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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학이야기 Apr 13. 2022

철학이야기 주간 뉴스레터 #13


“남자들끼리 동남아 놀러갔다 오면 무조건 걸러라, 남자 애인을 동남아 여행 보내는 것 허락해주면 안된다” 등의 말을 친구를 통해서든 인터넷을 통해서든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사귀고 있는 남자가 동남아에 여행 다녀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 이별을 고민하거나, 애인이 동남아 여행을 가지 못하도록 막는다는지 하는 이야기들도 있지요.  


이야기를 하기 전에 서둘러 다음과 같은 점을 인정해야겠습니다. 불법적 행위로 규정되어 있는 성매매를 하는 것은 법적,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동남아의 일부 도시에서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매매가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요.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동남아를 성매매를 위하여, 혹은 성매매를 염두에 두고 방문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남자들이 동남아에서 성매매를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인터넷에는 100이면 100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넘쳐나지만..) 일부 남자들은 동남아를 방문했다는 혹은 방문하고자 한다는 이유로 자신이 불법적인 인간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에 억울함과 답답함을 느낄뿐만 아니라, 부당한 통제와 모욕을 당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동남아를 방문하는 남성들에 대하여 안좋은 인식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물론 할 말이 있습니다. 실제로 너무나 많은 숫자의 남성들이 동남아에서 성매매를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전부는 아닐테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러니까 편의상 일반화할 수 있고, 성매매한 사람을 피하기 위하여 합리적인 전략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심지어 문제를 야기한 쪽은 남성이라고도 할 수 있을겁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듣는 무고한 남성들은 무척 당혹스러울 것입니다. 그리고 당장 이런 생각이 들겠지요. “저런 성급한 일반화는 오류잖아! 내가 왜 저런 오류 추리에 의해 재단되어야 하지?” 


누구 말이 맞을까요? 과연 남자들끼리 동남아에 가는 경우, 그들을 멀리해야 한다는 말은 합리적인 것일까요 아니면 차별일까요? (합리적인 차별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그런 개념은 엄격한 의미에서 성립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 대해선 기회가 있을 때 다시..) 


저는 특정 성별을 옹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적어도 인터넷 내에서) 의견이 갈리는 주제를 통해서 도대체 차별이 무엇인지 묻고 싶은 것입니다. 저는 하나의 소재로 남자들끼리 동남아를 가는 경우를 살펴보고 있지만, 이 논의는 여성, 중국인, 흑인, 특정 종교 등으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알트만(Altman, 2020)에 따르면 차별은 세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합니다. 


1) 특정 집단 정체성을 이유로 

2) 불이익을 

3) 부당하게 부과하는 것. 


여기서 말하고 있는 차별은 “도덕적으로 잘못된” 차별입니다. 우리는 차별이라는 용어를 도덕과 관련 없는 맥락에서도 사용하지요. 이를테면, 맹인에게 운전면허를 발급하지 않는 것은 차별이 아닐 것입니다. 부당하게 불이익을 부과하는 것이 아닐테니까요. 하지만 알트만과 제가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3번의 조건을 만족하는, 도덕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의미를 포함한 차별입니다. 즉, 우리가 누군가에게, “이것은 차별적이야!”라고 말할 때 내포되는 도덕적 판단으로서의 차별을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앞으로 제가 차별이라고 할 때는,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이런 도덕적 의미에서의 차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알트만의 기준은 여러 면에서 애매하지만, 그래도 무엇이 차별인지 아닌지 사유를 시작하는데는 유용한 것 같습니다. 다시 남자들끼리 태국에 놀러간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이런 집단을 앞으로 태국-남자 집단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먼저 우리는 이들이 불이익을 받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만만치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심각한 불이익이 부과되어야 차별이라고 할 수 있는가? 기준이 너무 엄격하면, 차별의 범위가 너무 적어지고, 기준이 너무 느슨하면 차별의 범위가 너무 넓어집니다. 우리는 차별과 관련된 불이익에 대하여 “주관성”을 강조하는 입장과 “객관성”을 강조하는 입장을 모두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주관성을 강조하는 입장은, 어떤 집단이 받게 되는 불이익이 불이익을 당하는 입장에서 보았을 때 심대하다면, 차별을 야기하는 조건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보지요. (아래서 살펴볼 모리우(2010)도 이런 계열인 듯보입니다.) 하지만 객관성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볼 때 차별과 연결되는 불이익은 인간의 존엄이나 기초적 역량 등의 개념과 관련된 것으로 국한될 것입니다. (저는 Nussbaum(2013)도 이런 입장에 속한다고 봅니다.) 


태국-남성들이 받는 불이익은 소중한 타자와의 관계에서의 배제라든지, 행동 통제라든지, 잠재적 범죄자로서의 정체성의 사소화 등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 불이익이 가해진다고 해서 다 차별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 다른 중요한 조건이 있기 때문입니다. 태국-남자들에게 가하는 불이익이 부당한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사실 특정 집단에게 그 집단 정체성을 이유로 불이익을 부당하게 부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 부당함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주 다양한 기준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사실 윤리학 전반이 모두 참여하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저는 이제 남은 지면을 통하여 여러 입장 중 2가지만 소개하면서, 태국-남성들에게 부과되는 불이익이 부당한지 아닌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기준은 “합리성”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차별과 관련된 부당함의 기준이 합리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충분한 통계가 없거나, 잘못된 통계이거나, 스테레오타입 등에 사로 잡힌 경우에 특정 집단에 불이익을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지요. (Altman 2020 참조) 만약 합리성이 기준이 된다면, 이제 태국-남자에게 가하는 불이익이 차별인지 아닌지는 사실의 문제가 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태국-남성들을 배제하는 것에는 성매매 비율이 높다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에 차별이 아니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은 편견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태국-남자라는 집단 정체성이 성매매 구매자라는 비도덕적이고 문제적인 특징을 나타내는 좋은 지표인가 아닌가 이런 질문이 주된 논의가 되겠지요. (좋은 지표란 무엇인가!)


그렇지만 어떤 학자들은 이런 기준에 반대합니다. 아무리 특정 집단이 어떤 특성에 대한 좋은 지표일지라도, 그런 경향성에 근거하여 개인에게 불이익을 부과하는 것이 여전히 부당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면서 말이죠. 대신 그들은 부당성의 기준으로 자율성을 제시합니다. 이런 입장의 대표적인 학자는 소피아 모리우(Sophia Moreau 2010)입니다. 그녀는 자유민주주의 사회 내에서 개인은 자신의 삶 속에서 자신에게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할 권리를 가지며, 차별은 이러한 권리를 제한하기 때문에 부당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그녀가 무제한적인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때 다양한 고려를 해야합니다. 그런데 차별이 부당한 이유는 어떤 선택을 할 때 자신의 집단 정체성을 추가적으로 고려하도록 부담을 주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주장합니다. 태국-남자들은 태국 여행과 관련된 선택을 할 때 자신의 남성이라는 정체성을 추가적으로 고려해야하는 상황에 마주하게 되는데, 이처럼 정체성이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그녀는 보고 있는 것이지요. (특히 여행이 그 사람에게 중요하다면!) 


이런 대답들이 차별이 무엇인지 속시원하게 말해주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사유를 발전시키고,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사회적 실천을 할 때 좋은 참조들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참고문헌

Moreau, Sophia, 2010. “What is Discrimination?” Philosophy and Public Affairs, 38: 143–179.

역량의 창조 - 인간다운 삶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마사 C. 누스바움 (지은이),한상연 (옮긴이),이양수 (감수)돌베개2015-12-04원제 : Creating Capabilities: The Human Development Approach (2013년).

Altman, Andrew, "Discrimination", Th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Winter 2020 Edition), Edward N. Zalta (ed.), URL = <https://plato.stanford.edu/archives/win2020/entries/discrimi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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