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가 시집가기 전
진천에서 돌아와 나의 일상이 다시 시작되었다.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내 바로 위 넷째 언니가 집에 와 있는 것이었다. 맞선보고 시집을 가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었지만 언니 얼굴은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지내는 날이 많았다. 엄마와 셋이서 어렸을 때 같이 못했던 것들을 시집가기 전에 같이 이야기도 나누고 지내면서 재미있게 보낼 줄 알았는데 그것은 나의 바람에 지나지 않았다. 엄마와 같이 살고 있는 집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불편했는지 짐만 갖다 놓고 주로 큰올케언니네서 지냈다. 거기서 조카들을 돌봐주고 밥도 해주면서 있었지만 올케언니네서 있는다고 무조건 좋은 일은 아니었다. 내가 처음 아플 때 올케언니네 있어 보아서 알지만 그렇게 밥 해주고 조카들 돌봐준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침에 오빠와 올케언니가 출근을 하고 나면 조카들 셋만 있어서 넷째 언니가 돌봐주러 다녔다. 올케언니가 퇴근이 늦을 때는 저녁에 미리 내놓은 쌀로 밥을 지어 놓기도 했다. 그러면 그 밥이 얼마나 정확하게 쌀을 떠 놓았는지 밥을 하면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올케언니네 가족이 먹을 밥만 나오는 것이었다. 올케언니네 가족 다섯 공기에 밥을 떠 놓고 한 공기를 더 푸려고 하면 나오지 않았다. 그 다섯 공기도 간신히 솥바닥을 긁어모아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니 언니가 먹을 밥이 없었다. 어쩌다 한번 쌀을 잘 못 내놓아서 모자란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매일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식구들만 먹겠다고 그렇게 한 일이었다. 어떻게 하면 식구 수대로 다섯 공기만 딱 나오게 할 수 있는지 쌀 양을 키로수로 재어서 딱 맞게 꺼내놓은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쌀독이 있는 창고는 열쇠로 잠가놓고 다녀서 쌀이 부족하다고 다시 꺼내어 밥을 할 수도 없었다. 언니가 집에 와서 밥을 먹을 때 밥 해주고 왜 밥도 안 먹고 오냐고 내가 핀잔을 준 적이 있었다. 언니는 '오빠네 식구밖에 먹을 밥이 없는데 어떻게 거기서 밥을 먹냐고'했다. 오히려 내가 그렇게 말했다고 서운해했다. 그렇게 가서 밥 해주고 밥도 못 얻어먹고 어쩌다 집에 와서 먹을 땐 동생한테 군소리를 듣고 또 어느 땐 집에서 밥도 못 먹을 때도 있었다. 엄마와 나는 큰올케언니가 중신을 해서 같이 있게 되고 또 언니가 있겠다고 해서 잘해주는 줄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언니가 올케언니네서 밥 해주고 있었으니 당연히 밥도 먹고 다니는 줄 알았지 그렇게 끼니를 거르고 다니는 줄은 알지도 못했다. 처음 언니가 엄마를 생각해서 식량을 줄이기 위해서 도와주려고 오빠네서 있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잘 못 되었던 것 같았다.
그 넷째 언니가 시집갈 나이가 되니 여기저기서 중신이 들어왔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니 누구나 다 잘 사는 집으로 시집을 가려고 하는 것은 똑같은 마음일 것이다. 둘째 언니가 중신해 주는 자리는 잘 살지만 농사일이 많았다. 그래서 엄마와 나는 끼니걱정 안 하는 그곳으로 선보고 가기를 바랐다. 그런데 올케언니는 왜 거기로 가냐고 선도 못 보게 하면서 이쪽 올케언니가 중신하는 대로 다 말해 놓았으니 여기로 가야 한다고 소리치면서 우겼다. 내가 '남 잘되는 것이 싫은가 보다고'했더니 올케언니는 그 소리를 듣고 펄쩍 뛰면서 "내가 언제 잘되는 것을 싫어했냐고"하면서 큰소리들이 오고 갔다. 넷째 언니는 아무 말이 없었는데 가족들이 서로 얼굴을 붉히었다. 이왕이면 더 좋은 자리로 가기 위해서 그랬는데 올케언니는 본인이 해주는 데로만 가야 한다고 큰소리를 쳤던 것이다. 선을 본다고 해서 당장 가는 것도 아니고 서로 마음이 맞아야 가는 것임에도 불과하고 신랑 쪽 중매쟁이와 같이 약속을 한 것 같았다. 옛날부터 중매를 잘하면 술이 석 잔이고 안 되면 빰이 석대라고 했었다. 또 가정형편에 따라서 서로 미리 약속을 하고 술보다도 더 한 것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어서 더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걸 알면서도 넷째 언니는 올케언니가 주선한 선을 보고 마음에 들었는지 바로 결혼하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 선자리는 동네 내 친구형님으로 착하고 성실해서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한 동네서 살다 보니 아주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가정형 편도 속속들이 다 아는 처지라 예단을 잘해가고 못해가는 것도 따지지 않았다. 그저 할 수 있으면 이부자리만 해 갖고 오면 되고 형편이 안되면 안 해 와도 신랑 쪽에서 다 준비한다고 했었다.
그렇게 결혼 날짜도 잡아놓고 언니는 결혼 전부터 시댁에서 지냈다. 엄마와 내가 있는 집도 불편하고 그렇다고 밥도 제대로 못 얻어먹는 오빠네서 살 수도 없었다. 형부는 언니를 만나면 인사가 밥 먹었냐고 묻는 것이었다. 형부가 그렇게 물어 왔지만 언니는 똑바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언니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형부가 알아차렸다고 했다. 그래서 거짓말도 못하고 또 한 번 만나서 물어 오면 먹었다고 얼버무리기도 했었다. 올케언니네서 밥 해주고 밥이 없어서 못 먹었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형부가 알게 되고 사돈어른이 알게 되어서 날도 잡았으니 그럼 시댁에서 지내라고 허락을 하셨고 엄마와 언니도 오히려 그게 편할 것 같다고 허락을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