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손녀딸처럼
할머님 자녀분들 집에도 같이 다녔다. 처음에는 택시를 타고 다녔고 다음에 심부름을 갈 때는 혼자서 버스를 타고 다녔다. 영등포시장을 가실 때도 처음에는 길을 알려주신다고 걸어서 가셨지만 장 보고 오실 때는 택시를 타고 오셨다. 또 영등포시장에서 할머님과 같이 손 붙잡고 계단이나 짐을 들고 부축하고 다닐 때는 손녀딸이 모시고 다니는 줄로 알고 일부러 물어보시는 상인들도 있었다. 나는 아니라고 하려 했지만 그럴 때는 내가 불편해할까 봐 할머님이 먼저 나서서 우리 손녀딸이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조금 어색하고 싫어서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할머님이 어떻게 아셨는지 또 그분들한테 굳이 바르게 말할 필요 없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 이 말 뜻을 잘 알지 못했지만 한참 뒤에 알게 되었다.
한동네에 오래 사셔서 구석구석 모르는 사람이 없으셨고 주변 상가분들도 다 친하게 지내셨다. 또 세 들어 사시는 분들도 나가지 않고 오래 사셨다고 했다.
자녀분들과 같이 여름휴가를 갈 때도 데리고 갔다. 내 본업이 밥하고 빨래하는 것이지만 밖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혼자 다니며 구경하라고 했지만 아이들하고 놀았고 또 가족들을 잃어버릴까 봐 멀리 가지도 못했다. 같이 밥을 하거나 안 할 때는 아이들을 돌봐 주었다. 손자 손녀들이 어려서 특히 넷째 따님 아이들이 어려서 많이 돌봐 주었고 그래서 어린이 대공원도 가고 민속촌 등 여러 군데를 다녔었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여름휴가로 강릉 동해바다를 간 적이 있었다. 대관령 고갯길을 가는데 꼬불꼬불 흔들리는 버스가 낭떠러지를 볼 때면 현기증이 나고 멀미도 나는 것이 너무 무서웠었다. 동해는 물은 깨끗한데 너무 차가웠다. 시원한 바다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조금 서늘해졌다. 집이 아니라서 불편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또 재미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밥 해 먹고 놀고 물놀이도 하고 재미있게 놀았었는데 하루는 첫째 따님 딸이 나한테 물놀이하다가 저기 저 언덕으로 데려다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동해바다는 물속수심이 얕았다가 또 깊었다가 저 멀리 다시 얕아져 발목까지 밖에 물이 안 닿았는데 그 멀리 이모가 있다고 나한테 그곳에 데려다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무서워서 못 간다고 싫다고 했다. 언니 튜브를 붙잡고 가면 된다고 깊지 않다고 하면서 데려다 달라고 하는데 자꾸 말을 하니 안 데려다줄 수도 없었다. 속으로 조금 무서웠지만 아이 말대로 아이의 튜브를 붙잡고 같이 한참을 잘 걸어갔었다. 그런데 별안간 발이 푹 빠지면서 균형을 잃고 그때부터 나는 물속에서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무서워서 눈도 못 뜨고 얼마나 놀랬는지 귀에서 아이 말소리가 들리는데도 나는 눈을 못 뜨고 아니 떠지지가 않았다. 아이는 소리 지르며 언니 일어나 정신 차리라고 하는데도 나는 계속 허우적거렸고 아이가 괜찮다고 하는데도 나는 여전히 괜찮지가 않았다. 발에 모래가 닿고 물이 얕아 있는데도 나는 계속 허우적거리기만 했었다. 아이는 다시 나를 쫓아와 나도 발이 땅에 닿아서 괜찮은데 언니가 왜 발이 땅에 안 닿냐고 그 말하는 소리에 정신이 들어 눈을 뜨고 보니 물은 무릎정도에 차 있었고 모래가 발에 닿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이 바닥인 줄도 모르고 떠내려온 상태로 엎드려 허우적거렸던 것이다. 또 얼마큼 일행에서 떠내려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와 아이의 나이 차이는 열 살 안팎으로 차이가 많지 않았었다. 그렇게 물이 무서워하면서도 여름이면 가족들이 가는데 또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서산 앞바다 물은 따뜻하고 수심도 깊지 않은데 조금 지저분했다. 이끼도 많았고 이때는 비가 와서 많이 놀지도 못했었다. 그것도 잠깐인 것 같았다. 아이들이 크고 나니 잘 따라다니지도 않았고 학교에 학원에 매달려 공부하고 한 번은 시험공부하는데 너무 졸리다고 해서 같이 밤을 새워 준 적도 있었다. 같이 물에 빠질 뻔했던 아이랑.
날이 지나 갈수록 이제 살림살이는 내가 다 맡아서 하게 되었다. 할머님이 시키지 않아도 내 살림처럼 하루하루 익숙하게 일도 잘하게 되고 집안 구석구석 할머님의 손 때보다도 내손 때가 더 많이 묻어나 있었다. 집안 방이면 방 부엌이면 부엌 그 어느 곳 하나 내가 모르는 것이 없게 되었다. 또 할머님 자녀분들 집에도 손님을 치르거나 일손이 부족하면 가서 도와주고 그러면 수고했다고 용돈도 주고 할머님의 가족처럼 때로는 손녀딸처럼 할머님을 보살펴 드렸다. 할머님은 천식이 있으셔서 늘 휴지와 깡통 쓰레기통을 항상 가까이 두고 계시면서 침을 뱉어 내셨다. 처음에는 너무 비유가 상해서 싫었었다. 깡통을 비울 때면 구역질이 나기도 했었는데 오래되니 이 것도 참고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날마다 다리가 아프셔서 종아리를 두들겨 드렸었다. 저녁 먹고 치우고 문단속하고 티브이 드라마를 볼 때면 꼭 그렇게 마사지를 해드렸다. 어느 때는 내가 팔이 아파서 싫을 때도 있었고 할머님보다도 내가 더 졸릴 때도 있었다.
그렇게 점점 더 서울 생활에 깊숙이 빠져 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