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기억되고, 삶은 새겨진다

by 주작가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산을 걷는다고 상상해본다.

처음엔 풀과 돌, 흙이 엉켜 어디가 길인지조차 알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가 걸어간다.

또 한 번 걷고, 다시 걷는다.

그러면 어느새 그 자리는 길이 된다.


지나는 것이 반복되면, 남는다.

흔적이 되고, 기억이 되고,

이후의 누군가를 이끄는 이정표가 된다.


돌에도 글을 새기면 문향이 남는다.

단단한 표면 위에

의도가 있고, 시간이 있고, 기록이 있다.

사라지지 않는 무언가가 생긴다.


삶도 그렇다.

우리는 누구도 걸어보지 않은 인생을 걷는다.

처음 가는 길이라 낯설고, 두렵고, 종종 틀린 방향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걸어간 그 자리마다

나만의 나이태가 남는다.


무엇을 배웠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

얼마나 바르게 나아가려 했는지.


성실함은 그저 부지런함이 아니다.

삶에 태를 남기는 자세다.


기억은 사라질 수 있지만,

기록은 남는다.

그리고 기록된 것만이

이후의 나를 다시 일으킨다.


그래서 우리는 잘 걸어야 한다.

내가 지나온 길을

내가 믿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내가 쌓아온 나이태를

내가 떳떳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학습도 마찬가지다.

그저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삶과 연결되어 쌓인 흔적이 되어야 한다.

머리에 머물지 않고,

몸과 마음에 새겨져야 한다.


길을 잘 들이고,

태를 올곧게 새기고,

기억이 아닌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면

그 삶은 이미 의미 있는 배움이다.


지나간 자리엔 길이 남는다.
그리고 성실하게 새긴 마음엔
삶의 태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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