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활
이렇게 세월이 가고 서울 생활이 익숙해지니 조금은 또 다른 욕심이 생겨 났다. 월급도 작은 것 같고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 거리가 조금 있겠지만 그곳은 낮에는 공장에서 일을 하고 저녁에는 공부를 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낮에는 여기서 일을 하고 저녁에는 가서 공부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지내면서 불편한 것도 말할 수 있게 되고 집에 무엇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또 할머님의 특유의 고집이나 말 들이 나를 아프게 자존심을 상하게 할 때도 있었다. 내가 이렇게 말 하니 넷째 따님이 일하기 편하게 해 준다고 했었다. 그리고 공부도 어떻게 하면 들어갈 수 있는지 알아보고 알려준다고 했다.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막상 하려고 하니 걸리는 것이 많았다. 할머님 저녁을 미리 드리고 가야 하는데 치우는 것도 그렇고 하루 이틀이 아니라 걱정이 되었다. 또 공부하러 갈 때는 괜찮은데 끝나고 오는 시간이 문제가 되었다. 밤늦게 올 생각을 하니 그것도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또 하나 무엇보다도 내가 말하기 부끄럽고 창피한 이야기로 말하면 달거리의 통증이 심한 게 문제였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심해서 이것이 사춘기 때 결핵으로 독한 약을 먹어서 생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통증이 심하게 아팠기 때문이었다. 통증이 시작되면 나는 사흘은 밥도 못 먹고 앓아누웠다. 진통제을 먹기 위해서 밥을 먹으면 소화가 안 되고 울렁거리고 토해서 먹을 수가 없었다. 마치 임신한 사람처럼 구역질을 해서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참다가 진통제를 먹으면 이번에는 위에서 속이 쓰리고 아프고 먹은 약 냄새 때문에 또 괴로워서 약 먹은 것을 후회하게 했다. 이러한 고통은 젊은 나를 괴롭히는 족쇄 같았다.
이 때문에 엄마는 좋다는 약은 다 해 주셨고 특히 인진쑥을 뜯어말려서 삶고 다려서 조청으로 만들어 보내주시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그 쓰디쓴 약을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해서 수저로 떠서 흐르지 않게 돌돌 말아서 그냥 한꺼번에 꿀꺽 삼켜버렸다. 그 쓴 것을 어떻게 먹을 수가 없어서 오만상을 찡그리며 얼른 삼키고 물을 먹는 것이었다. 며칠 몇 달에 걸쳐서 먹어야 되는 것들을 하루에 몇 번씩 그냥 먹어 버렸다. 통증만 없어진다면 그보다도 더 쓴 것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많이 먹고 빨리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러면 정말 어느 때는 그 인진쑥 덕분인지 수월하게 지나갔다. 그럴 때면 내가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져 신기했다. 환으로 만들어서 주실 때는 먹기가 한결 좋았다. 그런 것을 먹었다고 완전히 통증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이 고통이 너무 힘들어서 아픈 부위를 없애고 싶었고 그래서 난 늘 불행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직장을 다니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이 때는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치료할 생각을 못했었다. 그저 당연히 통증이 있는 걸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할머님댁에 있으면서도 다르지 않았다. 그때가 되면 할머님 반찬이나 집안일을 미리미리 준비를 다 해놓고 밥만 해서 드릴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어느새 집안사람은 물론 세 들어 사는 사람들도 밖에서 보이지 않으면 다 아는 사실이 되어버렸다. 이런 내가 학교를 다닐 수 있을지 의문이고 또 다른 사람들한테 알리고 싶지 않은데 알리게 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학교를 다니다가 매번 빠지게 되면 또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 창피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니 일을 하면서 저녁에 공부를 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마다 힘든 일이 없는 것도 아닌데 집안일이 시간 맞춰서 끝내는 것도 아니고 오래 다니다 보면 할머님도 불편하실 수 있고 집안 살림이 소홀히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래서 고민 끝에 가고 싶지만 마음을 접기로 했다.
할머님댁에 지내면서 일을 해놓고 안 계실 때는 혼자서 책을 사서 보거나 음악을 들었고 저녁이면 할머니와 티브이 드라마를 즐겨 보았다. 할머님은 음악프로그램 같은 것은 좋아하시지 않았고 영화도 좋아하시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나 영화프로는 밤늦게 해서 볼 수가 없었다. 어쩌다 보게 되어도 할머님이 깨셔서 못 보게 하셨다. 이럴 때는 서운 한 마음도 들었지만 보고 잔다고 우길 수도 없었다. 또 주말 아침에 할머님이 교회를 가시게 되면 나는 밥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만화를 보았다. 그것도 항상 끝까지 볼 수가 없는 것이 할머님이 교회 끝나고 오실 시간에 맞추어 마중을 나가게 되어 볼 수 없었다.
한 해 두 해 세월이 지나면서 살림하는 요령이 생겨서 혼자 지내는 시간도 많이 늘어났다. 집안 구석구석 내 손때가 안 묻어난 곳이 없었다. 옷도 늘어나고 책과 일기장도 쌓이고 마음이 편하게 되니 내가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하는지 고민을 하게 되었다. 내가 결혼하게 되면 그래서 여기를 그만두게 되면 할머님은 어떻게 하지 혼자서는 사실 수 없는데 그러면 누가 또 와서 살아야 하는지 누구네로 가서 사실지도 걱정이 되었다. 생각을 여기까지 하니 할머님이 가실 때가 마땅치가 않았다. 그러면 내가 할머님 돌아가실 때까지 있어야 하나 이렇게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때 알 수 없는 일이 터지고 말았다.
말하기 힘든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쿵쿵 두 방망이 질을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