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지 않아도 괜찮아

루크는 루크다

by Darth Vader

#9. 평범하지 않아도 괜찮아.


며칠, 아니. 며칠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긴 시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루크를 어떻게 사랑했는지 기억하려고, 그리고 사랑한 것은 맞는지 사람들에게 물으려고 쓰던 글들도 멈췄다.


루크가 ADHD 판정을 받았다.


4살 때 미끄럼틀에서 뛰어내리다가 깁스를 하고, 5살 때 어린이집 주차장에 있던 소화기를 정확히 배운 대로 작동시켜 난리가 나고, 놀다가 무심코 휘두른 장난감에 친구 눈 위가 찢어져 응급실에 가는 일이 벌어질 때도 많은 이들에게 고개를 숙였지만 속으로는 "남자아이가 크다 보면 다 그렇지. 뭐."라고 생각했다. 루크의 이런 모습에 아내는 유난히 불안해했다. 그래서 마지못해 찾아간 놀이치료. 전문가는 갈 때마다 듣기 싫은 이야기를 했고, 전문가의 이야기는 내게 "이 아이가 괴물이에요."라고 하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성향상 잘 듣는 척하며 귀를 닫았고 속으론 "내 아이는 괴물이 아니에요. 평범해요."라고 말했다. 평범하다고 생각할 이유는 차고 넘쳤다. 아이는 또래보다 훨씬 어휘력이 뛰어났다. 또래가 쓰지 않는 말을 했고, 표현도 정확했다. 논리적이었고, 무엇보다 창의적이었다. 하지만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할 이유도 차고 넘쳤다. 나는 전자에 주목하며 후자를 회피했고, 아내는 후자에 불안해하며, 전자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나는 도망갔고, 아내는 불안해했다.


7살이 되어도 한글을 익히지 못하는 루크를 보며 피하고 싶은 초조함이 몰려왔다. 1분 전에 가르친 '아'를 기억하지 못하고 헤맬 때 비로써 정신이 들었다. "피하고 있었구나. 피하지 말자." 1년 넘게 받은 놀이치료 선생님도 학습장애가 의심된다고 말했고, 7살이 됐으니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고 권유해 주었다. ADHD에서 학습장애. 느린 학습자. 특수학급. 더 두려운 현실이 다가왔다.


결과를 듣는 날. 소아정신과 의사는 우리를 안심시키려고 노력했다. 지금으로서는 학습장애는 아닌 거 같고, ADHD 특성상 좋은 것과 싫은 것의 범위가 확실해서 한글 학습이 잘 안 되는 것 같다고 말. 아내는 안심했고, 나는 복잡했다. 소아정신과 의사는 돌아가면서 절대 싸우지 말라고 당부를 더했다. 부모들의 심리검사를 봤더니 "남편은 회피형이고, 아내는 불안형이기에 둘 사이에 갈등이 있겠다. 그러니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자"라고 말했다. 싸울 마음은 없었다. 내가 도망간 게 미안했고, 도망가려는 나를 간신히 잡으며 현실을 버텨준 아내에게 고마웠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처음으로 ADHD라는 말이 "루크는 괴물이에요."라고 들리지 않았다.


"루크는 루크예요."


어려움을 솔직히 이야기하는 성향 상 그리고 직업 특성상 교회 성도들이 가정의 어려움을 알게 됐다. 처음에 "루크는 평범하고, 이상하지 않은데, 아이들이 다 클 때 그런 거예요."라고 위로해 주던 성도님들은 이제 "ADHD는 요즘에 너무 많고, 지금 시대가 변해서 병이라고 딱 결정하고 치료도 하지만, 우리 때는 그냥 산만한 아이였어요. 초등학교 가면 괜찮을 거예요." 아이가 평범했으면 하는 내 바람을 알았는지 사람들은 줄곧 같은 말은 반복했다. 웃고, 감사하다고 말했지만 위로가 되진 않았다. 어찌 됐든 흔히 있는 ADHD도 내겐 암 같이 느껴졌고,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할 장애처럼 느껴졌다. 마음을 닫았다. 하지만 아내는 달랐고 오히려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는 진짜 고마워. 내 마음을 헤아려주려고 하잖아. 그 진심은 분명 보고 있고, 위로를 받아. 나는 그런 성도님들이 있어서 감사해."


내가 목사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에게 해준 위로와 조언이 떠올랐다. 내겐 그 문제가 지나가는 작은 사고였지만, 위로하려고 했던 사람에겐 '암이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도 그때 진심이었던 것과 같이 나를 찾아와 '기도할게요'라고 말하는 이들도 진심이라는 것을 아내가 가르쳐줬다.


1살 때부터 찍은 루크의 사진을 봤다. 내 소중한 아이, 나의 모든 것을 내어주어도 행복을 주고 싶은 아이. 루크가 앞으로 흘러가는 공을 잡으러 처음 기었을 때 아내와 내가 환호하는 영상, 일어나자마자 내 배 위에 올라가 뽀뽀를 하는 영상, 누구나 언젠가 하는 행동들이 우리에겐 평범하지 않았다. 루크는 나에게 그동안 아무도 주지 못했던 행복을 주었다. 물론 나에게 그동안 아무도 주지 못했던 죄책감도 주었고, 슬픔도 주었다. 사진을 보며 "단 하루만이라도 이 때로 돌아가서 이 아이를 안고 싶다."라는 이루지 못할 간절함이 생겼다.

'그러고 보니 나는 매일 아이를 잃고 있는 건 아닌가?'
'오늘의 루크도 내년에 내가 잠깐이라도 돌아가서 안고 싶어 하는 루크구나'


다시 글을 쓴다. 혼란이 끝난 것은 아니다. 나는 계속 정의할 수 없는 평범을 루크에게 요구하며 실망하고 회피할지 모른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서 다시 글을 쓴다.


루크는 루크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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