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막내딸(30)

오래된 나의 비밀

by 옥이

할머님이랑 지냈을 때 난 편했다고 생각했다. '배운다는 것은 남의 머릿속에 든 것을 내 머리에 저장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엄마가 그러셨던 것처럼 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남의 돈을 내 것으로 만드는데 쉬운 게 어디 있고 힘 안 들이고 얻어지는 것은 세상 어디 아무것도 없었다.

이십 대 한창 감정도 풍부하고 성격은 예민해서 뒤끝도 있고 남한테 싫은 소리는 듣지도 하지도 않고 혈액형은 활발한데 비해서 소심하고 마음도 약하고 냄새는 잘 못 맡는데 심하게 나는 담배냄새와 연탄가스냄새는 신기하게 맡고 있었다. 그 때문에 어려서 연탄불에 밥 할 때 태워 먹어서 올케언니한테 혼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왜 그런지 모르게 냄새를 못 맡아서 그 뒤로 밥을 할 때는 항상 불 옆에 앉아서 지키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할머님댁에 있을 때는 더 조심을 했었다.


올해부터 구정을 민속의 날로 정해 놓은 해였다. 구정을 조금 남겨 놓고 명절에 지내실 시장도 조금씩 보아서 미리 손질해 놓은 것도 있었고 반찬도 만들어 놓고 집안청소도 더 잘 정리해 두었다. 나는 집에 갈 물건을 미리 조금씩 챙겨 놓았었다. 할머님이 겨울이면 어깨에 두르고 다니시는 망토를 보고 실을 사서 똑 같이 나도 엄마를 드리려고 떴다. 우리 엄마는 키가 조금 작으시니까 나한테 맞추어서 조금 작게 내려오게 떠놓았다. 한복 입고 다니실 때 한복에 걸치시면 딱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또 얼마나 좋아하실까 생각했다. 일하는 틈틈이 할머님이 보시면 싫어하실 것 같아서 몰래몰래 떠 놓았다.


초 저녁에 설거지를 하고 문단속을 하면서 마루 밑으로 들어가 연탄불을 확인했다. 지금 갈기에는 불이 너무 좋았다. 나는 다시 아궁이 속에 밀어 넣고 늦게 자기 전에 갈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고 연탄이 빨리 타게 밑부분에 바람이 더 들어가라고 활짝 열어 놓았었다. 그리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할머님은 주무시고 나는 소리를 작게 해 놓고 듣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할머님이 얼른 자라고 야단을 하셨다. 나는 아직 연탄불이 갈 때가 안 돼서 더 있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니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거라고 처음에는 수궁을 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번에는 버럭 화를 내시면서 빨리 갈고 자라고 재촉을 하시는 것이었다. 아직 늦은 시간도 아니었는데 할머님이 너무 화를 내시니까 나는 서둘러 연탄불을 가는데 그 어느 날 보다도 밑불이 많은 연탄불을 갈았다. 불이 좋아서인지 떨어지지 않아서 부엌칼로 두 동강 이를 내고 나서 갈고 밑불이 있는 것은 연탄바가지에 놓았다. 그러면서도 자꾸만 신경이 쓰여 방에 들어갈 때도 속으로 '괜찮겠지' 하면서 걱정이 되어서 몇 번씩 확인하고 돌아서 방으로 가 누웠다.


그리고 잠이 들기도 전에 바로 할머님이 소리치셨다. '얘 이게 무슨 냄새냐? 왜 이렇게 밖이 환하냐 불이 났나 보다'. 할머님의 다급하신 소리에 나는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부엌으로 나가보니 불은 벽에서 시작해서 천장으로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할머님을 부축해서 거실 밖으로 나가시게 하고 끝방 쪽으로 가서 유리문을 열고 세 들어 있는 사람들한테 알려 주었는데 다행히 잠들지 않고 불이 켜져 있어서 신고도 바로 해 주고 할머님도 모시고 가셨다. 그런 사이에도 세 들어 사는 언니네는 끝방에 놓아둔 짐들을 나르고 있었지만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불을 꺼야 하는지 물이 있는 곳은 주방인데 그쪽으로는 갈 수도 없었고 소화기도 없었다. 그렇게 안에서 대문을 열고 발을 구르며 소방차가 오기만을 기다릴 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물건들을 꺼낼 수도 없었지만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고 소방차가 오고 소방관아저씨들이 안에서 불을 끄는데도 나는 여전히 불안해 봉당에서 떠나지 못하고 지켜보고 있었다. 소방관아저씨들이 이 불을 빨리 꺼주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불은 점점 더 커지고 있으니 한 소방관아저씨가 위험하다고 밖으로 나가 있으라고 하면서 안에는 오지도 못하게 하셨다. 그러면서 걱정하지 말고 나가 있으라고 재촉했다.


기억상실은 아니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생각이 안 나고 기억을 하려고 해도 나지 않는 부분이 많았었다. 너무 놀래서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끝부분 소방관아저씨가 위험하다고 밖으로 나가라고 했을 때 나와서 발을 동동 구르며 그때서 울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 때도 몰랐다. 사람이 생각도 못 했던 큰 일을 겪게 되면 어느 부분들이 기억이 잘 안 난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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