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아가씨

by 양심장

아가씨 후기

‘아가씨’는 그냥 지피티의 추천받아서 아무 생각 없이 보게 된 영화다. 처음엔 일본, 조선 배경 나오길래 ‘아 또 사창가에서 팔려나가고 그런 이야기겠구나’ 싶었는데, 웬걸. 이건 사기의 사기의 사기였다.


간단한 줄거리로는 주인공 숙희는 아가씨의 시종이 되어 다리를 놔주는 임무를 받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아가씨와 사랑에 빠져버린다


초반 스토리 꽤 흔하다, 그리고 전개가 진짜 빠르다. 꼭 필요한 부분만 보여주고 바로바로 넘어가 버린다. 그래서 감정선을 깊게 쌓아 올리진 않는다.

이런 미묘한 로맨스 영화는 감정선을 확실히 보여주고 분위기를 더 이끌어가야 하는데 진짜 필수만 남겨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 이유가 있었다.

결말까지 보면 앞의 내용이 ‘시간 없으니까 메인만 보여줄게’ 같은 뉘앙스로 받아들여진다.


그렇게 빠르게 빠르게 지나가니까 이 영화 뒤에는 뭔가 큰 반전요소가 있겠거니 하며 의심하며 보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스토리가 너무 차근차근 계획대로 정신병동까지 이어지는 거다.

‘어? 여기 지나면 진짜 끝인데 설마 이대로 끝인가?‘ 라며 보고 있었는데

의사들이 “히데코 씨 가시죠 (숙희에게)” 이러는 게 아닌가?

그제야, 이걸 이렇게 반전으로 주는구나!

로미오와 줄리엣인 줄 알았는데 구미호와 얼빠진 청년이었던 거였다.

이 뒤로 과거 회상과 지하실의 비밀이 좌르르 풀린다.


히데코가 과거에 했던 낭독—노인네들 앞에서의 야설 낭독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저 시절에 야설로 돈 벌면 진짜 돈방석 깔겠다 싶은 생각도 잠깐 했고,

애를 오직 그 일만 시키려고 기른다는 설정은 섬뜩했다.

돈과 시간이 남아돌면 별짓을 다 하게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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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깊게 깨달은 부분이 있었다면 성의 묘사이다.

난 성관계를 보통 이해와 성장의 장치라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냥 본능적인 탐식, 더럽고 비참한 가벼운 쾌락으로도 다뤄졌다.

이걸 느끼고 이 장치를 너무 믿지도 말고 자주 사용해서도 안 되겠다,

자칫 가볍고 강한 쾌감이 깊은 의미를 묻어버리거나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탐욕도 원천의 탐욕이 아닌 ‘아 배고파~~~~ 아, 밥은 언제 줘 엄마 어? 더 줘 고기도 줘’

거리는 어린 애새끼의 투정처럼 느껴진다. 왜 그런 걸까? 역시 사랑이 빠져서 그런 걸까?

사랑이 빠진 성관계는 탐욕보다 못한 탐식? 본능이구나.


남성 캐릭터들도 그랬다. 왜 폭력 장면에서 굳이 성적인 협박을 무기로 삼을까? 숙희 협박할 때도 그렇고, 다른 소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도 그랬다. 단순한 주먹이나 칼보다, 강간이라는 방식이 더 기괴하고 역겹게 다가오니까 쓰는 게 아닐까 싶었다. 관객의 거부감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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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기억에 남은 장면은 결혼식 장면과 숙희가 지하실을 엉망으로 만드는 장면이었다.

절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마치고

히데코가 손을 내밀었을 때, 남자가 건네준 게 손이 아니라 펜(?)이라는 것. 여자는 애정을 원하지만, 남자는 여자를 물건 취급한다는 의미로 보였다. 이들의 관계가 가짜라는 걸 보여주는 장치 같았다. 근데 이것도 아니었다.

ㅋㅋ... 그냥 진짜 물건 주고받는 장면이었다...


숙희와 히데코는 잘 맞는 한 쌍이었다. 서로에게 없는 걸 채워주니까.

특히 히데코의 억압된 공간(지하실, 야설)을 숙희가 친히 찢고 적시고

부어주며 망가뜨려줬을 때,

그건 단순한 분풀이가 아니라 구원에 가까웠을 것이다.

나 같아도 “이 사람은 날 위해 목숨 걸 수 있겠다” 싶은 신뢰가 생겼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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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은 해피엔딩이라 마음이 놓였다. 둘이 사랑을 이어가며 끝나는 게 좋았다. 악역들은 제 몫 다 하고 사라지고. 마지막에 남자 캐릭터가 “고추 안 잘려서 다행”이라는 대사를 남긴 건 좀 허무하면서 어이가 없었는데, 동시에 남성성을 어떻게 소비하는지 보여주는 블랙코미디 같았다.


‘아가씨’는 단순한 반전극이나 로맨스가 아니라, 욕망과 권력, 성의 의미까지 건드린 영화였다. 보는 내내 불편하면서도 해방감을 주는, 쉽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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