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rth Vader Sep 19. 2024

천사는 고양이가 아닐까?

#3. 천사는 고양이가 아닐까?


 목사가 뭔지 모르고 목사가 된 것 같이(매번 생각하지만 알고 시작했으면 못했을 것이다.) 결혼이 뭔지 모르고 결혼을 했다. 그저 한 사람을 향한 불타는 감정이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고, 둘 다 싸우는 것도 지쳐있었다. 그렇게 결혼하면 나아지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로 한 결혼이지만 결혼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았다. 연애를 할 때도 사랑을 안다고 생각했고, 결혼하고도 사랑을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내에게 상처가 됐다. 신학 공부를 했다고 해서, 교회에서 전도사를 하고 있다고 해서 사랑을 아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때의 나도 지금처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알아야 된다는 압박감에 아는 사람인 척을 하고 있었다. ‘나는 사랑을 알아.’라는 생각은 ‘그러니 우리 사이의 문제는 너야.’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줬고, 눈치가 빠른 아내는 항상 이것을 기가 막히게 알아차렸다. 한 남자를 좋아해서 이 남자에게 자신의 미래를 맡기고자 결혼한 아내는 생각하지도 못한 목회자 아내라는 삶에 충격을 받았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교회를 잃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남자로 정해져 버린 막막한 미래를 슬퍼했다. 나는 충격과 슬픔에 빠진 아내를 보며 사역하면서도 받는 0점짜리 성적표를 아내에게도 받는 것 같아 고통스러웠다. ‘나는 좋은 목사도 아닌데, 좋은 남편도 아니야.’ 주일이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싸웠다. 시간이 지난 후에 안 사실이지만 그 시절 아내는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다. 점심시간이면 사람으로 붐비는 곳에 있을 수가 없어서 교회 옥상 계단에 혼자 앉아 있었고, 나는 사람들과 웃으며 이야기하면서도 아내가 그곳에 혼자 있다는 것을 알기에 연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은 ‘도대체 왜 여기에 있냐고? 아무도 너를 사모로 생각하지 않는데, 왜 너 혼자 그렇게 생각하느냐?’며 몹쓸 말을 쏟아 냈고,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생각해 보면 그 시간에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교회 옥상 계단, 아내의 옆자리인지 모른다. 그런데 그때도 지금도 나는 그 자리에 없다. 그때보다 더 사랑을 알았다고 하지만 여전히 나는 아내에게 고통으로 남아 있다.


 나는 ‘교회야? 나야?’라는 생존을 위해 한 질문을 ‘엄마야? 아빠야?’라는 유치한 질문으로 치부했고, 아내는 점점 외로워졌다. 그때쯤 처음으로 ‘헤어질까?’라는 말이 나온 거 같다. 정신이 번뜩 들었다. 그리고 아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사역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자존심인지, 몹쓸 고집인지, 아니면 은혜인지 후에 아버지께서 답을 알려주시겠지. 사역을 그만둘 수 없는 상황에서 아내에게 사모의 삶을 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건 나와 함께 산다면 뗄 수 없는 것이었다. 뗄 수 있다고 생각한 내가 어리석은 것이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고작’의 사랑은 아내가 좋아하는 고양이를 키우는 것이었다. 평소 동물을 싫어하는,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무서워하는 나에게 집에서 고양이를 키운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고작’의 사랑이 우리 관계를 지켰다. 이렇게 길에서 태어난 렐라를 만났다.


 이 고양이는 여러 모로 아내를 닮은 고양이였다. 겁이 유난히 많은 렐라는 강남역에서 개봉동까지 오는 길 내내 택시 안에서 어린 아기처럼 울었다. 또 버림을 받는 것이 두려워서인지, 새로운 환경으로 가는 것이 두려워서인지 내내 울던 렐라와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렐라는 유난히 아내와 나를 따랐다. 앉아만 있으면 온몸을 비볐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힘껏 ‘그르렁’ 소리를 냈다. 렐라는 사랑받고 싶어 하고, 사랑을 표현할 줄 알았다. 마치 아내가 내 작은 사랑에도 감격하며 고마워하듯이 이 고양이는 자신에게 낯선 나에게 먼저 사랑을 줬고, 내가 서툰 사랑을 표현할 때마다 ‘그르렁’ 대며 고마워했다. 이 고양이가 내가 해주지 못한 남편의 역할을 해줘 아내는 점차 안정되기 시작했고, 관계도 회복됐다. 가난한 목사라는 특성상 4번이나 이사를 하고, 두 명의 아이가 태어나는 새로운 환경에도 렐라는 그때마다 많이 힘들어했지만 잘 견뎌주었다. 아내는 힘들 때면 언제나 자기를 닮은 이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항상 고양이는 ‘그르렁’ 대며 고마워했다.


 둘째가 태어나고 두 달이 지날 때쯤 렐라가 이상했다. 어떤 고양이보다 식성이 좋아서 머리는 작은데 몸은 황소 같은 렐라가 집안 곳곳에 토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신생아와 괴물 같은 4살을 키우는 아내와 나에게는 고양이를 돌볼 여력이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정말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아내가 놀라서 차에 태우고 병원에 가는 길에 렐라는 울지 않았다. 처음 만날 때부터 차에 타면 겁에 질려 울던 렐라는 이제 울지 않았다. 그때 아내는 이별을 직감했다. 병명은 지방간이었다. 소화가 안되다 보면 몸에 있는 지방을 태워서 에너지를 내는데 그때 몸에 있던 지방이 간에 쌓이는 것이다. 의사는 생존 확률이 1/3 밖에 안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때에도 나는 렐라를 신경 쓸 수가 없었다. 루크는 코로나 시기에 열이 매일 39도를 오르락내리락했고, 차사고까지 겹치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가면 내가 너무 미안해할 것을 알았는지 이놈은 1/3의 확률을 뚫고 살아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의사는 기적이라고 했다. 그리고 아내는 안도했다. 그렇게 한 달 보름이라는 시간이 더 주어졌다.


 주말에는 비가 왔고, 비가 온 후 그 어느 때보다 맑았고 햇살은 따뜻했다. 딱 렐라가 좋아하는 날씨였다. 아내는 다른 때와 다르게 거실 창문을 활짝 열어놨고, 외출을 했다. 아직 어린 아가를 키우기 때문에 외출하는 날이 적었던 아내는 모처럼 만에 외출로 들떠 있었다. 저녁이 가까워 내가 루크를 어린이집에서 하원시키고 집 안에 들어섰을 때, 그 어느 때보다 집안이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열어놓은 거실 창문으로 따뜻하며 한편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고, 거실 가득히 햇살이 채워져 있었다. 렐라는 바람과 햇살이 잘 드는 창가에 편하게 누워있었다. 원래 햇살을 좋아하는 렐라이기에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1~2시간이 지났다. 아내가 외출에서 돌아왔고, 아이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내는 우스갯소리로 “렐라는 정말 죽은 듯이 자네. 정말 편해 보여.”라고 했고, “렐라야”라고 불렀다. 원래 같으면 그 소리에 깨서 눈을 비비며 아내에게 왔을 렐라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렐라가 우리 곁을 떠났다. 죽는 모습을 지켜보는 아내가 힘들어할 것을 알았는지 렐라는 아내가 외출한 날을 택했다. 그리고 우리를 위로하듯이 자신이 좋아하는 그 따뜻한 날에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편하게 우리를 떠났다. 우리가 렐라에게 해주는 마지막 사랑은 겨울 내 한 번도 열지 않았던 창문을 활짝 열어주는 것이었다. 렐라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 고맙다고 하듯이 그날을 택했다. 그리고 나는 이 귀한 놈을 떠나보내며 지금까지 해주지 못한 말을 할 수 있었다.


“렐라야. 고마워. 네가 우리 곁에 와줘서 우리가 살 수 있었어. 하나님이 우리에게 너를 보내주셨어. 못난 주인을 만나서 미안해. 그런데 렐라야, 이제 너의 진정한 주인 품에서 행복하렴.”


 렐라는 나의 작은 사랑에도 매번 ‘그르렁’ 대며 고맙다고 이야기했지만, 못난 주인은 만난 이후 처음으로 고맙다는 말을 했다. 아이를 키운다고 하면서 봄에 벚꽃 한번 보러 가지 못한 우리를 위해서 렐라는 벚꽃이 멋있게 휘날리는 장소를 함께하는 마지막 장소로 선택해 주었다. 아내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렐라가 우리가 없다고 울면 어떻게 라며 울었지만, 그 나라에서 렐라는 두려워하지도 울지도 않을 것이다. 진짜 주인의 품에 안기어 그르렁 대며 고맙다고 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그런 것처럼 말이다.

이전 02화 총성 없는 전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