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아르코 문학창작 발표지원 작가의 시-이어진
공이 왔지
운동장을 지나, 나의 정원을 딛고, 태양을 아직 뜯지 않은 채 네가 왔지
나는 아직 초원을 잊지 못하고
나를 들여다보고 있었지
나를 사랑해
네가 물었고
나는 울었지
울어서 퉁퉁 부은 눈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지
네가 던진 공은 아름다웠지
아름다워서 터질 것 같았지 공속에는 많은 어둠이 들어있다 했는데
그 많은 어둠을 뚫고 너는 어떻게 이 먼 곳까지
날아왔는지
네 기억 속을 날아서
수억 년의 어둠을 뚫고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 하나의 파문으로
너는 왔지
아침을 머금은 저녁의 하늘 위로
구름처럼 가볍게
검은 태양으로 어둡게
내게 왔지
동그란 눈동자로 너는 말했지
말하려 했지
웃음을 머금은 입술로
언제 날아오를 거야?
자유로운 공처럼
나는 뒹굴 수가 없고
날아오를 수도 없는데
너는
나에게 날개를 주려고
겨드랑이에 바람을 넣고
희망을 주려고 주문을 외웠지
날아라
날아올라라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너는
내게 말했지
난 날개가 없어요
오래전에 잃은 날개 때문에
나는 날아오를 수가 없고
아프다 말할 수도 없는데
너는 살아있는 눈사람처럼
말했지 우리의 이야기는 어디로 갔나
어디로 날아갔나
바람의 날개로 공이 왔지
공처럼 데굴데굴 굴러 네가 대문 앞에 와 있었지
검은 웅덩이
검은 그늘, 그 아래 가만히
네가 날개를 활짝 펴고 내게
공을 건넸지 태양의 즐거운 목소리처럼
구름의 흰 깃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