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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 Feb 04. 2024

이런 씨간장 같은 사랑

#매일글 챌린지 10.

2011년. 첫 아이를 낳았다. 반전 없이 아들이었다. 나는 어쩐지 아들 엄마가 잘 어울릴 것 같고, 아들과 함께하는 장면들을 자연스럽게 상상했고 초음파를 봤는데도 '봐라~~ 나 아들이다~~~~'하기도 했고.. 태몽이 너무나 아들!!!!!!!!!!!이었어서 낳았는데 딸이면 '어머! 오히려 좋아~'가 아니라 뭔가 어색해.... 말도 안 돼~싶을 정도로 아들을 확신했다. 


태몽을 세 줄로 요약하자면
저 멀리 연못에 검은 그림자가 힘 있게 휘휘 헤엄쳐 '뭐지?' 두렵고 궁금한 마음에 다가가니 물고기? 아니네 울퉁불퉁해 악어? 아닌데!!! 그러자 용이 말 그대로 용솟음치더니 하늘을 힘차게 비행하다 별안간 방안 액자 속으로 빨려 들어갔는데 검은 머리칼 반질한 4~5살 남자아이로 변했다는 그런 꿈.


아들을 낳고 아들에 대한 책, 아들에 대한 영상을 열심히 찾아 공부했다. 현실에선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는 데는 꽤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그중 아들을 둥지밖으로 밀어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말, 아들뿐 아니라 아이들을 손님처럼 대하라는 조언도 와닿았다. 육아의 최종 목적은 자녀의 독립이니 내 집에 온 귀한 손님처럼 잘 대접해서 떠나보내야 한다고. (손님이 계속 집에 산다고 생각해 봐.. 으악!!! 그리고 한번 왔다가 나랑 손절한다? 발길 뚝 입싹 닦아도 슬프고 허무할 것 같아!)   

그렇게 열심히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어김없이 시행착오는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들이 낯설지 않았고 두렵지만은 않았다. 어떤 경우는 내가 여러 번 시뮬레이션했던 장면들이라 막상 그 상황이 왔을 때 고대하던 (게임 속) 맵을 만난 듯 반갑고 설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왔구나 왔어~!!! 결정적 순간이~.' 아들이 처음으로 이성친구 이야기를 할 때가 그랬고, 아들이 어린이날에 엄마아빠가 아닌 친구들과 만나서 놀아도 되냐고 물어봤을 때 (아마도 5학년), 아들에게 처음 생리에 대해 설명해 줄 때도 그랬고. 난감하고 서운할 수 있는 상황들을 기다렸던 순간으로 잘 맞이하고 나니 다른 상황들이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나름 무난하게 잘 가고 있는 것 같아~ 아직까지는 좋아..!!! 하던 마음도 중학생이란 두 글자에 멈칫멈칫하게 된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막연한 걱정과 두려움이겠지 하면서도 그 걱정을 놓을 수 없다. 


엊그제는 학교 배정안내메시지를 받았고 2월의 첫 토요일인 오늘은 아침 일찍 교복집 오픈런을 했다.
서둘러 갔는데도 사람들이 줄을서 오픈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엄마고 아빠고 아들이고 딸이고 할 것 없이 검은 옷들.. 그 와중에 남편은 파란 패딩을, 나는 오렌지색 뽀글이 아우터를 걸치고 있으니 너무 튀어 보이 나보다. 아들이 귓속말로 "엄마 아빠만 너무 화려해~~"라고 했단다. 나는 못 들었지만.
이 와중에 줄 선 모습을 찍고, 엄마아빠 둘 다 와서는, 교복 갈아입는 것도 찍고, 첫 중학생 학부모 티를 팍팍 내며 유독 우리가 들떠 보이는 감이 없지 않다. 바지와 셔츠만 치수를 재고 직접 입어보고 조끼랑 카디건은 니트류라 입어볼 수 없다고 했다. 맞춤 제작인 줄 알았지만 그 자리에서 치수에 맞는 옷을 입어보고 바로 가지고 올 수 있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교복지원금으로 한 벌을 구매하고 셔츠랑 바지 필요한걸 하나씩 더 사서 왔다. 교복을 입기 전과 입은 후로 이 아이가 달라질 것만 같은 느낌. 나와의 관계도 달라져야만 할 것 같은 기분. 이제 진짜 아이가 아니다. 내복차림으로 개방정 떨며 혀 짧은 소리 내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으면 어떡하지. 저 앳된 얼굴, 목소리, 매끈한 다리와, 턱을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은 거지....?!


오늘 교복을 사러 나오기 불과 15분 전만 해도 아이와 나는 냉전상태였다. 

아빠는 잠시 회사에 볼일을 보러 가고 내가 준비하는 동안 시간이 30분 가까이 남았는데 이미 외투를 입고 하릴없이 어슬렁거리는 게 못마땅해 "너는 시간부자구나~ 시간이 흘러넘치네.. 그럴 거면 와서 빨래나 개" 

빨래 '나'라고 하지 않고 여기 네 빨래 좀 개서 옷장에 넣어줄래? 했어도 됐는데... 
"엄마는 아빠랑 달라. 엄마는 요즘 시간이 귀해. 시간이 더 있음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데 해야 할 일들하고 나면 지쳐서 운동은커녕 에너지가 없어서 잠만 자게 된다고~"
듣기 싫을 잔소리를 하면서 이리저리 바쁘게 다니느라 휙 돌아서는 찰나에 정원이가 내 뒤통수에 대로 하는 말을, 그리고 입모양을 얼핏 봐버렸다.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입으로 열심히 불만을 터트리는 게 보였다. 모른척해도 좋았을걸 굳이 다가가서 뭐라고 했어? 너 분명히 뭐라고 했잖아 엄마가 다 듣고 네 입모양 봐버렸는데. 뭐라고 했어?? 엄마랑 싸울래?? 하고 유치뽕짝 애랑 싸우려 든다.. 내가.


아이는 어김없이 기분이 상했고 방으로 들어가 엄마가 오늘 내준 과제들을 어떻게 해결할지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고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교복 사러 가는데 기분 망쳐서 나가면 안 되지. 나도 그쯤.. 하고 남편이 이제 나오세요~ 하는 전화에 서둘러 차로 갔다. 아들은 뚱.. 한 표정. 나도 이전 상황에 대한 별다른 언급도 없이 자연스럽게 교복 고르는 일에 집중한다. 집에 와 갓 지은 밥을 달래간장에 비벼 맛있게 밥을 먹던 중 아들이 갑자기 웃으면서 사과 하나를 건넨다.  아까 엄마한테 짜증내서 미안해. 아빠가 무슨 소리야? 또 무슨 일 있었어~?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니 제 입으로 술술술~ 아까 집에서 나갈 때 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내가 혼잣말로 '잠만 자니까 시간이 없지'라고 했는데 엄마가 들을 줄 몰랐다고. "혼잣말이라고 하기엔 너무 크던데?"라고 했지만 사실 맞는 말이고.. (사실 어제도 운동하러 나갈 거라고 운동복까지 다 입은 채로 씻지도 않고 8시경부터 잠이 들어 12시간 가까이 잤다) 나는 운동할 에너지도 없어서 쓰러져 잠만 잔다고 생각하지만 그걸 바라보는 입장에선 운동할 에너지를 만들어야지 잠만 자니까 에너지가 안 생기지! 할 법도 하지. 내가 시간을 허투루 쓰면서 저녁에 졸려서 책 읽을 시간 없다고 하는 게 말이 되니?? 핑계지! 하는 거랑 다를 바 없다.  서로 똑같은데 최근 케이스로만 봐도 번번이 예비 사춘기 아들이 먼저 사과한다. 과연 아이가 더 잘못해서일까?? 아이가 더 불리해서겠지? 오래 짜증 냈다간 꽁 하는 엄마에게 받을 불이익이 무섭고.. 이 냉기가 불편해서. 어찌 보면 아이가 더 그릇이 크고 아이가 더 현명한 거다.

그렇게 한번 서로의 속상하고 미안했던 마음을 꺼내서 고운채에 잘 걸러냈다 생각했는데... 아이는 미안함이 남아있었나 보다.

어제 못한 운동도 하고 오랜만에 다 같이 코인노래방도 가고 둘둘이 더블데이트로 아이들 취향에 맞춰 맛있는 저녁까지 먹고 오는 길. 빗방울이 하나씩 떨어져 나는 아들이 씌워주는 우산을 쓰고 걸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이렇게 엄마랑 팔짱 끼고 오래 걷다 보니 아까 짜증 낸 게 더 미안해지네.." 아들이 사과 하나를 더 건넨다. 요즘 사과도 엄청 비싼데.... 


엄마 아빠가 사이좋은 게 자기한테는 너무 중요하다고 엄마 아빠가 기분 안 좋으면 본인도 기분이 안 좋아지는데 내가 아까 기분 안 좋을 때 엄마 아빠는 어땠겠나.. 맨날 짜증 낼 땐 엄마 아빠랑 말 안 해야지! 나 삐뚤어질 거야!!라고 마음먹는데 또 어느 순한 헤헤 호호하면서 이야기한다고 이런 가족이 너무 좋다고 말한다. (나는 이런 말 쑥스럽고 어려워서 엄마한테 잘 못했던 것 같은데. 또 자존심 부린다고 엄마한테 사과도 잘 안 하면서_무슨 어른이 엄마가 되어서 사과도 안 하냐며 엄마를 원망했었다.) 엄마아빠가 이렇게 좋은 사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처럼 크지 못했을 거라는 말에 아이의 당부와 부탁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러니 제발 아빠랑 싸우더라도 나처럼 잘 화해하고 삐뚤어지지 말고 헤헤 호호 다시 웃으며 잘 지내요'라는.

유독 엄마 아빠의 감정선에 민감한 아이. 내가 그걸 활용해서 아이를 불안하게 하고 협박하지는 않았을까.. 고민해보게 하는 고백이다..


부모의 사랑은 씨간장과 같다. 씨간장은 햇간장과 섞어 특유의 풍미를 보존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저 100년 200년 오래 묵힌다고 씨간장이 되는 게 아니라 더 중요한 가치는 '맛'이다. 나의 사랑이 아이의 햇사랑에 풍미를 더할 수 있다면 내가 더 맛깔나게 사랑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이는 잘 키우려고 낳는 게 아니다, 사랑하려고 낳는 것이다. 중학교에 가는 아들 잘 키우려고 애쓰는 학부모가 될게 아니라 부모답게 아낌없이 사랑하고 믿어보자. 아이는 저절로 잘 자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202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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