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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쉬잇 Nov 27. 2021

늦은 밤 악몽

깨우지 말고 앞발을 잡아주자

제법 한기가 도는 늦은 밤, 지금 내 모습은 어떠할까. 아마 두꺼운 이불 위 옆으로 누워 대충 코를 골며 자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의식 속은 자각몽이라도 되는 것인지.

여긴 어딘지 두리번거릴 필요는 없다. 자주 가던 산책로가 분명하다. 진정해야 한다. 항상 나오는 산책이며, 똑같은 루트지만 들뜬 마음은 몇 년째 감추기 힘들다. 나아가 익숙한 전봇대가 보인다. 내 소식을 남기자.

“오늘도 지나갑니다. 좋아요 한 번씩 찔끔 싸주세요”

“좋은 거 많이 드셨네요. 좋아요 싸고 갑니다”

“저도 좋아요 싸고 갑니다~ 오늘은 굉장히 춥네요”

다시 익숙한 벌거벗은 벚나무를 지나고, 더 익숙한 하천 산책로에 진입하여 돌다리 옆 상처 많은 바위에 주변 소식을 듣고 간다. 뭉치는 이번에 입맛에 맞는 사료가 갑자기 바뀌어서 속상하고, 겨울이는 얼마 전에 간 애견카페에서 이상형을 만났단 이야기다. 걷다 보니 숨이 찬다. 아마 살이 쪄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아직 안길 때가 아니다. 저번 주 심장사상충 약을 받았을 당시 의사에게 비만이니 자주 운동을 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니 “이 정도면 평균 체중 아닌가?” 같은 자해성 자기합리화는 접어두자. 조금 숨이 찬다고 심정지가 오지는 않으니 말이다. 어차피 곧 커브를 돌아 집에 들어갈 것이다. 허나 왜 더 가는 건지 잘 모르겠다.

“여긴 내가 모르는 길인데 왜 가는 거지? 오케이 더 가도 되지만 이제 힘드니 안아줘. 뭐 하는 거야 그만 가라고 더 간다면 사람들 다 쳐다보게 짖겠어. 이건 협박이야 어서 집에 돌아가자고 그만해”

무슨 일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이건 악몽일 것이다. 지금 내 모습은 어떠할까. 아마 두꺼운 이불 위 옆으로 대충 누워 엇박자 숨을 쉬며 눈꺼풀과 다리만 벌벌 떨고 있을 것이다.




악몽을 꾸는 모양이다. 깨우면 놀라니 진정될 때까지 앞발을 잡아주자. 이렇게 늦은 밤에 괜히 호들갑 떨며 깨울 순 없다. 놀라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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