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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이 얼음에게

2024년 아르코 문학창작 발표지원 선정작-이어진

by 이어진

너는 이름이 이상한 얼음이었다 너는 투명한 빙판과도 같은 얼음이었지

얼음이 죽어서 하얗게 표정이 없다


얼음은 다시 살아서 하얗게 기분이 좋다

너는 기분 좋은 팔을 들어 내 눈을 바라보았다

내 눈은 기분 좋은 쪽으로 눈썹을 치켜올렸다

추운 물고기는 기분 좋은 얼음의 결을 따라 흘러 다녔다

추운 계절을 덮고 누워 하얀 얼음을 덮고 누워

나는 물고기를 생각하고 있는 얼음이었다

너는 물고기를 사랑하는 얼음이었다

나는 물고기를 노래하는 투명한 목소리입니까

얼음이 얼음의 빛을 가만히 만져 봐도 되는 걸까


너는 얼음처럼 얼굴이 차갑고

너는 때로 얼음의 얼굴로 잠이 든다

너는 얼음이었지 투명한 생각을 늘어뜨리고 추운 거리를 돌아다니는

피곤한 눈썹은 어디에 두고 온 거에요?

물어볼 겨를도 없이

너는 전화를 끊고

작은 몸을 웅크려 얼음 속으로 들어가고는 했지


사랑이라는 차가운 호수 안에서 너는 생각을 매만지며 잠이 들었지

생각은 언제나 물고기에게로 달려가고 있었지

물고기는 먹을 것이 있는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너는 하얗게 얼어붙고 있었고

손과 손을 마주 잡으면 꽁꽁 얼어서

하나의 나무처럼 솟아오를 수도 있을 텐데

너는 손가락이 긴 팔을 들어 넣어 밤하늘의 별들을 쓰다듬고 있었고

기분 좋은 미래는 어떤 색으로 빛나는 걸까?

물어볼 틈도 없이


너는 투명하게 잠이 들고 있었고

잠이 들어서 기분이 얼어붙은 거예요?

질문할 목소리도 없이

우리는 꽁꽁 얼어붙고 있었고


얼음이 얼음에게 손을 건네면 그 손은 투명하게 상쾌해지는가

너는 꿈속에서 그런 노래를 부르고

나는 기분 좋게 죽어 가면서 얼어붙고 있었고

꿈속에서의 투명한 얼음은 곤란할 텐데 너는 속삭이고 있었고


우리는 얼음이었지 손과 손을 마주 잡지 않아도

물결 같은 생각이 호수처럼 넓어져서

밤하늘의 얼음 속으로 조금씩 번져갔지


빛이 있었고

얼음 같은 빛이 너에게 번져 가고 있었고

물고기가 모여드는 넓은 밤하늘이 있었고

차갑고 기분 좋은 별들이 밤하늘에 무수히 빛나고 있었고


얼음이 고개를 들어 얼음을 바라볼 수는 없는 걸까


너는 얼음 속에서 투명하게 웃고 있었고

나는 너를 생각하며 꽁꽁 얼면서 빛나고 있었고


물고기들은 얼음 속에서 기분 좋게 흘러 다니고 있었지

얼음이 얼음 속에서

무어라 말하는 것 같았지


나는 귀가 없어서 얼음의 목소리를 가만히 안아 주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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