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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랖 Sep 07. 2024

조울증 환자한테 일을 배우라고요?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갓 입사하면 약 2주가량의 신입생 합숙훈련을 받아야 한다.

 다들 생각좀 해보시라

서사수님은 경력자에 냉철하신 분이라 정말 일을 잘하시고 나는 초짜다.

누가 먼저 합숙훈련을 가야겠는가? 

지나가는 똥개도 답을 알 법 한데

울 사수님은 모르신다 통~

그래서 자기가  먼저 가신단다. 나를 놔두고...


동장님께서

“아니~ 신입을 먼저 보내지 사수님이 먼저 가시네?“

하고 찍는 소리를 하셔도  

“네~”하고 가셨다.

(진짜 복수 할꺼야~)



그날 그날 접수된 민원 서류들을 전산에 입력해서

구청 나으리들께 올려 보내하는데

나는 입력할 줄을 모른다.

전산시스템 교육을 받지도 못했고 가르쳐 주실 분도 안계시다..합숙가셨다!!!


필요서류야 뭐 은아언니(도우미)가 알아서 한다지만 전산은 내몫이다.

누구한테 물어보라고!! 나의 아름다운 사수님아~~


하는 수 없이 전 담당자 주사님께 전화를 드렸다.

나에겐 영웅같은 근속 25년에 빛나는 베테랑 주사님(남자)이시다.


“어이~ 거기 공익한테 내가 다 알려놨쓰. 갸한테 물어봐 나보다 더 잘해!”


하고 뚝 끊으셨다.

호탕하기가 호탕하기가...이루 말 할 수가 없네..


동사무소에는 공익근무요원있다.

1명~3명까지 있는 곳도 있는데

우리 동은 2명이다.

키 큰 한 명은 폐기물 수거 담당 주사님과 일을 했고 좀 더 작은 공익이 사회복지 업무 보조를 했단다.  


도우미 언니가 나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한솔이(공익근무요원) 조울증으로 공익왔어. 조심해! 기분이 미친x 널뛰듯이 하니까!”


아놔 진짜~

법규집 타령하는 동기 사수님을 만난 것도 모잘라 이제는 조울증 공익한테 일을 배우라고??


흥! 내가 울 줄 알고?? 내가 어찌 이 공중그네 같은 인생을 살아왔는데 이것쯤이야 뭐~흥이닷!





나는 여상(여자상업고등학교)을 나왔다.

당연히 인문계를 가코피 터지게 남들처럼 공부해

대학 갈 줄 알았는데 새아빠가 반대했다.

집에 돈이 없어서? 내가 공부를 못해서? 놉!!

새아빠 친자식은 공부를 못해서 여상을 가는데 의붓딸인 나만 인문계를 보낼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야속했다. 몇날 며칠을 울었는지 모른다. 학교에서는 여상에 원서를 써줄 수 없다며 엄마를 소환했고

집에서는 새아빠와 엄마가 매일을  싸워댔다.

내가 가장 원망스러웠던 건..엄마도 은근 내가 여상을 가길 바랬다는 것이다.

(참고로 우리엄마는 친모다. 유전자 검사는 안해봤지만...이참에 한번 해볼까 싶기도 하고...ㅋㅋ)


결국 ‘나만 희생하면 되지’라는 생각에 백기를 들었고 그렇게 공부는 잘하지만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일찍 돈벌러 간다 그 유명한(똑똑한 아이들만 모아놨다고ㅋㅋ) 여자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됐다.

집에서 버스로 왕복 3시간 거리..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마자 나는 취업을 나갔고

돈 버느라 3학년치 공부도 졸업여행도 놓쳤다.

첫 사회생활은 칼날만큼 날카로웠다. 눈물 나는 일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있었지만

학교에서 배웠다. 아무리 힘들어도 남들앞에서 눈물보이면 안된다, 화장실가서 몰래 눈물 훔치고 나와라..

취업 전문학교라 자세히도 가르쳐 주셨다.

너무 힘들때는 허벅지를 꼬집으며 버티라며 ..

그래서 나는 화장실에서 울 망정 절대 회사에서는 울지 않는다. 멋지다 내 자신!!  ㅋㅋ




저기..한솔씨??(‘솔’음으로 상냥하게)

전산입력 하는 것 좀 알려주실래요?”


“.....”


답변은 없고 고개만 끄덕한다.


잠시 후

서류를 들고 와서는 다다다다닥!  20초 컷!! 끝!!

알려주고 그 널뛰는 공익은 제자리로 가버렸다


예?

순간 멍~해 있는데 도우미 언니


“오늘 비오잖아. 비오는 날은 한솔이가 더 발광하는 날이니까 초콜릿이라도 사다 입어 넣어줘~”


한다.


하~ 내가 진짜 하다하다 공익한테 초콜릿 셔틀까지 해야!!!


되것죠??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는 거니께

편의점으로 당장 달려가 초콜릿 한봉다리 사다가


“너무 빨라서 그러는데 한번만 더 알려주실래요? 동영상으로 찍어서 외울께요!”

공손히 조아렸다.


초콜릿 드시고 기분이 좋아지신 공익님은

20초 컷에서 10분 컷으로 자세한 설명까지 덧붙여 알려주셨더랬다.


사수님이 안계신 동안 띠동갑도 넘게 차이나는 공익근무요원 한솔이와 나는 

절친이 되어

“오늘 약 먹었냐?”를 아침인사로 매일 매일 열심히 전산교육을 받았다.


에효~ 내 팔자야!!! 그래도 조울증 한솔사수님 덕분에

제가 요만큼 성장했습니다. 물론 초콜릿 사바치느라

지갑은 피폐해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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