오빠라고 알려 주었지만 난 우리 오빠도 아닌데 왜 오빠냐고 싫다고 했다. 아버지를 닮아서 고집도 세고 약간 고지식한 대가 있어 남자들은 무조건 아저씨라고 불렀고 오빠친구들도 친한 사람들한테만 부를 정도로 새침데기었다. 누구 아저씨라고 부르니 여기서는 아저씨를 다들 '아재'라고 불렀다.
하루는 옆집언니가 그 아저씨랑 놀러 가고 싶은지 자꾸만 같이 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카님께 말하고 저녁에 언니네를 갔다. 조금 있으니 오토바이 소리와 함께 태영아재가 왔다. 언니가 그걸 타고 나가자고 하는데 내가 싫다고 하니 언니가 괜찮다고 셋이서 타고 갈 거라고 하면서 먼저 올라탔다. 나는 맨 뒤에 타려고 했더니 키가 작고 위험하다고 가운데에 태웠다. 더운 여름밤 시골길을 한참을 타고 달리니 시원하고 기분이 좋았다. 그때였다. 커브길이어서 천천히 돌아가는데 우리들 때문인지 매끄럽게 돌지 못하고 삐끗하더니 그대로 넘어져 버렸다. 순간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깜짝 놀랐다. 아재도 언니도 나를 일으켜 세우고 옷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아무도 다치지 않은 것에 마음을 놓았다.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했었다. 오토바이를 세워 다시 타고부터는 더 천천 가게 되었다. 시내로 나가려면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야말로 동네 한 바퀴를 돌아서 집에 왔고 자고 일어나니 온몸이 아픈 것을 조카님께는 말도 못 했다.
그 뒤로 옆집언니는 아재랑 만나러 나갈 때마다 같이 데리고 다녀서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으면 둘이 만나면 되지 왜 매번 데리고 다니는지 내가 심심해할 까봐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한 참 뒤에 언니는 내게 한번 만나보라고 권했고 나는 나이도 어리고 아직은 그럴 처지가 아니라고 거절을 했다. 그런데도 언니는 아재는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사귀어보라고 해 나는 언니네 집에도 잘 가지 않았다. 그러니 언니가 조카님 댁까지 찾아와 자꾸 권하니 거절할 핑곗거리가 없었고 너무 거절하는 것도 언니를 무시하는 것 같아 얼마 안 있으면 집에 돌아가니 한번 만나보기로 했었다.
그리고 단 둘이 만나기로 한 날은 보름달이 훤하게 밝은 밤이었다. 저녁을 먹고 치우고 방에 있으니 아재가 데리러 왔다. 특별히 갈 때가 없어서 과수원인지 밭인 지 걸어가다가 이번에는 내가 발을 잘 못 딛다 넘어질 뻔 해 손을 잡아주었고 그때서야 나를 만나고 싶어서 혼자 가자고 하면 안 따라올까 봐 언니랑 같이 다닌 거라고 했다. 몇 번 만나지 않았지만 걸어 다닐 때는 손도 잡지 않았고 헤어질 때는 뽀뽀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석 달을 보내고 추석 때가 되어서 집에 가게 되었다. 사람들이 많을 것을 생각해서 추석 전에 미리 가게 되었다. 집에서 떠날 때보다 조카님이 이것저것 사주어서 보따리가 조금 커졌다. 여기 올 때는 할머니랑 같이 송탄인지 안성에서 버스를 타고 또 갈아타고 와서 갈 때는 어디서 타고 가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조카사위님이 터미널까지 데려다준다고 오토바이를 타고 갔는데 그 거리가 5~10분 걸리는 거리가 아니었다. 버스를 태워 준다고 얼마나 달려갔는지 대소면 터미널에 가서 평택 가는 버스를 물어보니 버스가 없다고 해서 걱정이 되었다.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다른 곳으로 갔더니 더 형편이 안 좋았다. 그래서 오토바이로 집까지 데려다준다고 하는데 너무 멀어서 안된다고 그 먼 거리를 어떻게 가냐고 했더니 갈 수 있다고 하면서 길을 떠났다. 오토바이로 얼마나 덜덜거리면서 몇 시간을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길을 잘 찾아가고 있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둔포까지는 많이 다녀서 잘 안다고 하셨다. 버스를 타고 가면 좋은데 어떻게 가는 길을 모르니 가자는 데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고개는 들 수도 없고 앞에서 말을 해도 들을 수 없고 지나갈 때마다 보이는 구경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냥 언제 집에 가나 아직 멀었나 그 생각뿐이었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도 없었고 아스팔트 길이 나올 때는 괜찮았지만 비포장도로는 덜덜거려 온몸이 떨려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둔포까지 와서 친적집에 들르고 여기서 버스를 타고 가도 되는데 여기까지 왔으니 집에까지 데려다줘야 마음이 놓인다면서 다시 출발해 시골집까지 갔다. 집에 들렀다 가시라고 하니 다음에 다시 온다고 하면서 그냥 돌아갔다. 먼 길을 조카사위님 혼자서 쉬지도 못하고 가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온길을 따라서 잘 가셨겠지만 아니면 다시 둔포에서 쉬었다 집에 갈 수도 있다고 생각을 했었다. 집에 온 나는 엄마와 반갑게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온몸이 아프고 정신이 없어서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고 난 그 이튿날에는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더 심했고 며칠을 고생했는지 몰랐다.
내가 나가 있는 동안 우리 언니는 동네 내 친구 형하고 약혼식을 했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언니도 여기저기서 중매가 들어왔었는데 다 마다하고 큰올케언니가 중매한 데로 시집을 가게 된 것이다. 다른 사람이 소개해준 데는 안 가고 왜 하필이면 큰올케언니가 하는 데로 간다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첫사랑이라고 하기보다는 좋아했던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순수하고 좋은 사람이라서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었는지 모른다. 그 뒤 서울에 있을 때 시골집으로 편지가 왔었다. 주소도 알려주지 않았는데 편지가 와서 반가우면서도 놀랐다. 서울에서 답장은 보냈지만 내 주소는 적어 보내지 않았다. 아직도 첫 소절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는 편지내용으로 대충이랬다. '옥이에게... 보름달처럼 환한 옥이의 얼굴을 떠올려 봅니다. 출타 중에 편지가 와 있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답장이 이렇게 늦어서 죄송합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가끔 한 번씩 머릿속에서 하는 말이 있었다. 첫사랑의 추억으로 10년을 살았다면 잘한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