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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은 성공이다.

아무것도 영원하지 않다

by 엘라리

"많은 사람들이 이혼은 결혼의 실패라고 들 하지만 나의 이혼은 결혼의 성공이었다!"


너무나도 다른 두 사람이 어떤 인연으로 만나, 결혼을 을 하고, 커리어를 쌓고, 아이들을 낳고 책임감을 배우며 열심히 살았다. 노후를 위해 돈도 아껴 모으고, 집도 장만하고,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흐뭇하게 같이 바라보면서 앞만 보며 달렸다. 아들도 있었고 딸도 있었다. 아이들이 둘 다 미국 탑 30에 드는 좋은 학교로 과외 한번 받지 않고 들어 갔을 때 (미국에도 과외는 있다) 우리는 대단한 자부심과 고마움과 뿌듯함을 느꼈다. 인생 성공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혹은 좋은 집이나, 좋은 차가, 우리 인생을 대신할 수는 없다. 우리는 우리 각자 나름대로 인생의 목표가 있었고,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면 그 삶을 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우리 두 사람의 목표는 너무나 달랐고, 우리는 이미 지나온 삶에 너무나 지쳐 있었다. 아이들이 둥지를 떠나고 나는 여전히 사업으로 바빴고, 가속이 붙어 멈출 수 없는 열차처럼 마냥 달리고 있었다. 그는 삶을 잠시 쉬어 가고 싶어 했고, 제트 스키를 타고 , 보트를 타고, 캠핑카를 타고 놀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강했다. 나는 그런 삶을 꿈도 꿀 수 없게 바쁘기도 했지만 죽기 살기로 일과 가정을 돌보고 사느라 너무나 힘이 빠져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던 때였다. 이제 마지막으로 막내까지 대학에 들어가 집을 나간다 하니 쓸려 오는 공허함과 그동안의 과로가 나를 휩쓸고 와 하나 남은 일도 그만두고 싶은 일상을 나의 정신력으로 겨우 겨우 버텨 내고 있었다.


그날 우리 둘은 같이 울었다. 이 정도면 열심히 살지 않았냐고, 잘하지 않았냐고… 이제 서로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기 위해 헤어지는 거라고.. 그동안 잘 살았다고.. 후회 없이 할 만큼 다 했다고, 성공했다고, 너도 열심히 했고 나도 열심히 했다고 서로 토닥이며 이제는 그만두자고… 동갑인 우리는 같은 시기에 갱년기로 접어들고 있었고, 서로의 인생에 공허함을 느끼고 있었다. 다르게 살고 싶었고 서로의 다른 삶은 너무 나 달랐다. 정신없이 양쪽 집안에 의해서 결혼을 하고 이때껏 잘 살았다. 너무나 다른 서로에게 맞추어 가며 열심히 노력하고 살았다. 그도 나도.


좋은 차 하나 사면서 힘든 것도 잊었고, 처음 우리 집을 마련하고 그랬고, 나중에는 더 좋고 더 큰집으로 이사 가면서 또 힘든 것을 잊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좋은 대학을 들어가면서 또 힘든걸 잠시 잊었다. 그렇게 우리의 결혼은 버텨져 왔고, 막내가 대학을 가면서는 더 버틸 건더기가 남아 있지 않았고 우리는 어느덧 50을 넘어서고 있었다. 아이들이 없는 우리 만의 시간을 같이 보내기에는 우리가 원하는 모습은 너무나 달랐고, 더 이상 용쓰며 서로를 맞추어 살 힘이 부족했다. 그때의 나의 정신력과 육체는 하는 일 하나만 부여잡고 있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다. 뭐든 놓아 버려야 살 것 같았다. 미국이란 땅에서 친구도 없이 가족 친지도 없이 우리만 용쓰며 서로 의지하며 살았었다.


우리 딸이 말한 적이 있었다. 자기는 이민 가정의 무거운 분위기가 싫다고.. 이민 가정은 늘 경직된 스트레스로 항상 분위기가 무겁고 미국 가정은 여유롭고 자유로운 분위기라고.. 그랬다. 바깥에서 일을 하면서 미국 사람보다 우리는 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로 아마도 우리는 늘 긴장하고 살았었나 보다. 영어를 못한다고, 영어에 악센트가 있다고 미국 사람들이 짜증 내는 것을 나는 이해 한다. 나도 어딘가에 전화를 했는데 못 알아듣는 영어를 하는 사람이 전화를 받으면 화부터 난다. 이 기회에 많은 이민자들의 영어를 감싸 안으며 살고 있는 원주민 미국인들에게 감사를 보낸다


그렇다면 우리가 한국에서 살았으면 이혼하지 않았을까? 일 년 동안 내가 본 한국의 결혼 생활은 행복해서 사는 커플을 하나도 보지 못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이혼하지 못해서 불륜으로 결혼 생활을 행복하게(? ) 연장하며 사는 부부들.. 헤어 지지 못해서 힘들어하며 사는 부부들.. 상대 방의 불륜으로 괴로워하며 사는 친구… 부부지만 남같이 사는 사람들… 내 주위에서 성공한 결혼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티브이나 유튜브에서나 볼 수 있었다.(그 결혼들이 진짜라면) 한국의 사람들은 촘촘하게 연결되어 살아가기 때문에 어지간한 용기 없이는 솔직하게 살기가 힘들다.


하지만 이 세상에 할 일은 많고 즐겁게만 살기에도 인생은 짧다. 불행한 결혼을 행복한 결혼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느라 심신을 바닥 내고 남은 여생을 바칠 필요는 없다. 20년 넘게 살았는데도 안되면 포기하고 내 삶을 다른 곳에서 찾아보아야 한다. 내 취미를 살리고 내가 사회에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내 인생을 아름답게 가꾸어야 한다.. 불륜은 답이 아니다. 그러려면 이혼하는 게 상대를 존중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결혼을 성공적으로 끝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불륜에서 생기는 거짓들은 은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자신과 상대와 가족을 병들게 한다. 잘못한 결혼의 선택을 인정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물론 나의 개인 적인 생각이다.


나는 개인 적으로 SK 최태원 회장을 지지한다. 그 사람은 충분히 결혼 생활을 어떻게든 유지할 수 있었다. 전대의 회장들이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정면 승부했다 사회의 질타와 많은 돈을 잃을 각오까지 하면서..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 그렇다. 더 이상 서로에게 인연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사이를 지속해 가는 건 그 가족과 사회를 병들게 한다고 생각한다. 최대한의 노력을 해보고 더 이상 하면 죽을 것 같을 땐 과감하게 정리하고 서로 각자 행복한 모습을 찾아가는 게 사회도 건강 해지고 사회의 어두운 부분들이 사라진다. 아이들에게도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땐 스스로 인정하고 힘들어도 바로 잡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은 본보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너만 잘살겠다고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면 되느냐?라고 말 할 수 있다. 하지만 공공연한 불륜을 이어 가면서 그 결혼을 지키는 거는 그 사람을 안 아프게 하는 걸까? 모르면 안 아픈가? 영원한 비밀이 있을 수 있나? 사랑하지 않으면 잘해 주지 못할 거면 놓아주어야 한다. 그 사람도 다른 인생을 살 수 있게. 남편이 아닌 남편을 자존심 때문에 혹은 미워서 붙잡고 있는 건 아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못 할 짓이다. 그런 기운들은 사회를 병들게 한다. 우리의 아이들은 거짓으로 사는 세상이 아닌 서로 사랑하는 법을 부모로부터 배워야 한다. 서로 아껴 주고 존중하고 도와주는 사이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사는 건지 몸으로 보여 줘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할 때는 잘못을 인정하고 헤어져서 더 건강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밝은 사회는 인정하는 사회다. 우리는 더 이상 서로에게 도움이 안 되고 서로를 갉아먹고 이용만 하는 껍데기 같은 관계를 청산하고 어두운 곳에서만 행해지는 관계를 햇빛아래 가지고 나와야 한다. 인정할 것을 인정하고 끝맺음을 할 것은 하고 다시 나아가면 된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며.. 후회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거짓으로 살지는 않는다.



우리의 결혼은 미션을 끝낸 게임처럼 더 이상 갈 곳이 없었고 줍줍 한 선물들로 많은 점수를 올리며 미션의 마지막을 끝냈다. 두 사람이 손을 잡고 강아지와 노후 생활을 하는 그림으로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거기서 체념하기엔 100세 시대에 우리는 또 다른 50년의 인생을 보고 있었다. 나머지 50년은 각자의 미션을 시작하기로 했다.


'몇 개의 미션을 더 할 수 있을까?'


만약에, 제대로 하나의 미션도 더 못마친다 하더라도, 해보지 않고 '어땠을까?'라고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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