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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

혼자여도 혼자는 아니다

by 엘라리

‘우째 이런 일이…’ S.O.S

‘응급상황에 당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굴까?’

‘당신은 어떤 안 좋은 일을 예감하며 그래도 그 일을 한 적이 있는가?' 예를 들어 주머니에 있던 차 열쇠를 가방 안에 넣으면서 혹시 가방을 차에 두고 내리지 않을까..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그냥 그렇게 해 버렸던 것처럼…


평생 이름만 들어보고 가보지 못한 용인 민속촌을 서울에 오신 엄마랑 가보기로 했다. 삼일째 돌아다니느라 힘든 엄마는, 집에 있고 싶어 하셨지만 내일 다시 부산으로 가실 엄마를 집에 만 계시게 하면 안 될 것 같아 어딜 갈까 고민하다가 여기로 정했다. 오신 첫날 가락동 수산 시장을 돌고, 다음날은 운악산 출렁다리를 보러 갔다 오고, 그다음 날은 전시회도 볼 겸 푸트라 서울 미술관 근처랑 남대문 쇼핑을 하고… 나도 사실은 집에서 쉬고 싶은 마음이 꿀떡이었지만.. 나중에 후회할 까봐 벌인 일이었다. 전시회에 갔다 오는 길은 전철을 반대편으로 타서 30분 만에 도착할 집을 한 시간 넘겨 도착했었다. 엄마는 덕분에 피곤해서 잠을 잘 주무신다 하셨지만 왠지 나는 너무 피곤해서 잠을 잘 잘 수 없는 나날이었다. 그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결과를 낳고 말았다.



민속촌을 찾아가는 길 근처에, 엄마가 드시고 싶은 한우갈비를 검색해서 찾아간 곳은 생각보다 둘러둘러 꼬불 꼬불 한 길로 가는 산속에 있는 집이었다. 이미 점심을 먹는 것만으로도 지친 우리가 마침내 용인 민속촌에 도착하고 느낀 건, 할인된 가격으로 19000 원을 주고 들어 갔지만 정말 볼 게 없다는 거였다. 그럭저럭 걸어 다니다 주위 카페를 검색해서 들리기로 했다. 인스타그램에서 본 이쁜 카페가 근처에 있길래.. 근데 웬걸.. 건물 주변은 좋은 경치가 아닌 쓰레기가 여기저기.. 이쁜 건물만 하나 덩그러니….

카페 기로띠


그래도 커피를 맛있게 먹고 피곤함을 약간 회복했다. 그리고 차에 타려고 하는 순간, 차 열쇠가 차에 있는 가방에 있다는 걸 깨달은 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그래도 안도했다. ‘전화기 앱으로 열면 되지’ 민속촌에 있는 동안 차열쇠는 내내 바지 주머니에 있었다. 약간의 불편함을 느껴서 가방 안 주머니로 열쇠를 옮기며 예감했다.. ‘왠지 이일로 내가 차열쇠를 안 가지고 내리는 실수를 하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내가 기억하고 있으면 되지’ 생각하고 가방에 넣어 버렸었다. 내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핸드폰에서 메르세데스벤츠 앱을 열고 열림 버튼을 누르니, 핀 번호를 넣으라고 했다. 근데 비번이 틀리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이거는 미국차 비번이고.. ‘한국차는???’ 핀 초기화를 하라고 한다.. ‘어떻게?’ 세일즈 분한테 전화를 하니 핀 번호는 이멜에 있고 핀 초기화 방법은 서비스 센터에 물어보라고 했다. 비번의 초기화를 구글로 쳤는데 유튜브가 뜬다.. 유튜브를 보고 있을 마음의 여유가 없다. 볼걸..



벤츠 서비스에 전화를 해서 핀 초기화 방법을 물었다. 차가 AMG라고 또 다른 곳으로 전화가 전달된다.. ‘간단한 거 아닌가? 초기화?’ 전화가 다른 곳으로 전달되는 동안 마음이 불안하다. 드디어 전화를 받은 여자 담당자는 다짜고짜 열쇠가 차 안에 있으면 전화기 앱으로 여는 게 안될 거라고 하고는 문을 당겨 보라고 했다 ( ‘열리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 ) 몇 번 하다가 네이버에 외제차 문 열어 주는 서비스를 검색해서 부르라고 황당한 말만 하고는 문 열어 주는 건 서비스센터가 하는 일이 아니라고 했다. 세일즈 분은 문 따는 회사가 오면 십중팔구 차가 망가진다고 했고 자신의 경험담이라고 했다. 집에 가서 여분의 키를 가지고 와서 여는 게 최상이라고…



앞이 캄캄했다. 용인에서 서울까지 택시를 타고 갔다가 거기서 다시 택시를 타고 와야 한다. 왕복, ‘차가 얼마나 막힐까?' ‘과연 택시는 있을까?’ 아는 사람의 도움을 받기 위해 생각해본다. ‘누가 여기서 가까이에 있을까?’ 생각 나는 사람은 근처 분당에 사는 친구, 자주 보지는 않지만 미국에 있을 때 친했던 친구다. 전화를 했더니 안 받는다. SOS라고 문자를 보냈다. 말레이시아에서 카톡으로 연락이 왔다. 여행 중이다. 저런!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다. 동탄에 사는 새로 사귄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레슨을 하는 스케줄이 꽉 찬 날이라고 했다. 하지만 자기를 생각해 줘서 고맙다고 한다. 날은 어두워지고.. ‘택시를 부를까?’ 생각하는데 세일즈 분이 다시 전화가 왔다. 밴츠 앱을 열어 보라고 하더니 차례대로 핀 초기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비번이 이멜로 다시 날아왔다. 드디어 아무렇지 않게 문이 열렸다. 핀 초기화를 처음부터 가르쳐 주지 않은, 서비스센터 직원의 불친절하고 무지 함에, 한국 벤츠회사에 대한 한심한 마음이 들었다. 한국은 언제나 미국보다 서비스가 친절 신속하고 더 고도화된 듯 하지만, 항상 느끼는 건 뭔가 하나가 부족한 고도함이라고 나 할까? 빠르고 신속한 서비스는 맞는데 뭔가 기본적인 거 하나가 부족해 보인다. 과다한 정보와 서비스의 허점 같은 게 있다. 핀 초기화로 너무나도 쉽게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를, 그 긴 시간 동안 서비스센터 직원의 오만함 내지는 무지 함으로 내가 직접 핀초기화를 어떻게 하는지 물어본데도 불구하고, 내 말은 무시되고 전화는 AMG 서비스 센터로 다시 전달되고, 또 다른 담당자로부터 나의 질문은 또 무시되었다. 그리고 결론은 서비스 센터는 차문 여는 걸 도와줄 수 없다는 거였다. 조금만 더 열심히 내 말을 들어주었더라면.. 진짜 필요한 서비스를 하는 서비스 센터가 되지 않았을까? 그때 초기화를 한 번 더 구글에서 찾아보려 하지 않은 나를 후회하고, 초기화 방법을 끝까지 찾아내서 연락해 주신 강남 효성벤츠 박민선 팀장님 께 커피를 빚졌다. 10초 만에 해결될 일이 얼마나 살벌하게 크게 부풀려졌는지.. 그것도 먼 용인에서..


그래도 혼자인 줄 알았던 한국 서울에서 내가 급 하면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고맙고 신기하다. 우리는 절대 혼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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