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여도 혼자는 아니다
부산에서 엄마가 오셨다.
81살의 연세의 엄마는 걷는 속도도 느리고, 귀가 잘 안 들려 대화도 반쯤밖에 안된다. 그리고 81세는 고집도 세다.
생각보다 늙으신 엄마를 보고 그저 가슴 아파 더 잘해주기만 하는 딸은 드물다. 화 부터난다. ‘왜 저렇게.. 말을 못 알아듣지?’ ‘왜 저렇게 걷는 게 느리지?…’ 연세가 들어서 그렇다는 걸..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엄마가 자기 관리를 안 해서 그렇다고 엄마한테 화가 난다.
미국에서 홈케어 서비스를 할 때, 우리 직원이 가족들에게 자신의 부모가 치매라고 하면 처음에는 그럴 리가 없다고 화내는 자녀가 대부분이었다. 자녀들은 부모를 가끔씩 보니깐, 가까이에서 보살펴 주는 간병사나, 간호사들이 더 잘 안다. 사실 그 누구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 중의 하나다. 우리들에게 엄마란 존재는 늘 주는 엄마, 보호해 주는 엄마 지 그 반대가 아니다. 그래서 그 자녀들이 화를 낸다고 해서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 사람들이 화를 내는 경우는 주로 그 어떤 상황이 감당되지 않을 때다.. 어떤 일이던 내가 감당할 수 있고 해결책이 있으면 별일 아닌 거 같아서 그렇게 화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의 엄마의 모습이 나의 미래의 모습일 것 같아 두렵다 그래서 더 속상하다.
젊었을때, 우리 엄마는 아주 아름다우셨다. 초등학교 때 엄마뒤를 따라 버스를 올라타면, 엄마가 버스 뒤쪽 비어 있는 자리를 향해 걸어가는 동안 남자들이 하나둘씩 버스 뒤쪽으로 머리를 돌려 우리 엄마를 쳐 다 보았다.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내 뇌리에 박혀 있다. 그리고 그중의 한 명은 엄마를 보면서 “아~ 이쁘다”라고 감탄했다. 나의 중학교 친구는 버버리 코트를 입고 긴 고대 머리를 하고 학교에 나타났던 우리 엄마를 아직도 늘 이야기한다. 너무 멋있었다고…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나고 여전히 60대에도 이뻤던 우리 엄마는 70 대에도 미국에서 나랑 쇼핑을 가면 다들 언니냐고 물어봤다. 전혀 내가 늙어 보여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 친구랑 쇼핑을 갔을 때는 그 친구가 내 엄마냐고 물어봤으니까, 그런 엄마를 오래간만에 한 번씩 보면 잠시 놀란다. 내 기억 속의 엄마의 모습이 많이 변했다. 우리 엄마의 아름다움도 80을 이길 수는 없나 보다.
81 울 엄마는 고집이 세다. 지난번에 오셨을 때 걷는 속도가 하도 느려서 걷는 운동 좀 하라고 했더니, 할 일 없이 혼자 걸어 다니기 싫다고 한번에 일축해 버렸다. "내나이에 이정도면 되지." 그럴 땐 말문이 막히고 실망스럽다. 딸 마음을 몰라 주는 엄마.. ‘근데, 사실, 똑같은 거 아닌가?’ 부모가 아이들한테 ‘공부 잘해’라고 하는 거랑 뭐가 다른가? 그러면 상당수의 아이들이 화를 낸다. ‘누구는 공부 잘하기 싫어 안 하나?’ 그래도 성실한 아이들은 금방 마음 잡아먹고 공부를 잘하기 위해 노력하듯이 울 엄마도 나한테는 그래놓고 이제는 일주일에 한 번 왕복 40분을 걷는다 하셨다. 자극이 되라고 이 길여 총장 이야기도 보냈었다. 90대인 사람도 50대인 나보다 건강한데.. 처음에는 늘 자신이 남들보다 항상 잘 났다고 생각하시는 엄마는 자신 보다 나이 많고 더 젊어 보이는 사람이 있다는 걸 못 믿는 눈치였다. 신문 기사를 보여줬다. 엄마도 할 수 있다라고.. 그게 엄마를 약간 자극시킨 듯하다. 전 보다 걷는 게 좀 빨라지신 것 같다. 이제 일주일 3번 운동하라고 말했다. 이렇듯 80 에도 운동을 하면 금방 티가 난다. 참고로 엄마를 12월에 보고 지금 보니 겨우 3 개월 만에 일이다. 정말 몸은 훈련하기 나름이다.
자존심이 강한 우리 식구들은 늘 그런 식이다. 누군가한테서 받는 충고에 그게 맞는 말인지 알면서도 일단 화부터 내고 본다. ‘몰라!’라고 일축해 버린다. 나도 엄마한테는 그랬던 것 같다. 왜 우리는 이렇게 생겼을까? 그냥 상대방 말을 잘 받아주고 맞는 말이면.. 흔쾌히 오케이라고 해주면 더 좋을 텐데 …. 하기 싫어서 화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화내고 , 자신의 약점을 찔린 것 같아 화가 난다.
특히 더 고집이 세고 남의 말 듣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엄마의 반응은 ‘안 한다. 안된다.’였다. 말을 한 사람이 무색하게 만든다. 자기가 모르던 사실을 이야기하면 설마??? 그럴 리가?라고 눈을 치켜뜨면서 아닐 거라는 부정적 반응부터 보인다. 그러면 나도 대화하기가 싫다. ‘우리 엄마가 젊었을 때도 이러셨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딸을 여전히 사랑한다. 자기를 지키듯이 딸도 무자비하게 지킨다. 다른 사람이 뭐라든.. 우리 딸만 지키면 된다. 공평, 정의, 그런 거 없다... 내 딸부터 챙기고 본다. 그래서 엄마를 절대 미워할 수 없다.. 나는 우리 딸에게 그런 엄마가 되어 줄 수 있을까?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무조건 딸 편을 들어주는 엄마….
생각해보면 나도 가끔은 딸이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가 되어 본 적이 있다. 작년에 아이들이랑 베를린에 여행을 갔을 때다. 우리는 베를린을 걸어 다니면서 가이드를 통해 베를린 역사를 듣고 있었고 나는 말을 경청하지 않고 다른 쪽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보다 못한 우리 딸이 가이드를 무시한다고 한마디 했다.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때 나는 그 사람을 무시했던 게 아니고 그 가이드가 들려주는 처참한 독일의 역사를 피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알고 봤더니, 독일의 베를린은 저 중세기부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면서 죽었고 내가 서 있던 장소가 바로 그 피로 얼룩진 곳이었다. 그리고 유태인 학살의 피까지.. 학살에 학살로 이어진 너무나 무거운 도시의 분위기에 마음이 무거워져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고 마음속으로 짜증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딸의 눈에는 내가 예의 없고 안하무인인 엄마로 보였나 보다.
좋고, 기쁘고, 마음 편한 것만 보고 살고 싶은 건 50이 넘으며 더 해 진다. 점점 격한 감정들을 받아들일 마음의 힘이, 나이와 함께 빠져나가는가 보다. 아니면 오랜 세월 이미 겪은, 나름대로의 마음고생들로 인해 더 이상은 그런 걸 접하고 싶지가 않다? 뭐 이런 마음? 세상을 모를 때는 이것저것 알고 싶은 마음들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겪고 보면 안 좋은 건 더 이상 싫다. 미움이나 질투, 슬픔, 분노 등의 격한 감정이 우리의 에너지를 너무 소모시킨다. 그래서 엄마는 티비 프로그램이 볼 게 많지 않다고 한다. 50대인 나도 그런데.. 특히 요즘 많이 방영되는 살인 이야기, 조폭 이야기 들이 그렇다.
내가 엄마 나이가 되면 나는 과연 엄마보다 나을까? 아이들이 하는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을 선입견 없이 들어주고 그들의 신발을 신고 이해해주고 그들이 원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까? 나이가 든 나를 좀 더 아이들에게 이해시켜주고 그 나이에도 자기 발전을 하며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들이 나의 80대를 혹은 90대를 동경하게 만들 수 있을까? 귀를 열어 놓고 마음을 열어 놓고 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엄마가 되어 줄 수 있을까? 사람이 다 틀리듯 각기 원하는 건 다 틀리다. 하지만 나이 든 아이들은 쿨한 엄마를 원한다. 잔소리하지 않고 자주 연락 하지 않고 하지만 그들이 연락할 때는 도움이 되는 엄마. 그들은 대화보다는 문자를 선호하고 시시콜콜 연애사도 말해 주지 않는다. 나는 아이들이 말하기 전에는 시시콜콜 그들의 생활을 물어보지 않고 전화보다는 문자를 보낸다. 마음은 조금 서운 하다, 하지만… 나도 일 할 땐 바빠서 그들의 문자를 못 보고 지나 칠 때가 많았다. 지금도 자주 놓친다. 뭐 심은 데 뭐 난다? 내가 뿌린 씨앗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영원한 힘이다. 서로가 필요로 할 때 우리는 제일 먼저 뭉친다. 그러면 된다. 우리 편만 확실히 있으면 된다.
지금 우리는 각자 서로의 자리에서 서로가 해야 할 일들을 하며 서로의 주어진 인생을 열심히 살고 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다 각자 매일같이 우리들의 몫을 살아 내기 바쁘다. 몇 달 뒤에 우리가 다시 만날 때 우리는 서로의 잘 살아온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포옹한다. 그거면 된다.
엄마 한 테 안타까운 마음으로 짜증 내지 않기를. 엄마는 엄마의 연세를 잘 살고 계시고 나름 열심히 살고 계신다. 욕심부리지 않으면 된다. 받아들여야 한다. 엄마는 옆에 있는 그 존재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따듯하다. 그리고 누가 나이를 거스를 수 있을까? 미안한 말이지만 이 길여 총장님은 자식이 없다. '우리 엄마도 우리 셋을 낳지 않고 혼자 사셨으면 지금 더 건강할 수 있었을까?'
아무도 다 가질 수는 없다. ‘엄마는 세 명의 아들딸을 둔 지금의 자신의 인생을 혹시 그분의 인생과 바꾸고 싶으실까?’ ‘나는 우리 아이들 없이 성공한 독신녀, 나만 보고 산 인생으로 바꾸어 준다고 한다면 바꾸고 싶을까?’ 1 초의 주저도 없이 '아니다!’라고 한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건강하고 쿨한 나를 만들어 나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