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아르코 문학창작 발표지원 선정작 -이어진
너는 생각이 제멋대로 뻗어가는 구름이었다
구름이 구름을 부르며 하늘로 무한정 자라나는
조그만 눈송이였다
눈송이라고 부르면 푸릇푸릇한 손가락을 뻗어
어디든 갈 수 있는 표정으로 무심히 거리를 걷고는 했지
나무라는 비밀의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너는 기쁨의 표정이었다가
기쁨을 감춘 가느다란 잎사귀의 얼굴이었다가
너는 사라지는 얼굴이 아니야
나는 너의 나뭇가지를 가만히 두들겨 보고는 했지
하루는 불안합니다
그다음 날의 하루는 아름답습니다
아름답다라는 말의 호수에 빠져
너는 무럭무럭 자라는 무덤의 뼈들을 수습하기에 바빴고
여행의 뼈들을 건져 냈습니까
너는 죽은 사람들의 문장을 파헤치며 많은 나뭇가지를 뻗어 올리고 있었고
축복이라는 주문을 외우며, 너는 눈물을 삼키고 있었고
불행한 그림자들이 더욱 많아져서 너는 하얀 눈송이가 무더기로 필요했다
하얀 눈송이들의 무덤이라면
그 안에서 석 달 열흘쯤 살면서 고요한 시간처럼 흘러가고 싶은 표정으로
너는 눈송이를 사랑하는 눈송이가 되었다
나무와 눈송이는 같은 족속입니까
전쟁을 사랑하는 구름의 족속들이 검푸르게 하늘 위에서 몰려다니고 있었고
나는 눈송이처럼 가만히 나무 위에 쌓여 있곤 했네
쌓여 있는 계절은 아름답습니까
너는 내 안에서 속삭이고 있었고
여름의 표정들이 파도처럼 솨아솨아 몰려다니고 있었고
피곤한 돌들은 아무렇게나 흩어져서 바닥 위에 나뒹굴고 있었고
눈송이 속에서 빛나는 하얀 돌들은 죽은 나무처럼 생각이 견고할 텐데
나무는 나무라서 생각이 자유롭습니다
아름다움의 함정에 빠져 오늘도 태양을 벌지 못했습니다
눈송이는 눈송이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지
태양이라는 자본주의의 빌딩 위에서
눈송이는 대책이 없지
대책이 없어서 너는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거리를 걸어간다
나뭇가지처럼 가느다란 실눈을 뜨고
내리는 눈송이를 기분으로 느낀다
눈송이라는 단어는 아름다웠지
그 아름다운 기분에 빠져
눈송이는 태양을 벌지 못하고
하염없이 나무 위에 소복이 쌓여 있네
소복소복 아름다운 눈송이
아름다워서
너는 때로 눈송이의 표정으로 잠이 든다
너는 눈송이를 사랑하는 눈송이였지
파란 생각을 늘어뜨리고 바람 부는 거리를 돌아다니는
거리 위에서 빛날 수 있는가
하얗고 아름답게 사라질 수 있는가
너는 더러운 가판대 위에 매달려서 누군가에게 질문을 던지곤 했다
사랑하는 눈송이라서 그래요
나무는 나무의 생각으로 푸르고 그 푸른색으로 눈송이의 기분을 알아차린다
사라지는 것은 신비롭습니다
눈송이는 눈송이의 커다란 호수 안에서
사라지는 것들을 추억하며 흘러가고 있다
사라진 것들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
맺혀 있는 것 또렷하게 들려오는 너의 목소리
죽어 가며 나에게 읊조리던 너의 목소리
술에 취해서 눈송이를 찾던 목소리
방랑의 뼈들은 수습할 수 없지 방랑의 뼈들은 풍화되어 사라진 지 오래
눈송이 안에서 너는 더욱 새로워질 거야
나는 없는 너의 목소리 안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다
새로 태어나는 눈송이
새로 자라나는 눈송이
나는 사라진 눈송이들을 호명하며 어딘가로 날아가고 있다
어디로 날아가고 있는 건가요?
대답해 줄 수 없는 눈송이
나무들은 한 곳에 서 있을 수 있어서 아름답지
그 외로운 함정을 찾아 눈송이들이 들이닥쳤지
함정이 없어서 그래요
너는 더욱 투명해진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지만
지구는 나무에게 슬픔을 줄 수가 없고
나뭇가지라는 그물 위에 앉아 있다
하얗고 투명해진 새의 부리들이 어딘가로 날아가고 있다
파란 나뭇잎들이 새로 태어나고 있다
새로 태어난 것처럼 맑게 기분을 바꾸고 있다
나는 손가락이 없는 것처럼 표정을 숨긴 채 웃음을 퍼뜨리며 태양을 등에 쪼이며
하얗고 포근한 눈송이가 있었지
눈에 넣으면 아파서 눈송이가 펄펄 날리는
우리는 팔이 길어진 생각을 하늘 위에 펼쳐 놓고 그 위를 사뿐사뿐 걸어 다니고는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