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 인도인의 코뚜레를 파괴하는 신 시바
vii) 인도인의 코뚜레를 파괴하는 신 시바
2016년 말부터 인도에서 무언가 새로운 일을 다시 해보라는 명령을 받고 인도와 한국을 번갈아 왔다 갔다 했다. 홍콩에서 인도 행 비행기를 타자마자 21년 전에 뉴 델리 공항에 내렸을 맡은 그 쾨쾨한 냄새의 추억이 바로 살아난다. 나는 그 냄새를 ‘인도 냄새’라 한다. 커리에서 나오는 냄새, 맛살라에서 나오는 냄새, 힌두 사원에서 나는 향내, 인도 사람들의 땀과 체취, 이런 것들이 모두 모여 ‘인도 냄새’를 이룬다. 인도에서 살아 본 사람이나 장기 여행을 한 사람들이 흔히 하는 이런 말들이 인도를 잘 설명해 준다. ”인도는 극도로 사랑하거나 또는 증오할 수밖에 없는 나라이다”. “인도는 갈 때 울고 나올 때 또 운다.” (여자들이 남편 따라 인도 갈 때는 가기 싫어 울고, 나올 때는 한국 가서 청소하고 빨래해야 하니 돌아가기 싫어 운다는 뜻). “인도는 머리는 21세기이나 꼬리는 18세기이다.”
인도에서 만 6년을 살아 본 경험이 있다지만, 다시 먹는 인도 음식은 여전히 자극적이고 소화 장애를 일으킨다. 다시 인도에 온 후 위장약은 필수였다. 14년 동안의 미국과 브라질 생활을 한 탓인지, 손가락을 수저나 포크 대신 용하던 옛 습관을 다시 살려 내기도 쉽지 않았다. 흔히 카레라 부르는 커리(Curry), 인도 된장인 달(Dhal), 인도 빈대떡인 난(Naan)과 차파티(Chapati), 쌀 전병 안에 양념 감자를 넣은 맛살라 도사(Masala Dosa), 향신료를 많이 넣어 매콤한 볶음밥인 비르야니(Biryani), 버터와 향신료를 발라 구운 닭고기 탄도리 (Tandori) 치킨 등이 내가 주로 손가락으로 먹는 인도 음식이다.
20년 전 인도 공무원들과 업무상 식사하는 때가 많았다. 우리나라 군(郡) 단위 공무원들을 접대하러 시골 음식점에 갔다. 때 자국이 질질 흐르는 하얀 웨이터 복을 입은 할아버지가 널빤지로 짠 식탁 위에 커다란 바나나 잎과 스테인리스 물 잔 2개를 내 앞에 놓는다. 그러면 나는 같이 간 인도 사람들 따라서 왼손으로 물 컵의 물을 바나나 잎에 부으면서 오른손으로는 바나나 잎을 씻어 낸다. 그다음 쌀밥을 바나나 잎에 덜어 놓고 커리를 붓고 오른 손가락으로 혼합한 다음, 손가락 5개를 삽처럼 접어 초밥 만들듯이 밥을 뭉쳐서 입에 쏙 집어넣으며 먹는다. 처음에는 힘들었으나 업무이다 보니 안 할 수가 없었다.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미국 어느 학회에서 저녁 식사 중 미국 교수가 인도에서 온 교수에게 한마디 했다. “인도에서는 손가락으로 음식을 먹는 게 비위생적이지 않소?’ 인도 교수가 대답했다. “전혀 아니오. 포크로 음식을 먹는 서양식이 더 비 위생적이요. 내 손가락은 오직 내 입 속으로만 들어가지만, 당신이 쓰는 포크는 이 사람 저 사람 입 속을 들락날락하는 것이지 않소?”
인더스 문명으로부터 시작한 반만년 이상의 찬란한 역사가 있는 인도에는, 어떤 관행이든지 그 합리적 이유와 배경이 있을 것이다. 손가락으로 음식을 먹는 것이 단지 숟가락 포크가 없어서는 아닐 것이다. 더운 나라이니 음식이 상했는지 또는 돌이 있는지 손으로 먼저 검사해 보는 것이고, 이상이 없다면 따뜻하고 부드러운 촉감을 손가락으로 느끼면 감상하고 그 식욕을 증진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미국 교수처럼 본질을 못 보고 현상만으로 인도의 관습과 문화를 섣불리 평가해서는 큰코다친다. 즉, 가난과 무질서 그리고 쓰레기 휘날리는 거리라는 외관만 보고 그 속내를 얕게 판단해서는 절대 안 된다. 전생(前生), 윤회(輪廻) 그리고 범아일여(梵我一如; ‘우주의 근본 원리인 범 (Brahman)과 내 (我)가 같으니 내 안에 우주가 있다’)의 심오한 철학과 논리적인 사상을 공유하는 불교, 자이나교 그리고 힌두교의 나라가 인도이다. 다 같이 브라만 교에서 출발하였지만 카스트 제도에 근거한 일부 선택된 자들만이 명상을 통해 열반과 해탈을 이룰 수 있다는 점에 반발하여 생긴 평등주의의 종교가 불교이다. 불교에 밀렸던 브라만교는 대중적 숭배 요소인 토착신, 남성 원리(시바 신)와 여성 원리 등을 규합한 탄트라(Tantra)라는 우주 생성 원리를 도입하며 7세기경 힌두교로 변신하고 인도 최대의 종교가 되었다.
나는 아직도 힌두교를 다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세계 인구 16%를 차지하는 13억 인도인의 80%가 힌두교를 믿는다면 그 안에서도 깊은 사유(思惟)의 경지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힌두교에는 3만여 명의 신이 있다고 한다. 내 인도 이름도 그중의 하나인 이슈와르(Eshwar)이다. 힌두의 신 중 최고의 신은 원래 하나이나, 업무 분장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려진다. 즉, 우주를 창조한 신은 브라만이라 불리고, 그가 우주의 질서를 유지할 때는 비슈누(Vishnu), 창조를 위한 파괴를 할 때는 시바(Shiva)로 나타난다. 현재 대부분의 힌두교인들은 비슈누와 시바를 숭배한다. 비슈누는 고대의 태양신과 같이 온화와 자비를 베푸는 신이고, 시바는 춤과 음악을 좋아하고 파괴의 속성이 있으나 자신을 믿는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는 카리스마 적인 성격이 있어 숭배를 받는다.
힌두교의 우주 창조는 이 시바 신에게서 나온다. 시바 신의 몸에서 여성성의 본질(Shakti)과 남성성이 나와 삼라만상 우주를 만든다고 믿는다. 시바 신은 힌두교 사원의 가장 깊숙한 곳에 안치되어 있다. 힌두교 5대 성지인 인도 남부 타밀나두 주 칸치푸람에 있는 사원을 자주 방문했다. 그 사원은 인도 H 자동차 공장에서 가까워서 20년 전, 한국에서 손님들이 오면 관광 안내 차 방문했기에 기억이 생생하다. 시바신의 모습을 본 한국인들은 맷돌 위에 세워 놓은 남근석(男根石) 정도로 이해하고 별로 시큰둥해한다. 대신 사원 거대 석탑에 조각된 남녀의 적 나나하고 에로틱한 남녀의 접신(接身) 모습에 남자들은 그저 신기해 침을 흘리고, 여자들은 민망해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라 곤란해한다. 힌두교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렇게 된다. 맷돌 같은 바탕은 여신의 상징(자궁)이며 Passive 한 세계의 모든 것을 상징하는 창조의 텃밭으로 요니(Yoni)라 하고, 그 위에 맷돌의 손잡이처럼 우뚝 박힌 것은 링가(Linga 또는 Lingam)라 하여 시바 신의 에너지, 하늘, 땅, 물, 불, 공기 등 우주를 구성하는 Active 한 요소들을 상징한다. 이 링가와 요니의 결합으로 우주는 생성되는 것이니 그것을 바로 시바의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다. 신을 인간의 모습으로 의인화하기 이전에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사실적이고 꾸밈이 없는 원초적인 신의 모습인 것이다. 이 링가와 요니는 우주를 설명하는 동양의 음양 사상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된다.
고대 인도인들은 남성과 여성 그 자체로는 불완전한 존재라고 믿었으며, 남녀가 결합된 상태에서만 완전한 신적 상태에 다가갈 수가 있고 또는 해탈까지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힌두 사원의 남녀 교합 조각 상들을 자세히 보면 안정미와 균형미가 보인다. 시바 신의 아내는 파르바티, 두르가 또는 칼리라는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데, 그와 그의 아내는 10만 년 동안에 10만 8000개의 체위를 실행하며 부부관계를 맺었고, 그것이 발전된 것이 인도의 성전(性典) 카마 수트라(Kama Sutra)인 것이다. 카마는 애욕이라는 뜻이고 수트라는 경전이다.
힌두교에서 귀족은 일생에서 나이에 따라 다음 3가지를 배우고 익혀야 한다고 가르친다. 인생 초년기에는 ‘아르타(實利)’라 하여 생존하는 처세 방법을 경전을 통해 배워야 하고, 중년에는 종족 보존을 위해 카마(愛慾)를 배워야 하며, 인생 후반기에는 다르마(倫理)를 배워 인간답게 사는 게 인생의 목적이라고 한다. 현대에서도 딱 맞는 너무나도 합리적인 삶의 지혜가 아닌가? 대학 신입생 시절 한 선배가 책 이름을 쓴 쪽지를 주면서 도서관에 가서 그 책을 대출해 오라고 시켰다. 무슨 책인 줄도 모르고 도서관에 가서 대출 신청했는데 사서가 씩 웃으면서 그 책은 이미 대출되었으니 없고, 법대생이 그런 책 볼 생각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충고하였다. 알고 보니 그 책이 카마 수트라였다. 흔히 세계의 3대 성전(性典)하면 인도의 카마수트라, 중국의 소녀경(素女經) 그리고 논자마다 다르지만, 이스라엘의 탈무드(Talmud)를 꼽는다.
소녀경은 흔히 이해하는 것처럼 “부부 생활 안내서’가 아니다. 도교적 입장에서 쓴 의학적 건강 내지 운동 지침서 정도로 이해해야 한다. 다만 건강을 위한 운동의 파트너가 여자라는 점이다. 소녀경이 ‘황제내경(黃帝內經)’이라는 고전 한의학을 집대성한 책의 일부라는 점에서 봐도 그렇다. ‘남자는 불이고 여자는 물이니, 남자는 빨리 타서 단번에 꺼져 버리나, 여자는 물이니 천천히 데워지고 오래 끓는다. 그래서 남자가 인내를 가지고 오랫동안 정성을 들여야 음양이 조화롭게 되고 서로 기를 주고받는 환기(還氣) 상태에 이를 수 있다. 불(男)은 물(女)을 이길 수 없으니, 항상 여자를 존중하고 내 여자가 최고라는 맘을 가지고 행해야 되고, 그리 함으로써 음양의 조화가 되면 남자는 건강해지고 수명이 연장되며, 여자는 피부가 좋아지고 윤기가 난다.”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소녀경의 요점이다. 이야기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갔는데, 카마수트라도 언뜻 보기에는 성생활 안내서 같지만, 기원전 4세기경 브라만 학자가 쓴 책이라는 점에서 인도 철학의 오묘한 이치가 담긴 어려운 책일 것이라고 추측된다.
인도인에게 파괴의 신 시바는 자신의 코뚜레를 풀어 주는 전능하신 신이고 그들은 그 안에서 자유롭고 행복하다. 참으로 편리한 생각이다. 인간은 스스로 만들어 끼운 코뚜레를 푸는 방법도 생각해 낸 위대한 사유의 동물이다.