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막내딸(20)

언니가 시집갈 때

by 옥이

언니는 시댁에서 지내면서 오빠네를 오고 가며 밥을 해주었고 조카들을 돌봐주었다.

올케언니가 중신하는 자리로 시집을 가면 당연히 언니한테 잘해 줄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것 하고는 전혀 달랐다. 맞선 보고 약혼식 때 오빠네서 음식을 차려서 손님대접 했을 때도 비용은 언니가 다 지불했었다. 그런데 결혼식 전날 손님대접할 음식을 만들 때도 다르지 않았다. 이때는 잔치 음식을 집에서 다 준비해서 예식장에 갖고 가 점심을 대접하는 시절이었다. 물론 엄마와 내가 살고 있는 집에는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서 잔치음식을 하기에는 장소가 다소 부족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올케언니네서 꼭 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동네사람들은 엄마 딸이니 음식 장만하는 것도 당연히 우리 집에서 하는 줄 알고 왔다가 다시 올케언니네로 가기도 했었다. 언니가 음식준비하라고 엄마한테 돈을 드려서 물건을 사 오고 음식 준비를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올케언니가 집도 좁고 아주머니들이 일하기도 불편하니 올케언니네 집에서 하는 게 좋겠다고 먼저 말을 해왔다. 엄마도 그게 나을 것 같아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음식 만들 재료와 필요한 양념까지 다 갖다 주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일하다가 양념이 떨어지면 다시 가지러 오는 것이었다. 양념으로는 참깨 마늘 고춧가루 참기름 식용유 등이었다. 나는 그러는 것이 화가 나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럴 거면 뭐 하러 올케언니네서 한다고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양념이 떨어지면 언니네 거 쓰면 되지 올케언니네는 그런 것도 없냐고 그렇게 다 갖다주고 할 거면 뭐 하러 거기서 하냐고 우리 집에서 하면 되지' 내가 속이 상해서 양념이 떨어졌다고 가지러 와서 챙겨주시는 엄마한테 투덜거렸다. '왜 하다못해 가스하고 나무도 가지러 오라고 하지 그건 안 떨어졌냐고'도 했었다. 언니도 이런 걸 아냐고 물었지만 엄마는 누가 듣는다고 아무 말도 못 하게 하셨다. 집에서 시끄러우면 시집가는 언니도 보내는 엄마도 마음 불편하니 아무것도 모르게 시집보내자고 하셨다. 좋은 게 좋다고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타이르셨다. 나보다도 엄마가 더 속이 상하고 답답해도 누구한테 말도 못 하시고 혼자서 끙끙 앓으셨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동네사람들은 올케언니가 다 사다가 하는 줄 알고 시누이 시집 잘해서 보낸다고 하는 것이었다.


언니는 벌어서 혼수장만으로 장롱을 해 갔고 이불은 엄마가 집에서 궤매어 만들고 세 숫대하와 요강을 해주셨다. 언니가 기본 혼수에서 다른 비싼 것은 많이 해가지 않아도 냉장고는 꼭 해가고 싶어 했다. 그 걸보고 오빠는 뭐 하러 그렇게 많이 해가냐고 그럴 거면 오빠한테 송아지 한 마리 사주고 가라고 말했지만 언니는 보태주지도 않으면서 아끼고 줄여서 겨우 해가는 혼수를 보고 그런다고 오빠 송아지 사줄 돈이 있으면 엄마를 보태주고 가겠다고 속상해했었다. 언니가 그러는 것이 마음 아픈 엄마는 오빠가 가진 것이 없어 네게 해주지 못해 미안해서 괜히 하는 소리니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했는데 계속해서 언니가 밥도 안 먹고 있으니 엄마는 네가 그러면 엄마도 속상하고 결혼식 날 얼굴도 붓고 안 좋으니 신부가 그러면 안 된다고 마음 풀고 결혼식 잘 치르자고 달래주셨다.


결혼식날 아침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나는 예식장에 입고 갈 예쁜 옷은 아니었다. 엄마와 이모님만 한복을 입으셨고 둘째 오빠가 교회차를 가지고 와서 우리들은 그 차를 타고 갔다가 결혼식에 참석하고 사진도 찍고 점심을 먹고 다시 교회차를 타고 왔다.

내가 어려서 예식장에서 일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딸을 보내는 쪽에선 크게 할 일이 없었다. 결혼준비과정에서 다소 시끄러웠지만 이에 반해 결혼식은 잘 치렀다. 언니는 약혼식을 하고 갔던 현충사를 신혼여행으로 또 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머니와 막내딸(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