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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

오십이 넘고 보니…

by 엘라리

사월은 잔인하다! 사월은 늘 잔인했다!

절망하는 내 모습


3월 29일 날 건강 검진을 하고 4월에 결과를 받았다. 곧 죽을 만큼 아픈 곳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내 몸은 여기저기 다 할퀴어진 흔적들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전쟁터를 다녀온 병사처럼…

우울해졌다. 치열하게 살아오고 남은 흔적 들 같아 마음이 아프고 내 생명의 일부분을 떼어주고 돈을 번 것 같아 슬펐다. 갑상선, 간, 경동맥, 자궁, 유방, 골 감소, 혈액 콜레스테롤 등등.. 알게 모르게 모든 장기가 다 상처를 입었었다. 그동안 바빠서 건강 검진도 제대로 안 하고 살았던 것도 후회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골골할 뿐 특별히 아픈 데가 없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알고 보니 골골한 이유가 이래서 인지도.. 그런 자신감에 상처를 입었고 갑자기 혼자 건강히 살려하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듯해서 기운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냥 이대로 늙어 죽는 건가?’ 십년 넘게 너무 장시간 (평균 14시간) 앉아 일을 해서 또 운전을 한쪽 다리로만 매일 같이 30년 넘게 해서 골반도 틀어지고 한쪽 다리도 짧아졌단다.’ 특별한 조치도 필요하다’. 요가가 조금은 도움이 되는 것 같지만 좀 더 다른 운동을 해야 할까 싶다. ‘골반 틀어짐'이라고 검색을 열심히 해 본다. 너무나 많은 정보들이 쏟아진다. 많은 생각들로 머리는 무거워지고 단번에 해결이 안 될 이 문제들은 내 머리와 어깨를 짓누른다. ‘역시 나도 평범한 어쩔 수 없는 50대이구나’ ‘늙는다는 게 이런 거 구나’ 얼굴만 젊어 보이면 될 줄 알았다. 그러면 몸도 괜찮을 줄 알았나 보다. 근데 얼굴도 몸도 … 마음에 안 든다. 어디 가서 바꾸어 올 수도 없고.

요가 하는 나


갑자기 새로운 몸을 쇼핑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미래에는 그런 일도 있을 것 같다. 점점 인간은 오래 사는데 몸 상태는 그 수명을 따라가지 못하고 아직도 한계가 많다. 그러고 보니 그런 영화를 어디서 본 듯하다. 누가 영원히 살려고 죽어 가는 사람의 몸을 훔쳤는데 그 사람의 기억들이 다 안 지워져서 일어나는 갈등과 고통과 비극.. 100세 시대에 몸은 아주 중요하다. 오래 산다면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한다. 아무도 추한 겉모습을 가지고 오래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모두가 20대의 몸매와 얼굴을 여전히 선망한다. 원래 나이보다 10년만 젊어 보여도 만족했는데 나이가 더더욱 많아지니 그것에도 만족하지 못한다. 지근의 10년 전 얼굴은 40대 후반이니.. 사월 내내 일주일 넘게 우울증에 빠져 허덕였다. 마음이 슬프니 몸도 무겁고 삶에 대한 열정도 사라진다. 의사 인 오빠를 붙잡고 넋두리를 해본다. 이 나이 되면 그 정도는 자연현상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라더니 (참고로 오빠는 방광암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이다. 내가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았다! ) 그래도 걱정되었는지 엄마한테 나의 상태에 대해서 이야기했나 보다. 엄마가 전화로, 카톡으로 건강 검진 결과가 어떠냐고 물어 오셨다.

운동하는 내 모습



우리 오빠는 성형외과 의사다. 오빠한테 자신의 와이프나 엄마가 늙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어릴 때 귀여웠던 여동생의 얼굴은 아니다. 오빠는 항상 대화 중에 계속 쳐다보며 내 얼굴을 살핀다. ‘여기 가 좀 그렇네,.. 이 나이에는 이런 시술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게 내 얼굴을 유심히 보면서 늘 자신이 하는 모든 시술과 수술을 나한테 들이민다. 와이프나 엄마가 나이 들어가는 건 당연한데, 어릴 때의 동생의 모습이 점점 사라지는 건 마음이 안타까워 이래 저래 뭐든 해 주고 싶은가 보다. 귀가 얇은 나는 또 ‘그러면 해볼까?’라고 생각해 본다. 하지만 미국에 거의 살았던 30년 동안 오빠 덕을 자주 볼 수는 없었다. ‘생고생..’ 나는 미국에 살았던 30년을 그렇게 부른다. 똑같은 약사란 직업을 가지고 한국에서도 할 수 있었던 직업을 굳이 시험도 다시 보고 면허도 다시 따서, 영어로 힘들게 버버 거리며 일을 했다. 영어로 말하는 데 대한 스트레스가 너무 힘들었다. 나쁜 우리 아이들의 엄마는(나) 자신의 영어를 지키기 위해 아이들의 한국말 쓰기를 열심히 권장하지도 않고 집에서 같이 영어를 사용했다. 후회된다. 한국말을 많이 사용하면 다음날 영어가 잘되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 드라마를 10년 넘게 끊고 산적도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미국에서 자란 우리 아이들한테 내 나이 또래의 연예인들의 얼굴이 너무 부러워 ‘저 사람 엄마란 같은 나이인데 이쁘지?’ 하면 아이들은 단방 알아본다. ‘She looks old…’ 그리고 내가 더 젊어 보인 다고 한다. 신기했다. 내가 보기에는 주름도 하나 안 보이는데.. 너무 잡아당긴 무표정 함이 그들의 나이를 말해주는 걸까?



이런 잔인한 사월도 부활절과 함께 지나간다. 나의 사월은 항상 갑자기 달아오르는 봄의 햇살과 함께 부산하고, 따갑고, 여기서 불쑥 저기서 불쑥 나의 예민함을 자극하는 일들이 늘 솟아나던 달이었다. 그런 나의 생각의 불청객들은 신기하게도 부활절을 맞으며 눈 녹듯 사라진다. 늘 생각했다. 예수님의 고난 주간에 나도 고난을 피할 수는 없구나.. 이번 사월도 50이 넘은 나의 연륜은 2025년 사월의 고난을 부활절을 기다리며 조용히 견뎌 낸다. 그러면 부활절이 오면 어떻게든 다 사라진다. ‘이 또한 지나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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