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대신 죄인이 되신 엄마
하루아침에 할머님은 집뿐 아니라 평생의 삶 전체를 잃어버리고 큰 따님댁에서 생활을 하셨다. 큰 따님댁에는 아들과 딸 남매에 아저씨 네 식구가 살고 있었다. 갑자기 늘어난 식구와 짐들이 어수선하게 있었고 아이들 방 하나를 할머님과 내가 차지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퇴원하시고 오셔서 여전히 기운도 못 차리시고 속상해서 진지도 못 드시고 지내셨다. 나는 여전히 할머님과 같이 지내면서 시중들고 집안일을 거들었다. 할머님의 숨소리 말소리 할머님의 기분에 따라서 그날의 하루가 정해지는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할머님의 눈치를 살피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덧 붙여서 따님댁 가족들까지 눈치를 보게 되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시키는 대로 기가 죽어서 날마다 보냈다.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스스로 기가 죽어서 지냈다.
며칠은 화재 속에서 건져내 온 살림살이들을 씻고 닦고 또 세탁기에 빨아서 날마다 정리해서 쌓아두었다. 나는 옷이 없어서 여자 아이 옷을 얻어 입고 따님 옷을 빌려 입기도 했다. 내 것은 없었다. 할머님은 모든 것을 잃으셨는데 내 물건과 옷이 있다고 해서 그걸 하나하나 챙겨 올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유일하게 챙겨 온 것은 그을린 몇 권의 일기책과 타다만 일기책이 전부였다. 다른 것은 다 버려도 일기책만은 버릴 수가 없어서 챙겨 왔다.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내다 보니 구정 설날이 다가왔다. 화재로 정신이 없어서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따님집에 있으면서 기억나는 것은 많지 않았지만 그러나 딱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은 구정이 지나서 엄마와 큰오빠가 찾아오셨다. 내가 어떻게 엄마한테 연락을 했는지 생각은 나지 않았다. 화재가 나서 집에 갈 수가 없고 또 다치지 않았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계시라고 했던 것 같았다. 구정에 집에 가야 하는데 갈 수가 없어서 미리 연락을 한 것 같았다. 그랬더니 엄마가 한번 찾아오셔서 인사도 드린다고 하셨지만 시골에서 방이동까지 어떻게 찾아오실지도 걱정이 되어서 그러지 말라고 했었다. 현관문을 여는데 엄마와 오빠가 서 계셨다. 다른 때 같았으면 얼마나 반갑고 좋아서 '엄마' 하고 달려들었을 텐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엄마와 오빠가 오신 것이 불편하고 불안했다. 나는 손님이 오신 것처럼 할머님이 계신 방에 엄마와 오빠를 들어가시게 안내를 하고 인사를 시켜드렸다. 큰 따님도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나는 차를 내오라고 해서 준비를 했었다. 이런 일이 아니었으면 할머님과 엄마가 만날 일이 없었을 텐데 이렇게 좋은 일도 아니고 안 좋은 일로 만나게 되니 어색하기가 그지없었다. 엄마와 오빠는 죄인처럼 할머님 앞에 다소곳이 앉아서 엄마가 먼저 말을 건넸다. 처음으로 불편하신 데는 없으신지 얼마나 놀라셨는지 안부를 물으시고 엄마는 딸애를 맡겨 놓고 일은 잘하는지 걱정이 되었었는데 이렇게 어르신께 큰 피해를 끼쳐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또 이 노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죄송하다고 딸 때문에 큰 손해를 끼쳐서 어떻게 하냐고 도울형편도 안 되고 정말 죄송하다고 엄마는 몇 번이고 죄송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고 나서 옆에 오빠를 쳐다보니 듣고만 있던 오빠가 급하게 오느라 많이 준비를 못 했다며 얼마 되지는 않지만 병원 다니시는데 보태서 쓰시라고 하면서 할머님 앞에 봉투 하나를 내놓았다. 처음에 할머님은 펄쩍 뛰시면서 아니라고 하셨지만 큰오빠가 간곡히 부탁을 드렸다. '저희들 형편에 이걸로 해결이 안 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아서 부끄럽고 너무 죄송하지만 그래도 이 것만은 받아 달라고 했다'. 큰 따님도 거들었다. 엄마가 받고 싶지 않은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너무 거절하는 것도 좋지 않으니 가져오신 성의를 봐서 받아 두시는 게 좋겠다고 안 받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고 하자 그때서야 할머님은 알았다고 하셨다. 할머님은 또 먼 길 오셨으니 점심은 드시고 가시라고 내게 식사 준비를 하라고 하셨지만 엄마는 갈길이 멀어 바로 내려가야 한다고 사양하셨다. 옥이랑 이야기하고 천천히 가시라고 하셨지만 따로 다른 방에 가서 이야기를 나눌 상황이 아니었다.
몇 개월 만에 그것도 서울에서 엄마를 본 것이다. 그때서야 엄마는 나를 보고 한마디 하셨다. '우리 막내딸 괜찮아 많이 놀랬지?' 그 목소리는 작고 떨리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부터 났지만 참고 눈물을 훔치며 나는 괜찮다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다. 아니 울 수가 없었다. 내가 울면 엄마가 더 슬프고 괴로워하실 것 같아서 울지도 못했고 이야기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었다. 그리고 마음속은 그렇지 않았는데 엄마가 할머님께 그러는 것을 보니 어린 마음에 보기가 싫었는지 입밖으로는 괜히 볼벤소리로 뭐 하러 오셨냐고 타박을 했었다. 엄마는 옷을 사 오시고 막내딸이 놀랐을까 봐 걱정이 되어서 한약을 지어 오셨지만 이것도 마음 놓고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엄마가 제일 걱정이 되고 궁금한 것은 따로 있었다. 차마 염치가 없어서 묻지도 못하셨을 것이었지만 그래도 지금 아니면 물을 수가 없으니 엄마는 용기를 내서 물어보시는 것 같았다. 오신 지 몇 시간도 안 돼서 집으로 돌아가실 무렵 '저 우리 애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지' 하시면서 말끝이 흐려지셨다. 그러자 따님이 먼저 걱정하지 마시고 돌아가시라고 아무 일 없을 거고 지금처럼 지낼 거라고 안심시키셨고 엄마는 고맙다고 고개를 몇 번씩 숙이면서 인사를 했다. 오빠도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고 하면서 집을 나섰다. 엄마를 어디까지 배웅해 드렸는지 현관 입구인지 아파트단지 입구인지 택시를 타고 가셨는지 어디까지 가시는 걸 보았는지 기억은 없었다. 엄마가 떠나시고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할머님은 따님한테 야단을 하셨다.
그렇게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봄이 오고 몇 달을 그곳에서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