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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를 마셨다!

혼자여도 혼자는 아니다.

by 엘라리

오늘따라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몸이 너무 무겁다!? 한 번씩 그럴 때가 있지?

그럴 땐 쉬자. 근데 이 길티 필링.. (Guilty Feeling) 죄책감…


한국에 온 나는,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을 실감 하고 있다.

그전에 사업을 하면서 거의 24 시간 7일을 일했던 나는, 일을 그만두면서 생긴 공간을 무엇으로든 채워야 했다. 아침 6-7 시면 일어나서, 책상에 앉아 이메일을 훑어보고, 답장도 하고, 보내기도 하고 , 읽어야 할 서류들도 검토하고, 직원이 해놓은 일들을 체크하고.. 그리고 오피스에 나가면 거의 10-11 시 사이였다. 오피스에 나가자마자 사람들 이 들고 오는 문제해결, 나를 만나자고 오는 사람 만나기, 걸려 오는 전화를 받기가 일쑤라, 조용히 내일을 정리할 시간은 아침 일찍이나 주말 밖에 없었다. 그러던 내가 일을 그만두고 아침에 (지금도 6- 7시에 눈이 떠진다) 일어나하는 일은 쇼핑이었다.

워낙 옷을 좋아하는 나는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가 이쁜 옷을 구경하고 입어 보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나는 쇼핑을 온라인으로 주로 했다. 미국 내 유명 백화점이나 이태리 사이트에서 주문을 해서 입어 보고 마음에 안 들면 공짜로 보낼 수 있다. 커다란 박스를 매일 받고 또 매일 다시 반품을 하고.. 오죽하면 Fedex, UPS 직원이랑 친하게 됐을까? 지금쯤 내가 안 보여서 의아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입고 싶었던 옷들을 실컷 이것저것 입어 보고, 강아지랑 여유롭게 산책도 하고.. 늘 전쟁터에 나가 있던 마음으로 일만 하던 내가 이런 절대 심각 하지 않는 일들로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자체가 너무나 행복했었다. 하지만 단순한 일은 곧 사람을 무료하게 만든다. 그 무료함이 내가 여기 한국에 와 있는 가장 큰 이유이다. 뭐든 배우고 싶으면 한국은 가까운 곳에서 다 배울 수 있고, 강의 비용도 미국에 비해서 훨씬 적다. 그리고 융통성도 있다. 미국은 한 예로 짐(헬스클럽) 회원권을 시작하려면 한 번에 일 년을 계약해야 한다. 한두 달 만 할 수 없다. 물론 좋은 곳이라서 더 까다롭다. 그리고 처음에 입회비 도 내야 하니 섣불리 시작할 수 없다. 특히 나같이 한국에 왔다 갔다 하고 여행을 자주 가야 한다면 더더욱…


내가 일을 그만두기 전부터 해 보고 싶었던 일은 동화책을 만드는 일이었다. 성인들이 읽을 동화책이다. 아직도 시작은 하지 못했지만. 준비 중이다. 동화책에서 그림과 글 어는 게 더 중요할까? 글이 있어야 즉 내용이 있어서 거기에 맞추어 그림이 만들어진다면 글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보통의 동화책을 보면 글을 쓴 사람과 그림을 그린 사람의 이름이 다르다. 아닌 것도 있지만. 나는 내가 둘 다 하고 싶었고, 순수하게 그림을 그리기에는 난 너무 게을러서 디지털 아트를 배워 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작업실도 필요 없게. 손에 물감이 묻는 것도 싫었고..

미국에서도 디지털 아트를 배우러 가 본 적이 있지만 연령을 나누지 않아 초등학생과 함께 배워야 했고 진도도 금방 금방 잘 나가지 않는데 좀 답답함을 느꼈다. 참고로 초등학생들 모두 어찌나 잘 그리던지.. 그래도 선생님은 내 작품이 독창적이라고 칭찬을 해 주셨다. 다행이었다. 자괴감에 기절할 뻔했는데.. 어쨌든, 진도와 테크닉은 한국 아닌가?


미국에서 나는 서울에 있는 디지털 아트 학원을 온라인 구글 서치로 찾았고 서울로 와서, 학원 근처 강남에 거처도 마련했다. 그리고 서울 생활이 적응될 때쯤 문화 센터를 알게 됐고, 나아가 나의 관심사를 자극하는 많은 강의들을 발견하고 월화수 ( 금요일도 할 거였지만 강의가 캔슬되어 버렸다) 하루에 하나씩 강의를 듣고 숙제를 하고 골프 레슨 일주일에 두 번, 골프 연습 일주일에 3번, 요가 두 번, 댄스 두 번.. 스케줄들 사이에 친구 만나기, 식사 찾아 먹기, 볼일 보기.. 하루에 할 일이 2가지 이상 되면 이미 하루가 꽉 찼다. 예를 들어 클래스를 가기 위해 40분 전에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고 버스를 20 분 타고 내려 또 10 정도 걸어 들어간다. 서초동에서 서초동으로 가는데 한 시간 정도 할애 해야 한다. 그리고 꼭 내 가 건널목에 도착할 때쯤, 눈앞에 신호등이 켜져 있다. 그래서 나를 뛰 게 만든다. 스타일 빠지게.. 헥 헥 거린다. 우아하지 않게.. 강의가 끝나면 또 똑같이.. 다시 버스를 타고 온다. 강의 2 시간, 교통수단 2시간 왕복 벌써 4시간을.. 식당을 서치 해서 점심이나 저녁을 먹는다 1 시간 플러스 (찾아가는 시간) 그러면 총 거의 6시간. 집에 와서 골프 연습을 1시간, 짐에서 운동 1 시간, 합계 2 시간. 또 요가 클래스가 있는 날은 1 시간 더. 몇 개 안 되는 스케줄로 하루가 꽉 찬다. 한국에 와서 나는 나의 나기사 (네이버 지도 맵)을 하루 종일 옆에 끼고 산다. 나는 서울 사람들 보다 나 기사를 더 잘 알고 친하다. 참고로 3 명의 기사가 나의 서울 생활을 도와주고 있다. 나기사 (네이버 지도) 노기사 (로봇 청소기) 백기사 (일주일에 겨우 한번 꼴로 일 하는 자동차)

미국에서 무조건 운전을 하고 다녔던 나는 30년 동안 살면서 대중교통을 딱 한번 이용해 봤다. 전철을 타고 워싱턴 디시 박물관으로 딸과 함께 가는 딸의 학교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던 내가 처음 한국에 방문 왔을 때는 택시만 타고 다니다 전철을 타는 법을 나기사를 통해 처음으로 배웠을 때의 뿌듯 함이란..

처음에는 미국에서 30년 동안 나의 공간 안에서만 (차 안) 이동하던 내가 여러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서 있기가 걱정되었다 하지만 곧 적응을 했고 나아가 버스를 타는 것까지 적응했다. 자연히 많이 걸을 수도 있어서 좋았다. 웬만하면 걸어 다니기도 일쑤였다. 필라테스 클래스를 끝내고, 강남 한 복판에서 미국에서 알던 친구를 만났다. 나의 레깅스를 입은 모습을 보고 놀래는 눈치였다. 그녀로서는 나의 이런 모습을 그것도 집 안도 아닌 강남 한복판에서 볼 상상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늘 정장에 일 하는 모습만 보아 오던 사람이었으니.. 이렇듯 나는 자유를 만끽하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서울 근교를 탐방하기 위해서는 백기사가 필요했다. 그래서 백기사를 처음 만나자마자 한 것은 대전에 임윤찬 공연을 보러 가는 거였고.. 오랜 오래간만에 자유를 더 즐길 수가 있었다. 백기사를 밥만 주고 놀려 두기 그래서 매주 한 번은 운전해서 어딘가를 가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집에 붙어 있을 시간도 없이 늘 스케줄에 바빴고.. 이렇게 오늘 같은 날은 과부하 가 걸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쉬고 싶은 때가 있다. 몸이 말한다 좀 쉬어 가라고.. 몸이 다운되니 마음도 다운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티브이를 보며 누워 있는 하루가 지속된다.. 나의 강박관념이 자꾸 일깨운다. '뭘 해? 티브이를 끄고 책상에라도 앉아! '


미국에서는 하루 종일 집에 있어도 그냥 괜찮았는데 우리가 여행을 가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듯이, 한국에서 나는 여행온 사람이니까 뭐든 해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뭐든 많이 해야 한다. 한국을 경험해야 하고, 그런데 몸이 따라 주지 않으니 우울 해 진다. 감정이 무거워진다. 자꾸 드러눕는다. 아무도 없는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나 홀로 그냥 있다. 과다한 골프 연습으로 팔꿈치도 아프고.. 어제 한 요가로 몸이 여기저기 아프다. 한의원 원장님께 매번 말한다 “힘 좀 나게 약 좀 지어 주세요!! 할 일은 많은데 몸이 안 따라 줘요.” 늘 앉아서 일만 하던 내가 몸으로 만 살자니 아주 힘들다. 이렇게 움직이다가 어느 날 몸은 너무 무겁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온 것이다. 무거운 몸과 함께 우울함도 왔다..


아들이 집을 산다고 연락이 왔었다. 비싼 집이었다 아마도 아들은 내가 걱정할 것을 미리 예견했고 나한테서 부정적인 말이 나올 것을 알고 우리의 대화에 먼저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었다. 약간 격앙된 목소리로 왜 이 집이 좋은 조건인지 여러 가지를 늘어놓았다. 아들의 목소리에는 내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까 봐 나를 경계하는 모습이 선명했고, 내 말은 듣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 보였다. 나는 더 이상 뭐라고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며칠 후 느닷없이 내가 자는 동안 아들이 문자를 보냈다. 한국에 온 지 일 년 만에 들어 보는 ‘엄마 보고 싶어’ ‘Miss you umma ”라는 아들의 문자였다. 그동안 “I love you..” 같은 사랑 한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보고 싶다는 말은 처음이었다. 나한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은 내 아들은 집을 계약하면서 나를 떠 올 렸구나.. 엄마의 격려가 필요했었구나.. 나는 지나치게 걱정만 하는, 아들을 믿어 주지 못하고 염려만 하는 엄마였다는 걸 깨달았다. 만 28세의 아들은 성인이었지만. 내가 그 나이에 또 지금도 우리 엄마한테 멋있고 능력 있는 딸로 보이길 원하는 것처럼, 우리 아들도 엄마에게 멋있는 아들 능력 있는 아들이 되고 싶은 거였다. 그래서 격려해 주었다. 아주 잘했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의 에너지를 먹고 산다. 그들의 나에 대한 믿음과 사랑, 나의 그들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만들어지는 에너지를 우리는 대화 중에 서로 먹는다. 우리는 누가 우리가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인지 안다. 그래서 그들 이 보는 앞에서 허세를 부릴 때도 있다. 잘 되고 있는 걸 보이고 싶으니까... 그 들의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나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먹여 주고 내가 또다시 일어나할 일들을 할 수 있는 힘을 찾게 해 준다.

나는 혼자이지만 혼자이지 않다. 나는 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영양제를 금방 들이켰다. 우리 엄마가 내가 힘들 때마다 해 주시던 말이 생각난다 “넌 뭐든 마음만 먹으면 잘하더라!"


몸이 힘들면 잠시 쉬어 가는 걸 겁내지 말자.. 쉬어 쉬어서 라도 각 곳에 가기만 하면 된다. 쉬는 것도 즐기면 된다. 여유롭게 사랑하는 사람들도 챙기고 그들의 에너지를 받고 또 나의 에너지도 나누어 주면서.. ‘땡땡이’라고 하는 말이 생각난다.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 학교 수업을 빼먹고 놀러 갈 때 쓰던 말이다. 그래, 지칠 땐 , 한 번씩 땡땡이를 해도 된다. 일보후퇴, 이 보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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