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에게
마음이 놓였다.
가족에 대한 나의 생각이 '허상''가식'이 아니고 진심이었다는 것이.
이 기쁨을 얼른 친구에게 알려 주려고 전화를 했다.
"수현아, 나 알았어. 왜 가족화를 그리지 못했는지"
"그래, 왜? "
"그때 너무 힘이 들어서 그랬던 것 같아."
"맞다, 맞아. 그때 니가 얼마나 힘들었니 어머니 모시며, 수업에 집안 일에 쉴 새가 없었지
애들도 힘들게 하고, 상의할 남편은 멀리 있고, 니 손이 안 가면 되는 게 없었는데 얼마나 힘이 들어겠니
너니까 살았지 다른 사람 같으면 못살았다. "
"내가 식구들을 싫어한 게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이니"
"당연하지, 니가 왜 식구들을 싫어해. 식구들한테 니가 얼마나 정성을 다 하는데."
눈물이 났다. 44년 지기 친구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구나
"이제 마음 편히 지내, "
"알았어. 고마워."
윤정이에게도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바쁜가 보다.
원인을 알아서 기뻤지만, 마음이 가라앉지 않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마음이 허공에 떠 있고, 부산하고, 해야 할 일들을 미루고 있었다.
수업만 갔다 오면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소파에 누워 잠을 잤다.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그냥 우울했다. 내일 이면 9월인데 무슨 결단을 내려야 할 것 같았다.
이 마음을 9월까지 가져가고 싶지 않았다.
8월 31일 11시쯤 윤정에게 전화를 했다.
"윤정"
"어!! 언니"
"윤정아, 나 밥 좀 사줘"
"와!!! 언니 좋은 일 있어?" 전화기 건너로 윤정이의 유쾌한 호들갑이 들려왔다.
"응, 기쁘고 슬픈 일"
"뭔데, 일단 축하해"
"나, 가족화 그림을 왜 못 그렸는지 알았어."
"정말?"
"응, 그때 너무 힘들어서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그랬나 봐."
"맞다, 언니. 그때 어머니 모시고 살면서, 얼마나 힘들고 또 형부도 없어서 언니 혼자 일들 처리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어. 당연하지, 당연해"
"나 임금님 수라상으로 밥 사줘. 보상받고 싶다."
"당연히 보상받아야지, 그런데 오늘은 안 돼. 내일 남편 생일이라서 음식 준비해야 하고, 또 모레 일본 일주일 다녀와야 해"
"다녀와서 언제든 좋아. 9월이 오기 전에 이 마음을 정리하고 싶어서 전화했어."
"알았어"
"이런 말을 너에게 할 수 있어서 좋아, 고마워"
"언니 나도, 그런데 형부에게 말했어?"
"아니"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