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의환 Oct 24. 2021

(4) 직장 생활 중의 꼬뚜레

vi) 같은 교인이라는 코뚜레

vi) 같은 교인이라는 코뚜레

 

살기 좋다는 미국에는 지진과 허리케인 그리고 토네이도라는 자연재해가 인명을 위협한다유럽과 중동에는 전쟁과 테러가 끊임없고인도나 동남아는 태풍(싸이클론) 홍수가일본에는 지진중국에는 살인적 스모그가 있다이렇게 사람 사는 모든 곳이 엄청난 자연재해와 인재에 공포를 느끼지만 브라질에는 자연재해와 전쟁이 없다과연 브라질 사람들 말대로 교황은  나라 아르헨티나 출신이지만신은 브라질 출신인  맞다는 생각이  정도로 브라질에는 자연재해도사자호랑이 같은 맹수도 없다.  

 

1996  H 사는  넓은 땅에서 ()  명만 사는 브라질이 아닌 인도 엄청나게 많은 신이 살고 있으며무덥고 가난한 그러나 우리 조상의 고향 같은 나라에 자동차 공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 전문가로서  프로젝트에 처음부터 참여했다우선 인도에 날아가서 정부의 협조를 요청하고 전국의 땅을 물색한  천신만고 끝에 남부의 첸나이  외곽에 부지를 확정하였다.   땅을 보러 가던  날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한국의 토지개발공사 같은 정부 기관의 차를 타고 갔다  서류를 검토해 보니  땅은 4 고속도로 옆에 붙은 땅이었다소가 도로 한가운데 태평하게 누워서 되새김질하고 있고  사이사이 동네 아이들이 뛰어노는 길을  시간 정도 비틀비틀 달리고 있었다고속도로에 진입할 시간이   지난  같아 정부 사람에게 4 고속도로는 언제 나오냐 물어보니대답이 우리는 이미 고속도로 위에 있다는 것이었다세상에무슨 고속도로가 중앙선도 없고 소와 양이  위에 누워있다니…… 

 

그런 고속도로 30Km 장장  시간  동안 달리고 달려 겨우 공장 부지에 도착했던 것이다 넓이를  발로 쟀다보폭 76cm 기준으로 해서 가로세로 부지의 크기를 재서  경계를 말뚝으로 표시하고  65 평을 빨리 사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등기부 조사 결과  주인은 자그마치 2,000명이 넘었다여기서부터 주정부와의 실랑이가 시작되었다 프로젝트 진행상 6개월   땅을 모두 수용해서 우리에게 넘기라고 했고산업성 장관은  주인이 2,000명을 넘으니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했다빠르면 3 내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  본사에서는 무조건 6개월 후에 공장 건설 공사를 시작해야 한다는 강한 입장을 나에게 전달해 왔다.  여기에서 ‘까라면 까는’ 군대 정신아니 H그룹 특유의 강인한 불도저 추진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산업성 장관을  편으로 만들어야 했다선물을 내밀어 보았다그가 청백리라서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같이 술을 먹자고 했다술을 못하는 크리스천이라며 거부했다시간은 가고 해결 방법은 없었다어느  토요일 저녁답답한 마음에  아는 변호사 집에 불쑥 찾아갔다.  그는 파괴의 신이자 수많은 힌두교   서열 4위인 ‘Eshwar’  인도 이름으로 지어  사람이었다 고민을 들은 그는 산업성 장관은 인도에서는 보기 드문 청백리에 독실한 크리스천이니  사람이 다니는 ‘성당에 같이 나가서 친해지는 수밖에 없다라는 엄청나게 값진 어드바이스(Advice) 주었다.  

 

그다음 날부터   상관인 법인장을 모시고  일요일마다 성당으로 나갔다  난생처음인 성당이었지만 오래된 신자인 척했다어설프게 성호를 긋고 무릎 꿇고 앉았다 일어섰다 하며 ‘아멘 따라 했다미사가 끝난 후에 친교의 시간에 장관을  만났다.  그로부터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나는 성당에서의 친분을 가지고  장관실에 약속도 없이 수시로 들어갈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고정부 산하 기관에서 늦장 부리는 것을 그에게 낱낱이 고자질해가면서 속도를 내도록 푸시(Push)했다 결과 3 후에나 착공 가능하다는 땅을 애초 계획대로 6개월 만에 반을 사들여 일단 건설 공사를 착공했고, 1 안에 나머지 땅도  사들일  있었다산업성 장관도 놀랬다그는 기적이 일어났다며 아멘을 외쳤다.

 

 외에도 공장 건설에 따른 여러 가지 인허가를 위해 법인장과 나는 그가 장관으로 재직한 3 동안  성당을 다녔다.  이열치열이라고 더운 나라이지만우리는 일요일 새벽 5시에 만나 6km 구보를 하고 아침 식사  성당에 나갔다미사  무릎 꿇고   모아 얼굴을 괴고  감고 하는 기도 시간에 우린 아주  같은 단잠을 즐겼다.  새벽 운동  고단했기에.

 기도  헌금 바구니가 돌았다대나무로 만든 조그만 소쿠리 같은 헌금 바구니에 지폐를 넣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동전만   딸랑딸랑 들어온다.  내가 준비해  100루피짜리 지폐를 넣으면 다들 눈이 휘둥그레져서 쳐다보았다최초의 지폐이며 우리  메이드  달치 월급이니까잠에서 선잠  법인장님은 지갑을 열어 500루피를 집어넣는다 운전수  달치 월급이다헌금 바구니를 들고 있던 사람이  이상  필요 없이 바로 신부님께 가지고 가서 헌납한다.  내가 법인장께 말씀드렸다우리가 너무 많은 금액을 내서 위화감 조성하는  같으니 다음부터는 조금씩만 내자고그랬더니 법인장께서 화를 내시며 말씀하셨다.  “인도 사람들은 헌금을 내면 되지만 우린 숙박비를 내야 하잖아!” 

 

 청춘과 열정이  소란히 묻힌 인도 거기에서 코뚜레  황소처럼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그리고  청백리 산업성 장관 덕분에 인도 공장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성할  있었다그는 청백리라서 자유로웠지만같은 교인이라는 코뚜레에는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작가의 이전글 (4) 직장 생활 중의 꼬뚜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