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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쉬잇 Aug 23. 2021

보라색 푸들 모양 강아지 가방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초록색 발 받침대에 올라서도 집이 있는 8층 버튼에 손이 닿지 않았던 탓에 어린이집 선생님이 항상 엘리베이터 버튼을 대신 눌러주시던, 크리스마스마다 공책이나 연필세트를 주고 같이 사진을 찍어주는 분장한 어린이집 선생님을 진짜 산타 할아버지라고 믿던, 막 태어난 동생과 엄마랑 같이 자던 침대에서 한밤중 갑자기 떨어져도 바로 밑 아빠의 둥근 배에 떨어져 다치지 않았던, 내가 그 정도로 어린 시절의 우리 누나의 이야기다.




그 당시 우리 집은 큰 수조에 많은 구피를 키우고 있었다. 우리 집이 키운다고 하기보다는 엄마가 키운다는 말이 더 맞지만 말이다.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현관에서 대충 신발을 던지듯 벗고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을 정도로 정말 많았다. 우리 가족은 그런 구피를 좋아했다. 하지만 어느 날, 우리 누나는 집 앞 아파트 단지 안 놀이터에서 같이 노는 언니가 강아지를 키운다는 사실을 듣고 너무나도 부러웠다. 동시에 만날 때마다 강아지 자랑만 하는 언니가 밉고 질투 났다. 우리 집은 동생과 내가 아토피가 심했던 탓에 절대 강아지를 키울 수 없었다. 그 사실을 안타깝지만 누나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누나는 날이 갈수록 구피와 강아지를 비교하며 슬퍼했다. 그런 딸을 본 부모님은 어느 날 퇴근길에 보라색 푸들 모양 가방을 사서 누나에게 선물했다. 그저 작은 강아지 모양의 가방이지만 잘 때 이불도 덮어주고 거실 한가운데 가방을 두고 멀리서 손뼉을 치면서 이리 오라고 소리쳐보기도 하며 정말 재밌게 놀았다. 그렇게 항상 가방과 행복한 일상을 보내던 중, 놀이터에 가니 우연히 그 언니가 있었다. 누나는 우쭐한 마음에 언니에게 가방을 보여주며 말을 건넸다.

“언니! 나도 강아지 생겼다!”

우리 누나의 말과 보라색 푸들 모양 강아지 가방을 본 그 언니는 자기네 집에는 진짜 강아지가 있는데 이상한 애가 이상한 가방을 보여주며 자기도 강아지가 생겼다고 하니 기가 찼다.

“그건 강아지 아니야! 바보야!”

말과 동시에 영 좋은 성격이 아니었던 언니는 누나가 소중히 아끼는 가방을 손으로 치며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강아지 가방이 모래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본 누나는 소리 지르며 가방을 주워서 안고 집에 돌아와 한참을 펑펑 울었다. 그때의 트라우마일까. 지금 우리 집에는 구피 대신 불 끄고 안고 자면 사람 같을 정도로 큰 레브라도 리트리버와 자고 일어나면 유난히 부드럽고 따뜻한 퍼그가 살고 있다. 나름 해피엔딩이다.




아마도 지금 그 언니 집에는 엄청 큰 리트리버랑 엄청 부드러운 퍼그는 없지 않을까? 우리 누나가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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