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이 있는 삶

by 주작가

고전을 읽다 보면

한 줄이 오래 머문다.

당장은 다 이해되지 않지만

문장을 덮고 난 뒤에도

계속 마음 안에 남아 있다.


그 여운은

곧 내가 붙잡게 되는 질문이 된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

‘이건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고전은 쉽게 다 말하지 않는다.

대신 생각할 여지를 남겨둔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내가 스스로 의미를 채워 넣게 한다.


미술도 마찬가지다.

가득 찬 그림보다

여백이 있는 작품이 더 오래 남는다.

보이지 않는 부분이 많을수록

나는 더 많은 감정을 상상하게 된다.


비워둔 만큼,

느낄 수 있게 된다.


삶도 그랬으면 좋겠다.


계획으로 빽빽하고,

성과로 가득 찬 하루가 아니라

조금은 느슨하고

조금은 텅 빈,

그 안에 생각과 여운이 머무를 수 있는 삶.


내가 욕심을 부릴 때는

늘 무언가가 비어 있다고 느낄 때였다.

무언가 부족하다는 감정이

더 많이 가지려는 손을 만들었다.


하지만 여백이 있는 삶은

‘지금도 충분하다’는 감각을 선물한다.

빨리 채우지 않아도 괜찮고,

다 몰라야 직성이 풀리지 않아도 괜찮다.


고전처럼 말이다.

미술처럼 말이다.


삶의 문장과 풍경에도

의도된 여백이 있다면

과욕은 자연스레 사라질지도 모른다.


비워져 있어야
나의 감정이 스며들 수 있다.
여백이야말로
가장 정중한 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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