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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벼운 존재 Mar 18. 2024

우리는 아프다

멋진 모습으로 자라고 싶어요

우린 처음에 똑같았어요.

그 자리에 있을 때 엄청 보호를 받았지요.

아저씨가 물도 주고 거름도 주고 사랑도 주고 아무튼 우리는 똑같았어요.


그런데

그날 우리들의 운명, 바뀌게 될 줄 아무도 몰랐지요.

우리는 트럭에 실려 어디론 가 뿔뿔이 헤어졌어요.

나는 가로수라는 이름으로 차도 옆에 서 있는 거예요.

처음에는 좋았지요.  아플까 봐 보호대도 설치해 주고 물도 주고

우리가 무럭무럭 잘 자라자 

모두들 이쁘다고 칭찬하고 멋지다고 사진도 찍고 하더니

갑자기

이상하게 생긴 긴 톱을 가지고 와서는 우리를 이런 모습으로 만들었어요.

나는  아프고 슬퍼서 엉엉 울었어요.

누가 나를  꽃나무로 알까요.


그때 옆에 있던 나무가 말했어요.

"나 좀 봐

우리는 자라면서 마음 편한 적이 없어

매연을 먹으면서 산소를 주는데도 매년 잘려!!!

그래서 너무 아파 

내 몸 좀 봐!! 이게 나무야 울통불퉁 상처 투성이야 

쑥쑥 커서 더 많은 산소를 주고 싶은데 줄 수가 없어

전깃줄 때문에 잘리고

가로등 불빛에 방해된다고 잘리고

"봐!! 누가 먼저 이 자리에 있었는지. 

저 가로등은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

왜!! 가까이에  심어 놓고 나만 괴롭히는 거야!"

그러자 저 멀리서 메아리가 들려왔어


"참아.

나를 봐!!

나는 한 때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어

봄이 되면 연둣빛 잎사귀를 보면 사람들이 와! 봄이 왔구나 하며 감탄을 하고

가을이 되면 내 잎을 책 속에 꼽아 놓기도 하고

잎사귀를 주어다가 집안 구석구석에 놓아두면 바퀴벌레가 사라진다고 해서

소중하게 여겼지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나의 열매이지 

나의 열매는 천식, 가래 기침에 좋고, 맥주 안주로 좋다고  서로 주워 가서 

아주 맛나게 드셨지

나는 꿈을 꾸웠지

조선시대 명의 '허준'을 그리고 용문사의 은행나무를

하지만

뉴스에서 차도 옆에 있는 열매들 먹으면 안 된다는 소식이 들리자

사람들이 변했어.

우리 동네는 차도 얼마 다니지 않고,  난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대도

"낙엽이 뒹굴어서 지저분하다, 냄새 때문에 싫다, 열매를 밟으면 피부에  알레르기가 있어 안 좋다."

등등 항의가 들어오자 나를 이렇게 잘라버렸어. 이제 사람들이 내가 무슨 나무인지도 모를 거야.

그래도 난 괜찮아. 


내 친구가 전해주고 간 말은

자기는 골목에서 30년을 넘게 살았데,  어느 날 갑자기 막걸리를 뿌리고, 소금을 뿌리고 절을 하더니

밑동까지 싹둑  잘라버려서 흔적도 없데.

요새는 과학이 발달되어서 어릴 적에 수나무를 미리 알 수가 있어서 수 나무만 심는데

우리 후배들은 나처럼 되지 않겠구나 생각을 하니 안심이야 .


그래도 너희들은 공기가 좋은 곳에서 살지

난, 도심 한가운데 있어 매연도 심하고  사람들도 북적이고 간판도 많은 곳에 살아

어릴 적에는 간판을 가린다고 잘리고, 사람들이 기분 나쁘다고 발로 차고, 또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와서

나를 붙잡고 나한테 무슨 짓을 하는지 말로 표현하기 싫어! 

그래도 난 좋아 꿈이 있거든



잘 키울 거야! 아기 새들을


때론 이런 생각을 해

소나무로 태어나서 정원에 심어졌더라면

전깃줄이 없는 곳에 심어졌다라면

한발 차이로 학교 마당에 심어졌더라면

도로가 야산에 심어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어디에 심어졌어도 어떤 모습으로 있더라도 우리는  나무야

그러니 

제발 이런 모습으로만 만들지 마세요.


나는 꽃을 피워 벌과 나비에게 꿀도 주고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매연도 마시고 낭만도 줘야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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