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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th Vader Sep 12. 2024

총성 없는 전쟁

나는 이기고 있는 걸까? 지고 있는 걸까?

#2. 총성 없는 전쟁, 나는 이기고 있는 걸까? 지고 있는 걸까?


 전쟁이다. 어떤 사람은 '고작 이런 것을 ‘전쟁’이냐?' 말할지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나에게는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의 소용돌이다. 상대의 무분별한 총탄을 다 받아내고 걸레가 된 것 같은 마음에 나도 총을 들고 상대를 향해 총탄을 말 그대로 갈기지만 상대의 마음이 걸레가 되고 의기소침해하는 모습을 보며 또 깊은 자괴감에 빠진다. 방금까지 총탄을 날리는 사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금방 세상에 둘도 없는 사이가 된다. 매일같이 휘몰아치는 이 감정에 정신을 못 차리겠다. 이것이 내가 루크를 키우는 것을 전쟁이라고 표현한 이유다.


 4살 난 괴물은 일요일에 유난히 미친다. 말 그대로 미친다. 특히 낮잠을 못 자 반 이성상태가 되면 비로써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일단 괴물로 변하면 “네”하는 법이 없다. 오후 5시에 집에 안 간다는 괴물을 힘으로 겨우 제압해서 카시트에 간신히 앉혔다. 다행히 오늘은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지는 않았다. 안정적인 감정인 척 부드럽게 이야기하며, 카시트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아이의 다리를 있는 힘껏 눌렀다. 어제의 기억 때문인지 아침 등원하는 어린이집 차에서 안전벨트를 하며 나의 눈치를 본다. 괴물은 어제의 패배가 뇌리에 아직도 남아 있나 보다. 그리고 그 패배를 마음속에 간직한 것처럼 보이는 괴물을 보며 승리자는 다시 패배자가 된다. “내가 왜 그랬을까? 잘 달랠 수 있었을 텐데” 물론 나중에서야 드는 착각이다.


 괴물은 절대 달래 지지 않는다. 그렇게 차를 타고 오며 자신의 패배가 분했는지 연신 “풀어줘요.” 라고 외쳤고, 나의 마음이 어떻게 흔들리는지 아는 괴물은 “제발”이라는 호소를 붙였다. 그리고 괴성과 함께 잠들었다. 30분이 되는 집으로 오는 전쟁을 마치고 잠든 괴물을 최대한 깨우지 않고, ‘제발 밤새도록 자라’는 헛된 바람으로 카시트에서 풀려고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헛된 바람은 바람처럼 날아간다. 괴물이 다시 깨어난다. 이번에는 집에 안 간다고 괴성을 지른다. 집에 와서는 하루 종일 배탈로 아무것도 못 먹은 엄마를 괴롭힌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일단 괴물이 되면, 괴물은 “네”하는 법이 없다.


 온갖 유튜브를 뒤지고, 유아 책을 뒤져서 괴물을 상대하는 법을 익히지만, 단호하게 말하는 것도,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득하는 것도, 아이가 감정이 안정이 될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는 것도, 때론 권위를 가르치기 위해 약간의 힘으로 제압하는 것도, 괴물을 상대하는 정답은 아니다. 나가고 싶어 하는 괴물에게 놀이터를 가자고 하며 간신히 달래자 이번에는 마스크를 안 하고 나간다고 한다. 그렇게 30분 동안 이어지는 게릴라전이 끝나고 간신히 욕실에서 물총놀이를 하는 것으로 휴전을 선포한다. 30분 간의 평화는 계속 있겠다는 괴물과 이 괴물을 설득하려는 또 다른 괴물 간에 대립으로 이어진다. 일단 나온다. 그러자 괴물은 욕실 밖으로 물총을 쏴댄다. “하지 마. 밖으로 쏘면 안 돼.”라고 차분히 이야기한다. 그런데 들을 리가 없다. 5번을 더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말한다. ‘잘 참고 있어.’ 그런데 끝까지 참지는 못한다.


 어찌 됐든 괴물을 설득해 식탁에 앉혀서 엄마가 해준 괴물이 좋아하는 오징어와 밥을 먹게 한다. 괴물은 오늘도 오징어만 먹는다. '에잇! 오징어 같은 놈!' 양치질을 간신히 시킨 후 잘 준비를 하는데 오늘은 죽어도 엄마랑 자겠다고 한다. 이 말에 ‘오늘 내가 너무 화를 많이 내서 그런가?' 하는 자책이 밀려온다. 아주 강력한 공격이다. 마지막 공격을 받고 심한 내상을 받아 결국 손을 들고 엄마에게 괴물을 내준다. 그런데 이렇게 끝날 전쟁이 아니다. 배탈로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엄마에게 잠은 안 자고 이것저것을 시킨다. 1시간 째다. 결국 괴물을 제압하러 괴물이 들어간다. “지금은 자는 시간이야. 엄마랑 아빠랑 같이 자자.” 잘 리가 있나? 결국 “이러면 엄마는 나가라고 할 거야.” 하고 엄마가 나가자 다시 총탄을 장전하고 무차별로 쏴댄다. 감정은 극으로 치닫고 30분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흥분 상태가 된다. 나는 몸에 손 하나대지 않고, 오히려 이 괴물이 발로 머리로 온몸으로 나에게 폭력을 행사하지만(물론 때리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괴물의 흥분은 멈추지 않는다. 이것이 효과적인 공격이라는 것을 아는 것일까? 결국 엄마가 다시 들어온다. 엄마는 나보다 훨씬 더 안정적인 감정으로 이내 괴물의 감정을 안정시키고 다시 눕힌다. 그리고 나는 항복을 선언한다. “오늘은 당신이 루크랑 자요.” 그리고 마음으로 생각한다.


 ‘오늘의 내상은 생각보다 크다. 내일 아침 웃는 얼굴로 루크를 볼 자신이 없다. 정말 당분간 안 보고 싶을 정도로 지친다.’


 이 괴물도 다른 괴물과 치른 전쟁의 내상이 컸던지 새벽에 한 번도 안 하던 행동을 한다. 자다가 일어나 울면서 거실로 뛰쳐나온다. 다른 방에 있던 나도 그 행동에 놀라 나가 괴물을 달래준다. 당분간 안 보고 싶다는 마음은 채 4시간이 지나지 않아 거짓말이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래서 괴물은 항상 이긴다. 오늘도 또 졌다. 밤새 뒤척이며 깊게 잠을 못 잔 둘째 괴물에게 시달린 나에게 첫 번째 괴물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방문을 열며 말한다. “아빠, 일어나세요! 아침이에요!” 그리고 나는 오늘도 버겁지만 사랑하는 괴물에게 “우리 아들 잘 잤어? 사랑해.”라고 말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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