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막내딸(31)

뒷 일들

by 옥이

어디선가에서 할머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난리냐 아이고 이 일을 어떡하면 좋으냐 어디서 잘못된 거야 아이고 어떻게 하면 좋으냐 집이 다 타네 아이고아이고' 하시면서 큰소리 내며 울먹이고 계셨다. 나는 할머님 옆에도 가지도 못하고 연탄불 때문이라고 말씀도 드리지 못했다. 집 안채에는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래서 소방차도 몇 대 오고 소방관 아저씨들도 많이 오셔서 불을 끄는데 불을 끌 때는 먼저 주변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에서 주변부터 소화전을 대고 불을 끄고 있었다. 이쪽저쪽으로 아저씨들이 불을 끄고 있는데도 집은 점점 더 타들어갔다. 집이 타는 만큼보다 더 내 마음은 타들어 갔다. 이렇게 애타는 마음과는 상관없이 다른 곳으로만 소화전을 갖다 대었고 할머님 집은 더 깊숙이 타 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하고 나서 할머님 집에 불을 껐다. 처음 할머님 집에 소방관아저씨들이 와서 불을 끌 때보다도 집은 더 많이 소실이 되었다.


할머님 따님들이 어떻게 연락을 받고 왔는지 아저씨들까지 다 오셨다. 어디 계실 때도 마땅치 않고 연로하신 데다가 놀라셔서 할머님은 병원에 입원을 시키시고 나는 경찰서로 조사를 받으러 갔다. 막내따님과 아저씨랑 같이 가서 조서실에 가서 새벽이 가까이 올 때까지 경찰아저씨가 질문하는 데로 거기에 대답을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아저씨랑 경찰아저씨가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경찰아저씨는 내가 누구인지 뭐 하는 사람인지 알고 있는 듯했다. 내가 안 됐다는 듯이 천천히 아까와는 다르게 오늘은 밤도 늦고 일단 돌아가라고 했다. 나이도 어리고 초범에 도주 위험도 없고 아저씨가 보증을 서줘서 나온 것이었다. 경찰서에서 나오니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돌아갈 집이 없었다. 막내따님 내외가 할머님이 계신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할머님은 링거를 맞고 계셨고 주변에는 따님들과 아저씨들이 함께 계시면서 할머님을 위로하고 계셨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어디에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놀란 마음들을 병원에서 진정시키고 뜬 눈으로 지새웠다.


날이 밝아 오자 우리들은 다 같이 집으로 가서 둘러보았다. 집은 생각보다 많이 아주 많이 다 타버렸고 건질 것은 하나도 없었다. 멀쩡한 것도 하나 없었고 있어도 까맣게 그을려서 제대로 쓸 수가 없게 되었다. 경찰아저씨와 소방관에서 다시 조사하러 오셨고 나는 다시 경찰서로 갔다. 침대방 아래서랍을 뒤져보니 일기장도 타고 그 옆에 주민등록증이 그을려서 간신히 알아볼 수 있게 된 것을 가지고 따라나섰다. 처음으로 주민등록증을 만들어서 사용하게 된 것이 이 일이었다. 경찰서에서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질문을 했는지 생각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 화재가 났는지 무엇 때문인지 또 할머님이 나를 처벌할 것인지 아닌지 등등 짐작할 수는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조사실에서 있다가 나왔지만 지금 돌아가는 것은 임시며 다시 추가로 조사를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나서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어떡하다가 이런 일이 생겼는지 꿈인지 아닌지 어디에 뭐 하러 다니는 것인지 정신이 없었다. 잠은 어디서 잤는지 무얼 먹고 다녔는지 기억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지도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꿈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할머님과 따님들이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는데 그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내게 뭐라고 하는 것 같은 말소리들이 들리는데 그 말들이 저 멀리서 하는 말처럼 아주 작게 들려왔다. 분명히 낮이었는데 눈앞은 깜깜했다.


화재 난 할머님 집으로 다시 가서 쓸 수 있는 것들을 챙겼다. 불에 탔어도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는 따님들보다도 내가 더 잘 알아서 할머님도 내게 심부름을 시켰고 나는 잿더미에서 찾아서 할머님께 갖다 드리고 따님들도 같이 짐을 챙겼다. 웬만한 살림살이는 다 챙기려고 했다. 닦아서 빨아서 쓸 수 있는 것은 하나라도 더 챙겼다. 따님들은 다 말렸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또 할머님이 찾을 수도 있는 일이어서 그대로 따를 수는 없었다. 그리고 꼭 필요한 것만 챙기겠다고 했다. 하지만 불에 타서 재만 남아 있어도 필요 없는 물건이 아니었다. 할머님이 이 광경을 보시면 이번에는 돌아가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 것들을 바라보면서 손으로 뒤적이며 챙기는데 눈물이 났다. 그러나 소리 내서 울지도 못했다. 바깥 창고에 있는 것들도 다 끄집어내서 정리를 했다. 할머님이 병원에 계시는 동안 날마다 와서 챙기고 짐은 저녁에 큰 따님댁으로 가져갔다.


몇십 년 할머니가 사시고 추억이 담겨 있는 사진들과 할머님의 손 때 묻은 살림살이와 가족들이 일궈낸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실수로 고스란히 재로 남아 버렸다. 할머님 집이 다 타버리고 남은 것은 할머님과 나뿐이었다. 나는 어떻게 되든지 할머님이 살아계신 것이 얼마나 큰 일이고 다행인지 몰랐다.


그러나 살아 있다는 것은 그만큼 또 다른 고통이 뒤 따르는 시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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