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막내딸(23)

어머니의 환갑

by 옥이

어머니 생신을 앞두고 집에 갈 준비를 했다. 그래서 이모님은 엄마 생신에 드릴 선물을 준비하셨다. 미리 챙겨 오신 한복 치마저고리를 갖고 가서 맞춰오신 것이었다. 엄마는 싫다고 하시면서 헌 한복을 내놓으시지 않았는데 그냥 생신도 아니고 환갑인데 옷 해 드린다고 엄마랑 같이 가서 맞출 수 없으니 한복을 챙겨 오신 것이었다. 한복 색깔은 엄마가 좋아하시는 옥 색깔이었는데 너무 이뻤다. 흰 고무신에 코트까지 있으니 다른 것은 더 필요가 없었다. 집에 갈 생각을 하니 이모부님이랑 이모님이 잘해주시고 오빠 언니들이 잘해주어도 엄마랑 같이 있는 것만 못했다. 그것은 혼자 계신 엄마가 걱정이 되어서 그런 것 같았다. 생활하는 것이 조금 불편해도 내 집이 마음 편하다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 생신 전에 다시 이모님과 나는 집에 왔다. 집에 오면 당연히 엄마가 계실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아랫집 아주머니께 여쭈어보니 "요즘에 계속 아프셔서 온양병원에 다니셨었는데 오늘도 병원에 가셨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하셨다." 웬만큼 아프셔서는 병원을 잘 가시지 않았는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 시집보내고 나도 없고 혼자서 마음의 병이라도 얻으신 것은 아닌지 몰랐다. 혼자 계시니 진지도 제대로 못 드셨을 것 같았다. 그동안은 아픈 딸 챙기느냐고 해주면서 같이 드시고 엄마가 안 드시면 나도 안 먹는다고 땡강 부리고 엄마 역시 내가 안 먹으면 엄마도 안 드신다고 나를 밥 먹게 하기 위해서 협박 아닌 협박을 하셨었다. 엄마와 나는 그렇게 서로 위로하고 의지 하면서 지냈었는데 그런데 엄마 혼자서 계셨으니 제대로 못 드셨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안 좋았다. 문득 전부터 담이 결려서 무거운 것도 못 들고 부었다고 하셨었는데 그게 아직도 다 낳지 않고 심해지신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런 엄마를 두고 이모네로 놀러 간 것이 후회가 되었다. 집에서 한 참을 기다리니 엄마가 병원에서 오셨다. 엄마를 보니 반가운 마음보다는 아프신 게 걱정이 되어 쳐다보니 엄마는 괜찮으니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몇 며칠사이에 엄마는 얼굴이 핼쑥해지셨다.


엄마와 이모님이 말씀을 나누시게 하고 나는 저녁 준비를 하려고 부엌으로 갔다. 그런데 엄마 환갑날이라고 아들 딸들이 오는 줄 알고 시장도 미리 다녀오시고 아프신 가운데도 반찬을 만들어 놓으셨다. 말로는 아무것도 안 하고 음식 만드는 것은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해도 그것이 결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고 힘이 든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이모님이 해오신 옷도 입어보고 엄마는 좋으신지 "힘들게 뭐 하러 이런 걸 해왔냐"며 말을 건넸고 두 분이서 이야기하는 것을 부엌에서 방문으로 통하는 작은 문으로 틈틈이 들여다 보고 "엄마 마음에 드세요? 딱 맞지요? 잘 골랐지요? 생신 날 입으시기에 정말 좋은 한복이에요." 행여나 엄마가 마음 불편해하실까 봐 나는 엄마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엄마는 이모님께 고맙다고 잘 입겠다고 인사하셨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모님께 미안해하셨다.


저녁이 되니 멀리서 언니들과 형부들이 다 오셨다. 큰언니 대신 형부가 오시고 두 작은오빠들만 안 오고 딸들이 집에 다 같이 모인 것은 너무 오랜만이었다. 가족끼리 다 모여서 밥 해 먹고 이야기하고 한쪽에서는 형부들이 술을 너무 좋아해서 술에 취해서 정신이 없었고 그것이 술주정으로 이어져 말할 수 없이 시끄러웠다. 동네 살고 있는 언니는 집이 좁아서 자고 내일 온다고 놀다가 형부랑 갔다. 방 한 칸에 다 같이 모여서 남은 식구들 자기도 비좁긴 했다. 그래도 다 같이 오랜만에 모였는데 자자고 셋째 언니가 말했지만 언니는 갔고 엄마와 이모 남은 언니들은 한쪽에서 이야기하느라 새벽 날새는 줄도 모르고 놀았다.


어머니 환갑 날 밥하고 상차림을 하는데도 엄마손이 닿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었다. 엄마가 살림하는 곳이라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시집간 딸들은 알지 못했고 또 여럿이 들어가 찾아서 하기에는 부엌이 너무 좁았다. 그러면서도 우리들은 '엄마는 가만히 계시라고 우리들이 다 한다고'해도 엄마는 방에 가만히 계시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해야지 니들이 어디에 뭐가 있는지 어떻게 아냐고' 하셨다. 그리고 엄마는 덧붙여서 '여자들은 할 일이 없다고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할 일이 없어도 찾아서 하는 것이 여자들 일이고 그래야 집안이 가꾸어지고 할 일이 생기는 것이'라고 일러주셨다.


그렇게 많은 음식을 차릴 형편도 아니었지만 정신없이 바빴다. 아침을 차리고 엄마는 한복으로 갈아입고 다 같이 아침을 먹었다. 이렇게 모여서 밥을 먹는 것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처음인 것 같았다. 언니들은 어머니께 제일 필요한 것이 용돈이라고 생각해서 준비를 한 것 같았다. 그래서 이모님이 아니었으면 엄마는 옷 한 벌도 못 얻어 입으실 뻔했다. 그런데 동네 엄마친구분이 큰올케언니네를 갔다가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분명히 알고 있기로는 이모님이 옷 해오셨다고 했는데 큰올케언니는 친척오빠네가 해 왔다고 이모님이 해오신 거 아니라고 바득바득 우겨서 아니라고 우기다 못해서 그냥 왔다면서 엄마께 알려드렸다. 그 소리를 옆에서 듣다가 속이 상해서 '아무리 그래도 잘 못 알고 있을게 따로 있지 어떻게 이모님이 사 오신 것을 다른 사람이 해 왔다고 할 수 있냐고' 했더니 '그러면 그렇지" 하면서 아주머니가 옳다고 맞장구 쳐주었다. 정말 이상하고 알 수 없는 언니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듣고 가만히 계셨다. 자식이라고 해도 머리 큰 자식은 잘 못을 해도 야단치시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 그것도 며느리는.......


한차례 시끌벅적 사람 사는 것처럼 정신없이 지냈는데 이모님도 가시고 멀리 있는 언니들도 가고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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