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님의 새 집
할머님도 어느 정도 안정이 되셔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몇 달 동안 큰 따님댁에서 지내게 되었지만 언제까지 계속 지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큰따님댁 가까운 곳에 집을 얻기로 했다. 따님들이 자주 드나들면서 할머님을 보시려고 한 것이다. 할머님이 전세로 얻은 것인지 산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생활하시기 편한 아파트를 얻은 것이었다. 큰 따님은 내가 불편해할까 봐 그러는지 오히려 잘 됐다고 했다. 이렇게 아파트에서 생활하게 되니 할머님도 편하고 좋다고 안 그러면 주택에서 춥고 얼마나 불편하냐고 말하니 할머님도 따라서 '내가 괜히 집 판다고 가격을 물어보고 팔지도 않으면서 팔 것처럼 자주 가격을 알아봐서 그런 일이 생겼다고' 하셨다. 할머님의 새 집 아파트는 잠실에 방 두 개 거실 부엌 화장실 하나가 있었다. 모든 살림살이는 전부 새로 구입을 했다. 따님들이 사주신 것도 있고 할머님이 필요하다고 하면 따님들이 사 오고 할머님이 돈을 주시기도 했다. 새로 이사를 가는데 내도 아무것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모아 두었던 돈으로 작은 보탬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주방기구들과 또 아주 좋은 것은 아니지만 침대와 이불을 사 드렸다. 할머님은 싫다고 하셨지만 내가 그러고 싶었다. 할머님 다리도 불편하셔서 앉았다 일어났다 하실 때 무릎이 아프시니까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할머님께 뭐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할머님은 내게 다시 월급을 주셨다. 나는 싫다고 안 받는다고 했지만 할머님은 그래도 받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벼룩의 간은 빼먹지' 어떻게 내가 네 월급을 떼어먹냐고 하시면서 극구 안 된다고 하셨다. 저도 싫다고 했지만 할머님은 그래도 너보다는 내가 더 낫다고 하시면서 받으라고 몇 달 안 받은 걸로 됐다고 하셨다. 나는 받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할머님도 따님들도 그건 안된다고 했다. 네 마음은 알겠지만 그럼 우리는 또 뭐가 되냐고 월급 받고 할머님께 더 잘해 드리라고 했다. 그렇게 매번 죄송한 마음으로 월급을 꼬박꼬박 받았다. 나는 그저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곳으로 갈 때도 없고 있다고 해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사귀는 것에 익숙지 않고 낯을 많이 가려서 그런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다. 할머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끝까지 돌봐 드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나의 죄 책감에서 우러나왔다. 또 다른 말로오지랖 넓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그 해 여름부터 아파트 생활을 할머님과 단 둘이 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새로웠다. 아파트 생활도 그렇고 동네도 낯설고 모든 공간들이 익숙하지 않은 것 들이었다. 그래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이곳이 화재로부터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서 흔적이 없고 눈에 보이지 않아서 살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여전히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주택에서 있을 때보다는 많은 것이 편하고 좋았다.
그리고 다시 화재가 난 곳으로 가보았다. 이미 따님들이 업체를 불러서 청소를 다 하고 난 후였다. 빈자리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그 자리에 가서 안방과 부엌 거실들이 있던 자리들을 한 번씩 가서 둘러보며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이곳에 안 올 수는 없었다. 할머님이 이곳에서 모든 일들을 하셨기 때문에 한 달에 몇 번씩 오게 되었다. 할머님이 모임이 있을 때는 같이 택시를 타고 왔었고 월세를 받으러 올 때는 거의 나 혼자 버스를 타고 다녔다. 이렇게 겉으로 보이기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아 보였다. 그렇게 날마다 좋은 일들만 있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화재 이후로 나는 늘 불안하고 할머님의 기분을 살피면서 하루하루를 살았었는데 이제 그 우려했던 일들이 현실로 조금씩 나타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