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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

2024년 아르코 문학창작 발표지원 선정작-이어진

by 이어진

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꽃잎이 검은 나뭇가지로 매달려 있는 내게 말했습니다 그날의 순간, 잠깐의 눈맞춤을 기억하는지요 구름은 내 눈 속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내 조그만 나뭇가지는 파르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너는 모른다 너는 모른다 대지는 읊조리고 있었습니다 너는 기쁘고 행복한 표정으로 하늘하늘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지상의 어느 창문 안에서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눈빛을 마주하고, 발그레해져서 서로의 심장을 터트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봄밤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가장 외로운 별에게 지금 막 떨어진 꽃잎 하나가 검은 웅덩이를 음각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러한 풍경을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었습니다 너는 파란 구름의 입술을 생각하며, 두 눈을 감았습니다


빨간 꽃잎 옆의 나뭇가지들이 어떤 기분인지 알지 못한 채 어린아이들이 가방을 메고 나무 옆을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검은 나뭇가지에서 빠져나온 여학생들이 까르르 까르르 지상의 어느 해지는 골목길을 걸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너는 누군가를 깊이 기억하는 것처럼 초췌한 얼굴로 휘청거리며 걷고 있었습니다


달빛이 떨어지는 봄처럼 너는 동백나무 가지 끝으로 마중 나온 골목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조그만 꽃잎이 어린아이의 입술에서 어른의 입술로 피어오르는 동안, 너는 아직 거기 남아 일기장에 붉은 동백 한 잎 한 잎을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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